[시니어신문=추미양 기자] 퇴직 후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의미 있는 일 하면서 적당한 수입도 기대합니다. 하지만 시니어로서 새로운 일자리나 일거리를 얻기 참 힘듭니다.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지영해 강사(68)는 교직에서 퇴직한 후에도 가르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프랑스자수 강의를 합니다. 재능기부로 하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팔당생명살림 두레생협’에서 프랑스자수 동아리를 조직해 지도하고 있는 지영해 프랑스자수 강사를 만났습니다.
Q. 프랑스자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퇴직 1년 전, 당시 막 생긴 네이버 밴드를 보다가 프랑스자수 밴드를 알게 됐어요. 자수인들 작품을 보면서 프랑스자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원래 퇴직하면 서예나 수채화를 배울 계획이었어요. 전원주택에 살다 보니 정원에 꽃이 많아, 사계절 피고 지는 꽃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었죠. 하지만 자수를 공부하면서 서예와 수채화를 포기하고 바늘로 꽃 자수를 놓게 됐습니다.
당시 유튜브에 동영상 자수 강의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어요. 독학이 가능했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니 고수의 지도를 받고 싶어졌어요. 마침 자수 고수인 분이 운영하는 ‘자수 작품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가 있어 4시간씩 2회 참여했죠. 그 후, 유튜브에 멋진 자수 작품이 올라올 때마다 따라 하면서 저만의 작품을 완성했죠.
Q. 프랑스자수 강사는 언제부터 했나요?
프랑스자수 강사가 되리라고 한 번도 생각 안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일어만 가르쳤던 전형적인 교사였거든요. 자수는 그저 취미였어요. 쿠션, 가방, 모자, 옷, 테이블보 등에 수를 놓으면 사진을 찍어 카카오스토리와 단체 채팅방에 올렸죠. 지인들이 보더니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특히 절친인 후배 교사가 학부모 대상 프랑스자수 강의를 제안했어요. 자격증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했고요. 바로 준비해 2018년 3월 대한공예협회 ‘프랑스자수 2급 자격증’을 땋지요. 자수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강사 자격을 갖게 된 것이죠. 처음으로 동국사대부고에서 개설한 평생교육 ‘마실’에서 학부모 12명을 대상으로 프랑스자수 수업을 했어요. 한편, 서울 서운중학교 방과후학교 수업으로 학교 부적응 학생 12명에게 바느질을 가르쳤어요. 5월이라 자수로 카네이션 브로치를 만들어 어머님과 담임선생님께 선물하도록 했지요. 실 꿰기부터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서툰 바느질로 브로치를 완성하곤 너무 좋아했어요. 저도 흐뭇했고요.
Q. 현재 프랑스자수 수업을 하는 곳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자수 강의가 멈췄어요. 자수는 직접 손으로 전수해서 배우는 것이라 온라인 수업은 할 수 없거든요. 올해 5월부터 남양주시 조안면 시우리에 있는 시우반디도서관에서 재능기부로 자수 수업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두 달 만에 폐강됐어요. 코로나 사회적 거리가 풀리면서 식당 하는 분들이 수업에 안 나오셨어요. 생업이 더 중요하니까요.
9월부터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팔당생명살림 두레생협 진중점’에서 자수 수업을 하고 있어요. 두레생협은 ‘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의미해요. 사회적 기업이고요. 저는 조합원이고 자주 이 매장에서 농산물을 삽니다. 어느 날 180여 명이 참여하는 조합원 단체 채팅방을 통해 ‘씨앗 모임’을 알게 됐어요. 씨앗은 동아리를 의미해요. 프랑스자수 씨앗 모임이 만들어지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제안했고 현재 7명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씨앗 모임 중 가장 인기가 있어 편입하고 싶다는 분들이 있지만 진도 때문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어요. 씨앗장인 저는 월 3만 원을 지원받고, 수강생들에게는 간단한 다과가 제공됩니다.
10월 19일부터 조안면에 있는 연세중학교 여교사 6명과 자수 수업을 시작했어요. 연세중 교사가 두레생협에 물건 사러 왔다가 프랑스자수 씨앗 모임 포스터를 보고 연락을 하셨어요. 수요일은 퇴근 시간이 오후 2시이니 그 후에 학교에서 가르쳐달라는 것이었어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라 이번 강의는 강사료를 받죠.
Q. 프랑스자수를 권하는 이유는?
요즘은 바느질할 일이 거의 없지만 실생활에 매우 유용해요. 프랑스자수를 배우다 보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손바느질뿐 아니라 미싱도 하게 되어 웬만한 바느질은 쓱쓱 하게 됩니다. 바짓단, 소맷단 올리는 일 정도는 수월하게 하게 돼 수선집을 찾지 않게 되죠. 자수는 몰입도가 높은 작업이에요. 집중해 나 혼자만의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번잡한 머리가 정돈되면서 수양과 정화가 되고 성취감도 큽니다.
자수 소재는 대부분 꽃이에요. 정원에 있는 모든 꽃을 수놓고 싶죠. 저는 정원사 자격증 있는 남편 덕분에 늘 꽃을 마당에서 봅니다. 꽃을 클로즈업 사진으로 많이 찍어놓고 시간 날 때마다 천에 수를 놓으면 좋습니다.
Q.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남편이 저를 보고 “가르치는 걸 천직으로 알고, 가르쳐야 힘이 나는 사람, 평생 가르쳤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또 가르칠 곳 찾아다니는 사람, 배우는 수강생이 감동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요. 프랑스자수를 가르치기 전에는 남양주시 가운동 휴먼시아 1단지 아파트에 사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주택공사가 교통비만 지원하는 꿈높이선생님으로 재능기부 활동이었어요. 중2 여학생에게 영어와 수학, 초3 남학생에게는 영어를 가르치고 멘토 역할도 했죠. 중2 여학생이 영어 40점에서 80점, 수학 20점에서 70점까지 성적이 올라 너무 기쁘고 보람도 느꼈죠. 계속 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어 2년 만에 끝났어요. 아쉬웠죠. 지금 이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해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Q.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프랑스자수는 삶의 기쁨이고 원동력입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계속 프랑스자수 강사를 하고 싶어요. 3년 전부터 양수리에 있는 양서탁구동호회에서 탁구로 땀을 빼고 있어요. 코로나로 마스크 쓰고 하지만 체력 보강을 위해 자주 탁구장을 찾는답니다.
교직 생활은 서울에서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지금처럼 거주지인 남양주와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장거리 이동 부담 적고 지역사회 주민들과 수시로 교류하면서 사회공헌활동 할 수 있으니까요. 자수 강사는 정년이 없어요. 제 나이에도 활동할 곳이 있죠. 수강생이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해 세대 간 소통하는 방법도 익힐 수 있고요. 퇴직 후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기 마련인데, 많은 분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니 전원주택에 살아도 외롭지 않습니다. 자수를 배우고 싶은 여인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