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옥 자원봉사자

[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자원봉사, 재능기부…. 세상을 밝게 비추는 의로운 행동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배부르고 등 따스한 사람들의 호사로운 시간보내기로 여기는 편견도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박순옥씨가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단순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받은만큼 돌려주고 싶은 순수함이 발단이 됐지요.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분들은 “봉사를 통해 얻는 심리적 만족감과 사회적 이익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읍니다. 박순옥씨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00세 시대, 인생의 절반을 보내며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살면서 받은 혜택을 이제는 베풀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러다 시작한 봉사가 책 읽는 목소리를 녹음하는 목소리 재능기부예요. 봉사의 매력, 시작한 지 10년을 훌쩍 넘도록 저를 이끌었지요.”

박순옥씨는 사회를 위해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동안 자신이 받은 혜택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성당 지인들과 같은 고민을 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를 접하게 됐다. 책을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로 책을 읽고 이를 녹음해 들려주는 일이다. 무엇을 할지 결정한 후에는 순조롭게 실천했다. 그는 시작장애인이 있는 서울 강남의 ‘하상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발성교육에 시각장애인 체험도

목소리 재능기부는 책 읽을 줄만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순옥씨는 녹음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방송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발성법을 배우고 올바른 발음을 위해 연습했다.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두 눈을 가리고 길거리를 걸었다. 두 사람이 짝이 돼 한사람은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은 인도한다. 세상이 온통 어둠뿐이니 두려움이 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고 계단 오르내리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박순옥씨는 이 경험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시작한 녹음은 즐거웠다. 10년 가까이 지속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겼다. 박순옥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너무 어려워 다시 녹음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계속 하다 보니 조금씩 노하우가 생겼다”며 “녹음하는데 목소리가 좋아야 하거나 맛깔스런 연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설픈 연기는 오히려 반감만 준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책을 읽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녹음을 하면서도 박순옥씨는 끊임없이 자신이 받은 혜택을 베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새로 시작한 봉사가 동화구연이다. 그는 동화구연을 가르쳐준 강사를 따라 지체장애인들이 다니는 서울 서초구 ‘다니엘학교’를 찾았다.

다니엘학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공과 교육과정으로 230여명의 정신지체학생들이 장애 극복 의지를 갖고 생활하고 있다. 유치원은 신체운동, 건강 의사소통, 사회경험, 예술경험, 자연탐구 등 5개 영역에 중점을 두는 놀이 중심의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는 실생활 중심의 기능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중심교육을, 중학교는 다양한 직업 탐색에 중점을 둔 직업 중심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고등학교 및 전공과는 직업준비기능 배양에 중점을 두는 경험중심의 교육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대상 한국정서 교육

박순옥씨는 다니엘학교에서 활동한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내세운다.

“사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컸어요. 지체장애인들이라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덜컥 겁부터 집어먹고는 했죠. 덩치가 저보다 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데 다가가기가 힘들었어요.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과연 이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어요.”

하지만 기우였다. 박순옥씨는 동화구연을 통해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려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수룩하지만 눈을 마주치고 애정을 표현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한다.

박순옥씨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도 동화구연을 했다. 다문화가정의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동화구연을 통해 한국말을 가르쳤다. 사실 한국말을 가르치기보다는 한국정서를 알려주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는 “모두(다문화가정 어머니들) 실용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며 “내가 하고자 했던 역할은 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통해 한국정서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 동화구연은 동극(아동연극)으로 이어졌다. ‘호랑이와 나그네’라는 전래동화로 동극을 했다. 우즈베키스탄, 일본, 대만, 중국, 베트남, 네팔,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어울려 한국 전래동화로 동극을 펼친 것이다. 박순옥씨는 “큰 기대를 하고 동극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며 “소품도 직접 만들었는데,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전했다.

재능 닿는 일 무엇이든 도전

박순옥씨의 인연은 사단법인 ‘한국자원봉사문화’에도 연결됐다. 한국자원봉사문화가 진행하는 ‘사람책(리빙라이브러리)’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다. ‘사람책’은 한국자원봉사문화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베이비부머 재능 기부 프로젝트다. 베이비붐세대에 속한 자원봉사자가 ‘사람책’으로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박순옥씨는 아이들 앞에 나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유재석을 꿈꾸는 아이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연예인이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발성법을 가르쳤다. 연예인은 대중매체에 출연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말해야 하는 직업인만큼 발성법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동화구연을 접목해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기상캐스터도 돼보고 기자도 돼 즐거움을 선사했다.

지난해에는 진로체험을 위해 아이들과 연예인 기획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아이들의 재능에 새삼 감탄했다. 박순옥씨는 “기획사 직원들의 도움으로 춤도 배우고 대본을 받아 연기도 해볼 수 있었다”며 “곧 잘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아이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여 뿌듯했다”고 말했다.

현재 박순옥씨는 성동구립도서관에서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자서전 작성법을 가르치고 있다. ‘내 인생 적어보면 추억은 연다’가 제목이다. 책 읽는 녹음, 동화구연, 사람책에 이은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현재 자서전 교육에 푹 빠져있다.

이 교육은 생각보다 어르신들에게 인기도 있어 덩달아 신이 난다. 박순옥씨는 “자서전 쓰기를 배우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도서관 측에서 홍보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15명이었던 정원이 30명이 넘어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어르신 자서전 강의 매진

자서전 교육의 어떤 부분이 이토록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추억여행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리다.

“자서전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주지요.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보다는 되돌아보기 위해 자서전을 쓴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고령화 시대에 어르신들이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추억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요. 이 때문에 앞으로도 자서전 쓰기를 배우려는 어르신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박순옥씨는 자서전 강연을 잘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는 앞으로 자서전 강연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몰두할 계획이다. 박순옥씨는 “처음이다 보니 강연하는데 미숙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스스로도 나은 교육을 위해 공부하고 있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어르신들에게 걸 맞는 교육내용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자기 발견을 위한 자서전 쓰기특강’을 쓴 이남희씨의 특강을 마련하기도 했다.

자원봉사는 시작이 반

그런데, 박순옥씨는 최근 봉사시간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이것저것 다양한 봉사활동에 덤벼들었더니 오히려 많은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 하나에 온힘을 기울여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책 읽는 녹음은 계속할 계획이다. 그에게 녹음봉사는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준 소중한 첫 경험이기에 그 각별함이 남다르다.

박순옥씨는 봉사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예비자원봉사자들에게 전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이 어려운 법,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계속하면 자연스레 자원봉사자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시작,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것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처음 시작한 책 읽는 녹음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연찮게 시작한 녹음봉사가 지금 자서전 강연까지 하도록 저를 이끌어 준 것처럼 우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