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계동길에 ‘북촌탁구’가 있습니다. 탁구대가 두 대뿐인 작은 공간이지만, 어마어마하게 큰일을 해내고 있답니다. 방과 후 아이들이 잠시 놀다가기도 합니다. 탁구강습은 물론이고 기타나 우쿨렐레, 오카리나 등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글쓰기 강연도 이루어집니다. 박현정 관장은 마을 어르신들의 어려운 일들을 기꺼이 해결해드립니다. 계동길 지도를 만들어 무료로 나누기도 합니다. 동네 산책길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북촌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 방송도 합니다.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여 북촌탁구장 내에서 진행하기도 하지요. 북촌탁구 박 관장이 ‘북촌 오지라퍼 ’홍반장’으로 불리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Q. 탁구장에서 여러 문화행사를 진행한다고 들었는데요?
네, 오늘은 금요일이라 탁구강습은 없어요. 대신 기타와 우쿨렐레 강습이 있어요. 제가 이 탁구장을 오픈할 때부터 문화공간을 염두에 뒀거든요. 그래서 탁구대도 접었다폈다 해요. 공연이 있으면 접어서 옆으로 세울 수 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 재밌게 노는 공간으로 생각했어요. 음악도 틀어주고 책도 빌려주고, 그림도 그리며 놀게 했지요. 또 주민 사랑방 같은 공간, 마을 안에서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양한 공연도 열어요.
북촌은 특성상 재능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의 예술을 전시도 하고 재능으로 공연을 진행하기도 해요.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소도 빌려주고 있어요. 성우 배한성 선생님의 자원봉사로 낭독수업도 했답니다. 문화예술기획전시를 하다 보니 본업인 탁구장의 정체성이 흔들렸어요. 주위에서는 “힘든데 뭘 그런 일을 자꾸 하려 하냐”고 해요. 하지만 저는 이런 일들로 얻는 게 많아요. 삶이 즐거워요. 만족하고 있어요.
Q. 북촌에서 탁구장을 열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든 계기는?
전에 살던 곳에서는 100평 탁구장을 운영했어요. 오직 탁구만 했지요. 그러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제대로 치료를 못해드렸다는 아쉬움과 상실감, 슬픔으로 제가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탁구장을 그만 뒀지요.
그런 중 50+인생학교를 알게 됐어요. 거기서 ‘버스킹 커뮤니티’ 활동을 했어요. ‘김광석 둥근소리’ 팀에 합류해서 매년 한 번씩 공연도 했지요. 북촌에는 제가 알고 있는 지인들이 많이 살아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둥근소리’ 회원들이 북촌에 살고 있어요. 제 안에 문화적 욕구가 많다 보니, 도심속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가 좋아 이곳으로 이사 왔답니다.
지금 탁구장이 사실 장소는 작은 공간이에요. 그래도 이젠 탁구만 치는 탁구장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바닥이 마루로 돼 있으니 탁구장이 망하면 댄스교실을 열거예요.
벽은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내줬어요, 작품들 전시하라고. 마을 어르신들이 찍은 사진전도 열었어요. 얼마 전엔 캘리그라피 체험전을 진행했답니다. 그 선생님이 저희 탁구장을 ‘문화예술을 탐구하는 스포츠 공간’이라 써서 작품을 만들어 줬어요. 아주 제 맘에 딱 들어요. 행복해요.
Q. 주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활동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북촌이 너무 좋아서 동네를 산책하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소개하고 싶은 마을 곳곳을 열거하고 있지요. 재미있어요. 마을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비디오도 찍었답니다. 또 마을 여기저기를 그린 엽서도 만들었어요. 계동길 지도도 만들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지요. 또 ‘내 서랍 속 북촌’이란 유튜브도 제작했어요. 주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곳을 직접 소개하죠. 이런 일들을 함께하니 저도 주민들도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되더라구요. 주민 간 우애도 좋아지고.
서울시시청자미디어센터의 ‘방방곡곡 마을미디어 교육지원사업’에 선정됐어요. 이곳 주민들이 모두 8회 차 글쓰기 무료 교육을 받았지요. 이제 우리 동네 잡지를 만들 거예요.
Q. 박 관장이 오지라퍼 ‘홍반장’으로 변한 이유는?
처음에는 ‘문체부장관’이란 호칭을 달았어요. 그런데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많이 하다 보니 서로 친하게 됐지요. 오다가다 목마르면 물도 마시러 오고, 더우면 피서하러 오고, 비 오면 우산도 빌려가고, 책도 빌려가요. 어르신들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를 찾으셔요. 등을 간다든가 시계 건전지를 교환해야 할 때, 또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할 때도 부르셔요. 저는 막 달려갑니다. “아무 때나 불러주세요”라고 말해요.
엄마가 바쁠 때는 아이가 학교 끝나고 엄마 올 때까지 탁구장에 와서 놀기도 해요.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탁구를 치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음료가 무료예요. 대신 어른들은 1000원씩 받는데, 어른들이 기부도 하고 음료를 채워놓기도 한답니다. 참 고마워요.
어린이 치유적 그림 그리기도 유치했어요. 아이들의 정서심리를 위한 아트 워크지요. 주민들을 위해 두루두루 신경 쓰고 살피고 그래요.
지역교류 프로젝트로 울진 해녀들의 햇미역 판매 마켓도 열었어요.
이러다 보니 ‘홍반장’이란 이름이 붙었어요. 오래 전에 나온 영화가 있어요. 제목이 엄청 긴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란 영화예요. 제가 꼭 그렇다고 하네요. 그렇게 동분서주 뛰다보니 엄마들이 반찬을 해다 주셔서 맛나게 먹기도 한답니다.
Q. 홍반장 일 이외에 개인적인 취미활동이 있다면?
50+인생학교 시절에 재단에서 하는 문화기획자 수업을 들었지요. 그때 동기들하고 2018년에 ‘오플(50+)밴드’를 결성했어요. 그동안 많은 공연들을 했답니다. 9월 말에는 ‘중장년일자리정책 토크콘서트’에서 오프닝 공연을 해요. 또 10월에는 불광동 혁신파크의 피아노 숲에서 공연할 예정이에요.
음악이 주는 힘이 너무 좋아요. 요즘은 새롭게 종로문화재단에서 아카펠라를 배우고 있어요. 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하는 거죠.
여기 북촌에서 활동하는 것도 제 취미예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로 기획사업’이 있어요. 예술인 5명이 저하고 한 팀이 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10월부터는 더 재미있는 거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북촌은 우스갯말로 ‘궁세권’이라 해요.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있어서이지요.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많지 않아요. 고도제한도 있고 하니까. 마을에 어린이가 없으면 마을 형성이 어렵잖아요? 그런데 너무너무 다행인 게 재동초등학교와 교동초등학교가 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요. 아이들이 탁구대 이름을 정했어요. 하나는 짬뽕, 또 하나는 짜장 이에요. 앞으로도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공간으로 유지할 거랍니다.
이제 ‘북촌문화센터’를 세우는 게 제 꿈이에요. 주민들과 문화의 장벽을 더 낮추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