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유별님 기자] 서울 합정역 인근, 그리스 음식을 차려내는 전경무(66) 오너 셰프의 가게가 있다. 실내 두 벽면이 온통 그리스 풍경과 여행에 대한 만화로 장식됐고, 주방 옆에는 그리스 국기가 걸려 있다. 인테리어 톤도 그리스 국기의 블루와 화이트다. 전 셰프는 ‘졸바(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가게 이름 역시 ‘그릭조이(Greek joy)’다. 실내는 음식을 먹으며 극히 그리스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전경무 셰프는 이 음식점을 생업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으나, 때로는 내면에 잠재된 꿈과 욕구 표출을 위해 ‘외도’를 하기도 한다.
장수 비결은 천천히, ‘슬로이즘’이다
“그리스 음식은 전체적으로 장수 음식이다. 다른 뭐가 따로 있지 않다. 장수하려면 당신이 차고 있는 시계를 바다에 던져버려라. 이카리아섬에서는 바쁘다고 하는 것이 죄다. 성취하겠다고 쫓아다니는 것은 운명에게 맡길 일이다. 장수의 비결은 천천히, ‘슬로이즘’이다.”
전 셰프는 “장수음식을 알아보러 갔다가 도를 닦은 듯 한 방에 깨우침을 얻었다. 그리스 여행기는 요리책이면서 존재의 의미와 삶의 의미 등의 생각을 표현했다. 평소에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한다.
지중해는 인류문화가 일찍부터 시작한 곳이다.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바다로 해역 대부분이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유럽 등 3개의 대륙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후는 온화하다. 여름철에는 강수량이 적고 건조하며 일교차가 크다. 작열하는 태양과 눈부신 바다가 대표적이다. 겨울철은 습하고 강수량이 많다. 기온이 0〬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 그래도 눈이 내릴 때는 있다.
지중해식 식단의 키워드는 ‘건강 유지와 장수’로 토마토, 올리브, 해산물, 견과류, 유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음식들과 붉은 포도주를 함께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심장은 물론 뇌졸중이나 치매 없이 장수할 수 있다. 특히 노인에게는 뇌 용적 감소 비율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잊었던 꿈 만화 그리고 분석하기, 이제 시작이다
비록 가을철 1개월 가까운 여행이었지만, 다녀와 3개월 정도 매주 일요일에 원고를 썼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며 작업했다.
전 셰프는 “무척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기를 내는 목적은 음식 연구가 주된 목적이고, 이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기록으로 책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는 ‘정신분석’처럼 만화를 곁들여 영어단어를 요리하듯 분석하며 쓴 ‘영어단어 외우지마’ 개정판 원고를 준비 중이다.
전경무 셰프는 “위로 상관을 두지 않고 아래로 누구를 거느리지 않는, 혼자 생각하고 창조하는 직업으로 셰프가 좋다”며, “틀에 넣지 않고 변화를 가질 수 있는 생활로 성향에 잘 맞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앞으로 영어단어 관련 책 10권 쓰기, 1년에 한 달은 지중해로 음식기행을 하고 지중해 음식 책 10권을 내는 일이 목표다.
주 고객층은 30~40대 여성이 60%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실내에서 원목 탁자에 올라온 음식은 그리스 현지 식당에서도 인기 있는 대중적 전통 메뉴인 ‘무사카’다. 그리고 우리 입맛에 맞게 느끼하지 않도록 전 셰프가 나름 업그레이드한 ‘수불라키’도 있다. 그리스어로 ‘작은 칼’이란 뜻을 가진 이 음식은 미리 구워놓은 빵을 쓰지 않는다. 담백하고 좋은 맛을 위해 주문과 동시에 구워낸다. 그는 손님에 대한 서비스를 잃지 않는, 자신의 철학과 멋과 자부심이 대단한 오너 셰프다.
사실, 전 셰프는 공대를 다녔다. 하지만 필수과목 이외는 모두 영문과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원자력 분야 설계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28년 전, 영어단어 어원을 만화와 그림으로 쉽게 설명한 영어단어 책을 만들었다.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는 기념으로 ‘아빠가 딸에게 주는 선물’의 의미를 담아 썼다. 처음엔 그냥 낙서처럼 썼다. 캐나다 이민 후에는 영어단어의 어원에 대해 많은 서적을 읽으며 연구해 지금의 ‘영어단어 외우지마’란 책을 발간했다. 유튜브 ‘그릭조이TV’를 통해 이 책의 내용대로 강의도 한다.
전경무 셰프는 “‘빵장수 야곱’이란 책처럼 자기 내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혼자 창조하며 창출하는 재미를 느꼈다”고 말한다.
변신 위해, 삶의 판을 바꾸기 위한 이민
전경무 셰프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와 정신분석의사’였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분필에 사람 얼굴을 작게 조각하기를 즐겼다. 커서도 손을 움직이는 직업을 가지려 했다.
전 셰프는 “전공이라 어쩔 수 없이 엔지니어로 15년 근무했으나, 그 당시에는 ‘현재의 상태’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며, “지금의 일 말고 해야 할 일이 또 있다는 생각에 변신하고파 1998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캐나다 이민 초기 미국으로 건너가 스시학교를 다녔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재미를 즐길 수 있을뿐더러 벌이도 아주 좋았다. 스시학교 졸업 후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일식집 셰프로 일했다. 하지만, 이민까지 와서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자기 점포를 구하던 중 그리스 음식점을 운영하던 가게를 인수했다. 마음은 스시집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가게 원주인이 “그리스 음식 기술을 전수하고 단골들도 확보해 줄테니 해보라”고 설득했다. 그때부터 그리스 음식 셰프가 됐다.
캐나다에서 4년 반 정도 사업도 잘되고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러던 중 한 교포가 한국에서 그리스 음식 프랜차이즈를 하자고 제안해 귀국했다. 가맹사업이라면 가게를 종일 지키지 않아도 돼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도 그리고 영어단어 책들도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맹사업 동업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1년 만에 끝났다.
그 후 2003년 서울 홍대 앞에서 국내 최초의 그리스 음식점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합정으로 옮겨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