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원, 퀵서비스기사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이들은 근로자이면서 근로자가 아니다. 특정기업의 상품과 서비스 판매를 위해 일하지만 해당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는 아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몸이라도 아프면 언제든 실직자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늘 하루살이 같은 실직 위험을 안고 일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보호법’, 이른바 ‘특고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일을 하는 근로자에게 고용관계상 가장 중요한 법이 ‘근로기준법’이다. 이 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고용환경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지 여부에 따라 고용복지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와 종속관계가 있는지 △임금이 근로의 대가인지에 따라 법의 적용 대상 근로자를 정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일괄 적용된다. 달리 말하면, 근로자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모두 적용되는 근로자’와 ‘모두 적용되지 않는 비근로자’로 양분된다.
그러나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서비스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현행법에 근거한 ‘전통적 종속근로자’의 틀에서 벗어나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 형태에 해당하는 새로운 노무제공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달리 해석하면, 넓은 의미로는 ‘종업원’이면서 좁은 의미로는 ‘사장’인 근로자가 현행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맹점이 나타났다. 보험설계사를 예로 들면, A보험사에 속한 보험설계사는 A사의 보험상품을 판매하지만 A사에 종속된 근로자는 아니다. 또, 자신이 판매한 개별 보험상품에 대해 총액의 한도 없이 수당을 받는다는 점에서 개인사업자의 속성도 갖는다.
이러한 유형의 노무제공자에 대해 세계노동기구(ILO)는 ‘종속적위임자’ 또는 ‘유사근로자’로 분류하고, EU는 ‘경제적 종속근로자’, 독일은 ‘유사근로자’, 영국은 ‘노무제공자’로 칭한다. 우리나라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개념에 따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명칭으로 직군을 나누고 있다.
올해 7월 1일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고용보험에 가입이 가능하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12개 직종으로 확대됨에 따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실업급여와 출산전후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적용 직종은 △보험설계사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대출 모집인 △학습지 방문강사 △교육교구 방문 강사 △택배기사 △대여제품 방문 점검원 △가전제품 배송·설치 기사 △방문판매원 △화물차주 △건설기계 조종사 △방과후 학교강사 등이다.
특수근로자, 언제든 실직자 전락 가능
우리나라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배경은 비용절감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기업의 경영전략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경영환경 개선을 고수했다. 여기에 세계화를 앞세운 글로벌 경제가 무한경쟁에 돌입하고,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달에 따른 급격한 산업구조가 겹치면서 전통적 산업구조와 고용형태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 같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언제든 비용절감이 가능하도록 유연한 임금체계를 적극 도입했는데, 유연성의 핵심이 비정규직이다.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 대신 비정규직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사용, 경제적 이득을 꾀했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기업에 노동비용의 유연화뿐만 아니라 조직과 재무적 유연화를 가능하게 한다. 기업은 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윤을 극대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근로기준법상 책임은 지지 않아 퇴직급여나 사회보험 등의 부담도 덜 수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사용하는 기업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할 경우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불 보듯 뻔하다. 많은 기업들이 비정규직 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사용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묵인하거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시장에서 불공정 경쟁이 가속화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실제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대성 의원(새누리당)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률’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 트럭자차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에 적용된 산재보험은 15.3%에서 지난해 8.6%로 감소했다. 또, 2012년 추가된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의 산재보험 가입률도 45.4%에서 지난해 42.5%로 줄었다. 일반 근로자의 산재보험료는 사업주가 100% 부담하지만 특수근로자의 경우 사업주와 5대5의 비율로 산재보험료 절반을 공동부담하기 때문에 가입을 꺼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수근로자 보호 위한 법제정 시급
이 같은 이유로 특수근로자의 고용환경 개선을 위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보호법’, 이른바 ‘특고법’ 제정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새로운 법체계에 끌어들여 이들에게도 노동관계법상 일정 수준의 권리와 의무, 보호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7월 14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입법 공청회를 열었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수형태와 플랫폼 종사자의 제도적 보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근로기준법 혹은 기타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로 판단돼 각종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제3유형으로 오분류 되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궁 부연구위원은 “근로자의 영역을 깎고 들어가서 특수형태 종사자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현재 자영업자 중에서도 경제적 의존성이 강한 사람들이 특수형태종사자 개념으로 들어오는 방향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정협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본부장은 임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법’에 대해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특수형태종사자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전제가 돼 있다”며, “현재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노동자 범위가 협소해지고 새 법안의 적용대상이 되는 특수형태 근로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권오성 숙명여대 법학대학 교수는 “기존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잔여적, 보충적인 면이라는 부분을 명확히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법체계를 둘러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철민 의원은 “유리 원칙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에서 유리원칙을 노동관계법으로 포섭하면서 포괄적 노동제로 나아갈 수 있는, 정말 큰 디딤돌을 이번에 놓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팀장은 “우리나라는 법안 개정이 제정만큼 어렵다. 잘못하면 그 법이 그대로 남고 개정에도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며 “마중물로서 구멍 숭숭 뚫린 법률을 만들어놓고 ‘마중물 부었으니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희 팀장은 “노동자 보호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지속한다면 경총도 그 논의에 적극 참여할 의향이 있다”며 “두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름은 보호법이지만 법안이 천명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