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일선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은 코로나 확진 이후에도 확진 어르신을 돌보는 등 상식 밖의 근무환경에 시달려 온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일부 요양보호사들은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하 노조)이 3월 24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요양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재난 시기 더 열악해진 요양노동자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노조는 “감염병이 3년 째 접어드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감염취약계층의 집단생활시설들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대한 문제가 심각함이 드러났다“며, “전문가들은 향후 또다른 감염병 발생을 예고하고 있어 집단생활시설 감염병 발생에 대한 조치에 대해 현장의 사례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매뉴얼도 제대로 없고, 감염병이 시설에 확대됐을 시에 대한 긴급조치, 수급자, 종사자의 행동 매뉴얼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긴급조치조차도 현장 적용이 제대로 안되는 것과 지역별, 시설별로 제각각의 대응들이 이뤄졌다“고 성토했다.
노조는 “정부 방침은 종사자 코로나검사 지침만 강요하고 강제할 뿐, 감염병 발생 시는 오히려 방치한다고 보여질 정도로 대응지침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며 긴급 시정 조치 사항을 전달했다.
“인력 부족, 코로나 걸리면 강제 해고·징계 받아”
노조는 우선, 인력배치기준 변경 및 대체인력 투입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코로나 뿐만이 아니라 병가, 공휴일 등으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코로나 확진자까지 발생하니 인력부족으로 인해 근무하는 노동자는 엄청난 노동강도를 감내해야만 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인력배치 기준을 2:1로 빠르게 변경하라는 것이 노조의 첫째 요구다.
노조는 이를 위해 “장기요양기관에 대체인력 투입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대체인력이 없어 코로나 확진된 요양보호사가 확진된 어르신을 돌보도록 하는 상황이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일부 요양보호사들은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해고나 징계를 받았다.
노조는 “노동자의 부주의로 감염된 것으로 몰아 퇴사를 강요하고 압박하는 것은 심각한 부당노동행위인데, 요양기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기관장에 대한 교육 및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로 근무시간 늘어도 초과수당 미지급 수두룩”
노조는 또, “코로나 확산에 따른 인력부족 및 코호트격리로 인한 초과근무 등에 대한 수당 지급 강제와 미지급 사업장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도 필요하다“고 했다.
노조는 “보건복지부는 초과 근무수당 등 수가로 책정했다고 지침을 발표는 하나, 요양기관들은 적용시키지 않고 있고, 오히려 기관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심각한 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고,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부당이익을 창출한 사업장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밖에 코로나에 확진된 요양보호사의 경우 강제로 무급 또는 연차휴가를 강요당하면서 업무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는 “코로나 가족확진, 밀접 접촉으로 인해 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자가격리–적극적 업무 배제’를 취한 경우, 무급이나 연차휴가를 강제로 적용하는 행위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노조는 “‘코로나 한시적 급여지침’에도 ‘기관장 판단하에 적극적 업무 배제’의 경우 유급을 전제로 최대 7일 간 업무보장한다는 내용이 있음에도, 현장은 연차휴가를 강요하고, 기관에서 임의로 연차로 처리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 지침대로 유급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은 이날 ▲장기요양 공공성 강화 ▲처우개선 보장 위한 제도 개선 ▲인력확충 보장 ▲재가방문 요양보호사 월급제 보장 ▲노조할 권리 보장 등의 요구서한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
요양보호사, 성폭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폭력이다.
2019년 11월, 국회에서 ‘일터인가? 전쟁터인가?’라는 주제로 요양보호사를 포함한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의 실태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성 요양보호사들이 직접 나와 자신 겪은 성폭력 실태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차마 소개하기조차 어려운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하고 끔찍한 근무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 요양보호사는 남성노인으로부터 매일 성관계를 요구받아 죽도록 괴로웠다고 했다. 그만두면 아이들과 살길이 막막해 그만두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요양보호사는 한 서비스 이용자가 11년째 요양보호사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증언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이후 요양보호사들이 겪는 성폭력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막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심지어, 다른 요양보호사는 이용자 아들에게 성폭력을 당했지만, 자신을 보호해야 할 센터장이 군지역이라 공론화가 어렵다면서 덮어버려 자신만 일을 그만 뒀다고 증언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서비스 대상이 몸을 만지거나, 뽀뽀를 하거나, 옆에 누우라거나, 같이 살자고 치근덕거리는 성희롱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일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한 요양보호사는 가장 힘든 점으로 성희롱하는 이용자의 눈빛을 꼽았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했다. 가족에게도 말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눈빛과 성희롱이 반복돼도 당하면서 그 집에 가야 한다고 증언했다.
한 요양보호사는 토론회 주최 측으로부터 사례 공개를 권유받자, 자신의 끔찍한 경험이 기록으로 남는 것조차 싫다면서 거부했다.
생계 위해 일하는데, 잘리지 않을까 전전긍긍
지난해 복지부 실태조사에서 요양보호사 10명 중 1명(9.1%)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했다. 충남 아산시 비정규직지원센터 조사에서는 18.5%나 됐다.
이처럼 요양보호사들이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참고 견디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열악한 고용조건 탓이다.
요양보호사에 대한 대부분의 성폭력은 이용자 집으로 방문하는 재가서비스에서 발생한다.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10명 중 7명(72.3%) 정규직이지만, 재가서비스에 투입되는 요양보호사는 반대로 10명 중 7명(74.7%)이 계약직이다. 재가기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서비스 제공시간에 따라 급여가 지급되는 구조여서 정규직으로 채용되기 어렵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성폭력을 혼자 감내하면서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국회토론회에서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영세한 재가요양센터들은 요양보호사는 버려도 돈이 되는 이용자는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가해자 편을 든다”는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이용자 가족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요양보호사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입밖에 꺼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기요양서비스 공공성 강화하라”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은 우선,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공립 요양기관을 대폭 확대하고, 민간위탁을 중단하고 지자체가 공공형 위탁, 직접 운영 등 공적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돌봄정책기본법’이나 ‘돌봄노동자기본법’을 제정해 공적돌봄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조의 두 번째 요구는 요양보호사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 개선이다. 요양기관 임금보장 표준임금을 법제화하고, 상시적인 감염예방수당 보장 등이다.
셋째, 인력배치 기준을 어르신 1명 당 요양보호사 2명으로 변경하고, 넷째, 재가방문요양보호사에 대해서는 월급제를 보장하라는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