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더 늘리는 방안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할 경우 한 해 15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고령화에 따라 최근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2월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연한(노동에 종사해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령의 상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에 이어 지난해 6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년연장을 언급했고, 올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정년연장을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각 부처 업무보고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하려면 여성과 어르신의 경제 활동 참여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며 “고용 연장에 대해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민간연구기관, “정년연장 연간 15조8천억 비용 발생” 주장
정년연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과 달리, 경영계나 학계 일부에서는 정년연장으로 인한 사업주 부담을 문제 삼고 있다. 65세로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이나 국가 등 경제주체에 지나친 비용부담을 안긴다는 주장이다.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5월 30일 정년연장에 따른 추가비용을 직접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한경연은 현재 60세 이상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제도 도입 5년이 지난 시점에 60세부터 65세까지의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계산했다. 그 결과 한 해 15조8626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비용을 추계한 기간을 ‘제도도입 5년 이후’로 잡아 정년을 5년 연장하면서 혜택을 받는 전체 연령대(60세~64세)를 모두 합산했다.
직접비용(임금)+간접비용(4대보험) 총액으로 계산
한경연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인 직접비용과 함께 사업주가 추가로 부담하는 4대보험을 간접비용으로 설정했고, 두 비용의 총액을 계산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활용해 60~64세 정규직, 비정규직 인원수 및 해당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을 기반으로 분석했다.
한경연은 “정년연장 비용이 15조원을 넘는 만큼 근로자 정년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정년연장에 따른 사업주 부담이 커지니 이를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늘어나는 추가 비용만 본다면 정년연장이 사업주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로, 한국경제연구원은 1981년 설립된 민간연구기관으로, ‘자유시장경제’ 이념을 신봉하면서 자유시장, 자유기업, 자유경쟁, 3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경제, 사회 전반의 현안을 연구한다. 친기업적 성향이 강한 연구기관이어서 정년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대변한 것으로 이해된다.
“회사 나와 일 못하면 어차피 세금으로 부양” 반론
정년연장을 단순 비용증가 측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노인부양부담은 물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2017~2067년)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17년 707만명에서 2025년 1000만명을 넘어서고, 2067년에는 1827만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더욱이 출산율이 줄어들어 인구감소가 예상된다. 통계청은 2067년 인구가 3929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2067년 전체 인구 중 절반에 가까운 46.5%가 노인인 셈이다. 노인인구 증가와 전체 인구 감소로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은 노인이 되는 셈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노년부양비도 증가한다. 노년부양비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를 말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인구 100명당 20.4명에서 50년 뒤인 2067년 102.4명으로 급증한다. 젊은 세대는 계속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하는 노인인구는 꾸준히 늘면서 복지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노인빈곤 심각, 생계 위해 늘어나는 고령층 경제활동
노인빈곤율도 걱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66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3.8%로, OCED국가 중 불명예스러운 1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한국의 노인빈곤과 노후소득보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근로연령층의 빈곤율과 퇴직연령층의 빈곤율 차이가 5.4배에 달한다.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51세 이후 시기부터 빈곤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빈곤에 허덕이다보니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일하는 노인인구도 늘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5년 고령층(55세~79세) 인구 788만명 중 경제활동인구는 396만명으로 고용률은 49.1%를 기록했다. 이후 2010년 50%를 돌파했고 2019년에는 55.9%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하는 노인 대부분은 저임금을 받는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고령층 취업자 36.4%는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이어 도소매·음식숙박업(19.8%), 농림·어업(13.8%) 순으로 고령층 취업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정년연장, 노인부양부담 9년 늦춘다
앞으로 인구의 절반이 노인이 되는 상황,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부양할 노인은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미래세대의 부담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정년연장으로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노인부양 부담을 덜 수 있다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부담을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이다.
정부도 정년연장을 노인빈곤 해법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일하는 기간을 늘려 고령층이 안정적 소득을 확보를 할 수 있고, 노후 준비 시간도 벌 수 있다는 판단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5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분배 개선을 위해서는 노인 빈곤 문제 완화가 매우 중요하다”며 “정년 문제, 고령인구 재고용 문제 등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년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 100명 당 노인인구 20.4명을 부양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노년부양비가 이보다 7.4명 떨어진 13.1명으로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지난해 수준(20.4명)으로 노년부양비가 늘어나는 시점이 2028년(20.5명)이다. 정년연장으로 노년부양부담을 9년 늦추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결론이다.
특히, 정년연장으로 노인들의 경제적 자립기간이 늘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노인들의 경제적 자립기간이 늘어나면 미래사회가 짊어져야 할 노인부양 부담도 다소 줄어들 수 있다.
정년연장 동시에 기업부담도 줄이는 대안 필요하다
정년연장이 가능하려면 사업주의 부담을 완화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정년연장은 기업이 노사간 합의해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정년과 관련해서는 기업에서 자율적으로 기업특성에 맞춰 근로자의 근로연령과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기업의 정년연장을 의무적으로 추진할 경우 임금체계 개편방안 의무조항도 법령에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사간 갈등과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명백한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얘기다.
한경연 유진성 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을 도입하는 경우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하여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체계 개편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일자리 안정성, 기업경쟁력 강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