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하 노조)이 3월 24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요양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재난 시기 더 열악해진 요양노동자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 대대적인 보완에 나설 것을 복지부에 요구했다.

우선전체 장기요양기관 중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차지해야 하는 목표 비율을 설정하고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이행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둘째현장서비스를 책임지는 요양보호사의 공적 성격과 책임을 고려한 합리적 임금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표준임금을 제시하는 임금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에서 관련 규정을 정비할 것을 촉구했다.

셋째노인돌봄 노동자의 건강권휴식권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장기요양기관에 대체인력지원제도를 마련할 것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인돌봄 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노인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4월 12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이 같이 권고했다고 밝혔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국공립은 1% 미만

인권위는 장기요양서비스를 정부가 책임지겠다면서 실제로는 민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꼬집었다.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장기요양보험제도가 공적 사회 보험의 일환으로 도입되면서노인돌봄체계는 가족이나 비공식적 돌봄에서 국가 중심의 공적 돌봄 체계로 전환됐다.

하지만제도 도입 초기에 장기요양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기반이 완비되지 않은 채 민간 주도의 서비스 전달체계가 형성됐고장기요양서비스의 민간기관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됐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전체 장기요양기관 25384곳 중 99%에 달하는 25140곳이 민간기관인 반면·공립기관은 244곳으로 1%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민간기관 10곳 중 8곳 이상이 개인사업

그런데 민간기관 25140곳 가운데 83.7%에 달하는 21244곳이 법인기관이 아닌 개인기관이어서개인기관 간 과당경쟁 등으로 인해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공성이 대폭 위축되거나 축소됐다.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법인이 아니라개인사업자처럼 대표자의 의지와 판단만으로 운영되는 개인민간기관들이 국가재정에 의존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굳어졌다.

민간 장기요양기관 주도로 운영되는 노인돌봄체계는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돌봄 공백 등 여러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공적 노인돌봄체계로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인건비 줄여야 장사되는 구조적 한계

현장에서 서비스 제공을 책임지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처우개선도 지적됐다.

장기요양서비스 단가는 보건복지부가 고시하는 장기요양수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서비스 질에 따른 시장가격의 차별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장기요양서비스 제공자즉 민간기관 운영자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유인책은 없고장기요양기관 지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에서 인원을 채용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장기요양기관은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상호만 바꿔가며 설립과 폐업을 반복했다또한장기요양수가가 고정된 상황에서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비용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경향이 있고이는 곧 노인돌봄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로 나타났다.

불합리한 제도 폐해고스란히 요양보호사가 떠안아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의 폐해는 고스란히 요양보호사가 떠안아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내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2020년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장기요양기관에 근무하는 노인돌봄노동자는 약 50만 명이 가운데 요양보호사는 약 45만 명으로노인돌봄노동자 전체의 90%에 해당한다. 10%는 사회복지사물리(작업)치료사간호(조무)치과위생사 등이다.

보건복지부 ‘2019년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요양보호사의 절반 이상이 시간제 계약직으로 근로하고 있고이로 인해 월 평균 근무시간이

108.5시간에 불과하고 평균 임금은 114만원으로 사회복지사보다 낮다.

시설요양기관 요양보호사의 경우 주로 1년 단위의 기간제 노동자이고재가요양기관 요양보호사는 파견 또는 단시간 노동자인 점에서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다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요양보호사허술한 법 탓에 저임금 감수

현행 법과 제도도 요양보호사의 저임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지만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유명무실하단 지적이다.

우선보건복지부 고시로 일정 기간 이상 장기근속한 요양보호사에게는 매달 6~10만원의 장려금을 지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근속기간에 따라 요양보호사에게 지급되는 장기근속장려금은 금액자체가 크지 않을 뿐더러경력 전체를 인정해 주지 않고 동일기관 근속기간만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직이 잦은 특성상 실제 혜택을 받는 인원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지난 2016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개정되면서 정부가 지급하는 전체 장기요양급여비용에서 인건비 지출을 매년 일정 비율로 고시하고 있다그러나이 고시에는 장기요양기관의 총 종사자 인건비 지출 비율만 산정하고 있을 뿐요양보호사의 인건비 지출 비율은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따라서 특정 인력에게 인건비를 몰아주는 편법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는 장기요양급여 고시를 통해 장기요양수가를 매년 고시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인건비 내역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현행 인건비 지출 비율 기준만으로는 요양보호사가 적정 임금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는 문제를 갖고 있다.

격무 해소할 현실적 방안 마련 시급

인권위가 세 번째로 권고한 요양기관의 대체인력지원제도 마련은 요양보호사 등 노인돌봄노동자의 건강권휴식권을 보호하기 위한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인돌봄노동자의 주된 업무는 대부분 고된 육체적 노동을 수반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특히 시설요양기관의 노인돌봄노동자의 경우 야간근로와 높은 노동강도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노인돌봄노동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설요양기관의 경우 야간전담 또는 주말전담 인력을 두거나 짧은 주야간 근무교대로 인력을 운영하고 있어 노인돌봄노동자는 휴게시간 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대면노동으로 인해 감염위험을 감수하면서 돌봄노동을 계속 제공해야 하고돌봄 이외 방역 등 업무량 증가로 신체적정신적 소진도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이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적극적인 보호조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번 인권위의 권고조치는 대부분 보건복지부장관의 권한 이내에 있는 시행규칙이나 고시 개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만큼보건복지부가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