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20대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재정 고갈 우려에 따른 국민연금개혁이 화두가 됐다. 윤석열 당선인을 비롯해 다른 후보들도 국민연금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수년간 진척이 없었던 국연금 개혁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고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가운데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연령을 현행 만 59세에서 64세로 5년 정도 올리자는 국책연구기관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가입종료 시점부터 연금을 받기까지 최대 5년의 소득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입종료와 동시에 수급개시로 이어지는 공적연금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60대에도 활발하게 일하는 등 고령자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문화적 제반 환경들이 크게 바뀐 상황에서 1998년 결정한 가입상한연령을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계속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령자 노동시장 참여 중가, 20년 전 기준 안맞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국민연금 가입 상한연령 연장의 적절성 연구‘ 보고서에서 “고령자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화적 제반 여건이 크게 바뀐 현실을 고려해 연금당국이 정책결정의 장(場)에 가입 상한연령을 연장하는 방안을 올려 검토하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보사연은 그 근거로 고령자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20여 년 전에 이뤄진 정책 결정(가입상한연령 만 59세 유지)의 판단 잣대가 현시점에서 설득력이 없는 데다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우선으로 들었다.
보사연은 이를 뒷받침하고자 각 연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및 고령자 부가조사 원자료, 한국노동패널 22차 개인 및 직업이력 자료 등을 활용해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된 60~64세 고령자 집단의 경제활동 참여 현황과 특성, 연금 수급자들의 특성을 시계열로 비교 분석했다.
노동법 보호 고령자 늘어 연금가입 연령도 필요
보사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60세 이상 고령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 10년 동안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증가 폭은 더 커졌다.
60~64세 취업자 중에서 상용직 임금근로자 비율은 2005년 11.5%에서 2020년 33.3%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비정규직에서는 매년 소폭 증가하지만, 정규직에서는 감소하는 추이를 나타냈다. 적어도 고령 정규직은 유급휴일과 퇴직금, 사회보험 등 기본적인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당하지 않는 등 점점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셈이다.
게다가 연금 수급자와 비(非)수급자 모두 지위를 막론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장래에도 근로를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60~64세 고령자 집단의 노동시장 참여 특성을 더욱 정교하게 관찰해 가입상한 연령 연장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한다고 보사연은 지적했다.
“60대에도 일하는데 59세까지만 가입하라?”
보사연이 국민연금개혁의 일환으로 가입상한연령을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59세까지만 가입하는 현행 제도가 60대에도 일하는 현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98년 제1차 국민연금 개혁에 따라 수급개시연령은 61세부터 시작해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노령연금을 받는 것으로 연장됐으나 가입상한연령은 여전히 59세에 머물러 있어 가입종료와 수급개시 사이에 최대 5년의 공백이 유지되고 있다.
보사연은 “은퇴 후 연금 수급개시까지 급격한 소득단절(crevasse)이 발생하는 중”이라며, “이는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노동시장정책은 고령자들이 이전보다 오래,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65세로 정년을 연장하거나 70세까지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59세까지만 가입하고 65세가 됐을 때 받으라는 정책은 시대변화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60대 초반 상용직 비중, 15년 동안 3배 증가
실제로 60대의 경제활동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전반적으로 60세 이상 고령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 10년 동안 큰 폭으로 증가했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증가 폭은 더욱 커졌다.
60~64세 취업자 가운데 상용직 임금근로자 비율은 2005년 11.5%에서 2020년 33.3%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한,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정규직에서는 감소한 반면 비정규직에서는 매년 소폭 증가하는 추이를 나타내며 일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60~64세 고령자 가운데 상용직 임금근로자로 노동시장에서 제법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 가입상한연령을 연장하게 되면 이미 상당한 가입기간을 확보한 상태에서 훨씬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연금 수급자와 비수급자 모두 종사상 지위를 막론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장래에도 근로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60~64세 고령자 집단의 노동시장 참여 특성을 더욱 정교하게 관찰해 가입상한연령 연장 가능성을 진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59세 가입 종료 후 최대 5년 소득공백도 문제
보건사회연구원이 국민연금 가입상한연령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두 번째 이유는 소득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59세에서 의무가입기간이 종료되면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최대 5년의 소득공백 기간이 발생한다.
국민연금은 60세 이후 임의계속가입, 보험료 추후 납부제도 등 부족한 가입기간을 자발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한시적’ 조치들이 있다. 하지만, 이 조치들은 의무가입이 종료된 이후 수급개시시점까지 간극을 메우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59세 이후 국민연금 의무가입 배제는 가입종료와 동시에 수급이 시작되는 공적연금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제도 개선의 당위성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연금개혁을 실시한 서구 국가들은 대체로 가입상한연령이 수급개시연령과 일치하거나 더 높게 설정돼 있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영국은 수급개시연령 직전까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가입상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미국, 오스트리아, 스웨덴이다. 오스트리아는 근로소득 발생 시 공적연금이 자동으로 적용된다. 수급개시연령 이후에도 시간제로 일하면서 적은 액수라도 소득이 발생하면 보험료를 납부할 의무가 발생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이뤄진 정책 결정의 잣대가 현시점에서도 그대로 유효한지를 다시 판단해야 할 만큼 사회경제적, 문화적 제반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면서, “가입상한연령의 연장을 정책결정의 장(場)에 올리는 것이 이제는 시기상조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고갈, 해묵은 과제 해결방안 될 수도
국민연금의 또 다른 문제는 모아 놓은 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지적이다. 매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노후에 생애소득의 40%를 받는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36년 뒤인 2057년 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이미 1990년대 연금고갈을 경험한 선진국들은 노년층의 연금을 젊은세대가 부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편해야 젊은세대의 부담을 줄이고, 국민연금을 지속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이 민감한 문제에 손대지 않고 있다. 돈을 더 내야 하는 인기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에서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국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냈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2019년 8월 연금개혁 추진을 아예 중단해버렸다. 결국, 국민연금개혁이란 중차대한 문제는 차기 정부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