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황복실 기자] “안녕하세요? ‘디아나줌마‘예요!”
유튜버 전명진(63) 씨가 들어서자, 하이톤 목소리가 방울방울 따라온다. 유튜브 방송에서 듣던 익숙한 목소리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접 구운 빵이라며 내민다.
전명진 씨는 이탈리아 가정식을 소개하는 유튜버다. 음식뿐 아니라 음식에 관련된 문화나 그릇들도 소개하는데 주부들의 반응이 좋다.
닉네임이 왜 ‘디아나‘냐고 물으니 ‘다이아나‘의 이탈리아식 발음이 디아나라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유튜브를 계획한 것은 아니다. 뭐든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흥미로워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단다.
IMF사태, 요리를 하게 된 계기가 되다
이른바 ‘IMF사태’ 직후였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게 더 힘들었다. 한 사람은 밖으로 나와야 할 것 같아 복지관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서양요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서양요리 중에서 특히 이탈리아 음식에 관심이 컸다. 42세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서양요리사 자격증으로 이탈리아 ‘ICIF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남편은 그곳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일했던 경험을 살려 레스토랑이나 요리학교 운영을 원했다. 그러나 친정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살까?’ 아닌 ‘뭘 할까?’ 택하다
그의 나이 47세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의류업을 하던 남편이 벌려 놓은 일도 많았고, 앞이 캄캄했다. 기막힌 일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남편이 하던 사업부터 수습해야 했다. 수습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잊고 지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어떻게 살까?’보다는 ‘무엇을 하면서 살까?’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것과 잘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내게 두 가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요리였어요. 기회만 되면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어요. 사람들이 식사하면서 좋아하면 힘들었던 마음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더구나 데면데면한 관계의 사람들을 초대해 밥을 먹이면 따뜻한 기운도 돌고요. 참 신기하지요.”
그는 영화 ‘바베트의 만찬‘ 대사처럼 요리도 예술이라고 했다. 그런 예술을 하면서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명진 씨는 이탈리아행을 결심하고 언어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프로시노네‘로 떠나다
“이탈리아어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께 배웠다는 가정식 요리를 접하게 됐어요. 우리나라 집밥처럼 은근히 매력 있더라고요. 특히 건강을 생각한 식탁이라 안심도 되고요.”
이탈리아어 교사에게 부탁해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프로시노네’(Frosinone)로 향했다. 그곳에서 73세 노모와 24시간 붙어살면서 열심히 요리를 익혔다. 노부부는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잠을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음식할 때도 건강을 생각했다. 후추 대신 계피를 넣고, 달걀만 넣어야 하는 곳에는 물로 농도를 맞추는 방법을 썼다. 두어 달을 삼시 세끼 다른 메뉴로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들며 열심히 레시피를 기록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인들을 초대해 배운 음식을 대접했다. 음식 맛을 본 많은 지인들은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집에서 쿠킹클레스를 열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1년 정도 가르쳐보니 프로시노네 말고 다른 곳의 요리도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에도 각 지방의 요리에 특색이 있잖아요. 이탈리아도 그럴 것 같았어요. 다시 이탈리아행을 결심했지요. 그렇게 여러 번 오갔어요. 수석 쉐프가 목적이 아니었는데도 제 성격인가 봐요. 뭣에 꽂히면 끝을 보는….”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탈리아를 오가며 많은 요리를 배웠다. 또, 이탈리아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음식점을 방문해 음식 맛을 익혔다.
‘풀리아‘ 지역 음식에 반하다
“‘풀리아‘(Puglia) 음식이 제일 맛있었어요. 여행 중에 우연히 알게 된 그곳 사람을 사귀어 메신저 ‘와츠앱’(whats app)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친구가 돼 그 집을 방문했어요.”
전명진 씨는 그 집 곁에 머물면서 장을 보고, 배운 요리로 실습했다. 전통음식점을 찾아 함께 여행도 하고 음식도 먹으며 친분을 쌓았다. 친구는 주변 사람을 소개해 그분들께도 요리를 배우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음식도 소개하고 싶었다.
“음식 재료를 가방에 가득 싣고가서 한국 상차림을 해줬어요. 이탈리아인들은 음식에 대해 보수적이더라고요. 잡채, 미역국, 불고기, 김밥 같은 음식을 좋아했어요.”
그들은 한국 간장을 무척 좋아한다. 나눠 주면 맛있다면서 소스처럼 사용해 무거워도 꼭 갖고 간다.
나누고 싶은 마음에 유튜버가 되다
그는 이탈리아의 주부들이 자신의 선생이었던 것을 잊지 않았다. 자신도 주부로서 선생이 돼 이웃과 나누고 싶었다. 이탈리아 할머니들처럼 손주들에게 요리책도 물려주고 싶었다. 전명진 씨는 환갑을 기념해 요리책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음식을 만들어 포스팅하고, 사진을 찍어 자료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더구나 시장을 겨냥한 책이 아니라 모든 걸 혼자 기획해야 했고요.”
그러던 중 2019년에 코로나가 터졌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 방송과 유튜브를 보며 행복해하는 걸 보며, 전명진 씨는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그때부터 유튜브 방송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다.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기획도 하고 공부도 했다. 하지만 혼자, 스스로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촬영에 대한 어려움을 눈치챈 지인이 미디어에 능숙한 청년을 소개했다. 2021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그는 일주일에 한 편씩 촬영계획을 세우고 진행 중이다.
요리, 나를 다스리는 통로가 되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돈 많고 용감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나 이탈리아를 오가며 사는 경비나 한국의 생활비는 비슷하다. 정말 좋아하면 용기도 생기니 도전하란다.
자신에게 요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통로라고 말하는 전명진 씨,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하게 요리했을 뿐인데 방송 후의 기쁨은 셀 수 없이 많다. 댓글은 용기를 주고, ‘구독자를 위해 어떤 요리를 할까?’ 이타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자신을 흥분시킨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갈 의미를 느낀다. 63세의 나이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듯하다.
“가정식은 콘텐츠가 고갈될 일이 거의 없어요. 게다가 이탈리아 문화와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까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요.”
‘기적은 성실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처럼 전명진 씨의 성실함은 어느 만큼의 기적을 더 안겨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