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임씨를 부탁해’(감독=박경목). 지난 4월 중순 개봉한 이 영화는 가족과 타인의 경계에 선 ‘요양보호사’를 등장시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가정의 달, 5월에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은 영화 포스터.

[시니어신문=함영이 기자] 김영옥 배우가 데뷔 65년 만에 첫 주인공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독립심이 강한 어머니 말임과 그의 외동아들 종욱그리고 멀리 사는 종욱 대신 말임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미선의 이야기다포스터에 나오는 문구, ‘나보다 더 가족 같은 당신에게…’가 시사하듯 가족의 현주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며 복직을 앞두고 있는 종욱은 어머니 걱정이 태산이다반면 말임은 그런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그래서 둘은 통화할 때마다 서로에게 화를 낸다말임은 집에 가겠다.”는 종욱의 전화에 뭐하러 내려오냐?”고 핀잔을 준다전화로는 성질을 부렸지만 이내 음식을 준비하는 말임말임의 바람과는 달리 그런 말임은 종욱에게는 늘 짐이다그 짐은 말임이 층계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면서 현실이 된다부모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고 자식은 그런 부모를 위해 달려오기 힘든 위기의 순간은 그렇게 닥쳐온다영화의 영어번역이 ‘Take care of My Mom’ 인 이유일 터.

많은 가정에서 경험했을 이 순간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갈 형편이 못 되는 동욱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요양보호사에게 손길을 내민다종욱의 짐은 이제 요양보호사 미선에게 넘어간다말임이 이웃의 꼬임에 넘어가 거액을 주고 산 옥매트 환불이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가게 됐을 때 달려오는 일은 종욱이 아니라 미선이 한다이제 말임이 의지해야 할 사람은 종욱이 아닌 미선이다이런 현실을 영화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말임을 통해 보여준다.

종욱 대신 말임을 챙기는 미선. 말임의 얼굴이 가족이 아닌 남에게 의지해야하는 말임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생각을 바꾸면 가족이 다시 보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말임을 심란하게 한 사건은 환불받은 옥매트 값을 돌려주지 않은 미선과 그로 인해 생긴 종욱과 미선의 언쟁이다노발대발하는 종욱과 자식 노릇 운운하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미선 사이에서 말임은 미선을 밀어낸다마침 사건이 일어난 날은 설 명절이었다혈연 중심의 가족이 가장 강조되는 날이다.

오해가 풀리고 난 뒤의 말임과 미선을 통해 가족의 의미는 다시 조명된다미선은 요양보호사를 하며 홀로 친정어머니를 모신다요양보호사를 하며 어머니가 있는 병원에서 지내는 처지다.

가족이 별거야함께 하면 가족이지!” 미선은 말임에게 이 말을 던지며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방향을 전달한다혼인과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이라는 의미는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로 확대되어야 함을 일러준다.

말임의 식사를 돕는 미선. 미선은 말임과 한집에서 끼니를 나누는 식구다.

요양보호사가족의 경계에 서다

미선의 직업요양보호사는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자격시험에 합격해야만 자격증을 딸 수 있다국가가 인정하는 전문 직군이다현실도 그럴까?

말임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말임이 받는 방문요양서비스는 가사도우미와는 다르다요양서비스는 비용의 대부분을 개인이 아닌 국가의 보험제도로 받는다서비스의 대상도 등급을 받은 노인으로 한정돼 있다서비스 대상인 노인을 위한 식사준비청소는 하지만 업무 범위 이상의 가사지원은 의무가 아니다그런데도 서비스 이용자들은 요양보호사에게 의무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하곤 한다이런 부분을 미선은 말임에게 얄밉게 설명하고 말임은 그런 것이 못마땅하다별로 하는 일 없이 급여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게다가 미선이 자신의 반찬이며 숟가락 같은 것을 가져간다고 의심하면서 불신은 더욱 커진다위기의 순간에 손을 내밀고 자식보다 더 큰 도움을 주지만 현장의 요양보호사들도 미선처럼 불신과 부적절한 대우를 받곤 한다.

우리혹은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

요양보호사는 주간보호센터요양원방문요양 등에서 활동한다국가 자격증을 받고 활동하지만 요양서비스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시설은 민간기관이 주도한다, 2020년 기준, 25,000개가 넘는 장기요양기관 중 국공립 기관은 1%도 되지 않는다급여는 최저임금수준이고 그나마 시간제 계약직이 절반에 이른다근무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보다 자격증만 따고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대부분 여성인 요양보호사들이 서비스 대상인 남성으로부터 성희롱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영화에서처럼 CCTV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경우도 있고 도둑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서 겪는 부당대우나 불이익을 하소연하거나 풀어낼 곳이 마땅하지 않는 것도 요양보호사들의 애로사항이다. 99%가 민간기관인 시설은 문제가 생기면 인력을 교체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고 있는 수준이다.

미선은 말임에게 요양보호사를 감정노동자라고 일러준다돈을 벌어야 하는 미선은 가족 같은 남으로 서비스 대상인 말임의 비위를 잘 맞춰 요양보호사 자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령화 시대우리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조명도 영화는 간과하지 않는다새 정부가 출범하는 2022년 5그들의 문제를 고민해야 함을 넌지시 얘기하고 있다.

영화는 경기도 부천시 판타스틱큐브대구시 오오극장경기도 안산시 명화극장 등 전국의 독립극장 상영관에서 5월에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