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와 국회 앞에서 '줬다뺏는' 기초연금 해결을 촉구하는 일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에게 기초연금을 줬다가 다음 달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서 이미 준 기초연금액만큼 빼고 지급해서 붙여진 오명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노후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노후소득보전을 위해 도입된 기초연금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노인들을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 ‘줬다 뺏는 기초연금’ 피해 당사자인 99명의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이 “이 문제가 헌법상 평등권, 행복추구권과 같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하는지 가려달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27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합법이라는 최종적인 법률적 판단이다.

기초연금, 줬다 뺏는 이유는? ①보충성의 원칙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이 기초연금을 받았다가 다시 빼앗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갖는 보충성의 원리, 그리고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어르신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인정되는 2가지 문제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보충급여의 원칙’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가 기본적인 생활 유지·향상을 위해 본인의 소득, 재산, 근로능력 등을 활용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최저생계비 수준까지는 생계급여를 보충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소득을 빼고 최저생계비에 도달하지 못하는 금액은 생계급여로 지원한다는 뜻.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해당 가구의 소득과 재산을 합산한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30% 이하일 경우다. 예를 들어, 2019년 1인 가구 기준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170만원)의 30%에 해당하는 51만2102원 이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있다. 만약, 근로소득이 10만원이라면 41만원을 생계급여로 지급하고, 근로소득이 전혀 없다면 51만2102원 전액을 생계급여로 지급한다.

기초연금, 줬다 뺏는 이유는? ②소득 인정되는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소득으로 인정하는 범위에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과 함께 이전소득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전소득은 친족이나 후원자로부터 정기적으로 받는 금품과 함께 각종 수당이나 연금도 해당된다. 즉, 기초연금도 소득에 포함된다.

앞서 설명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충성 원칙에 따라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이 받는 기초연금은 고스란히 소득으로 인정되어 이달 30만원을 받으면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30만원을 제외한 금액이 입급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이 전혀 없는 기초생활수급 어르신의 경우 이달 생계급여 51만원과 기초연금 30만원을 합쳐 81만원을 지급 받는다. 그런데, 다음 달 생계급여 51만원에서 전 달에 받은 기초연금 30만원을 뺀 21만원만 지급되고, 다음 달 치 기초연금 30만원이 입금돼 결국 51만원이 되는 식이다. 기초연금을 받았다 빼앗기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은 40만명, 전체 노인인구 738만명의 5.4%에 달한다.

받았다 빼앗기는 어르신들의 ‘헌법소원’ 취지

2017년, 99명의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이 ‘줬다 뺏은 기초연금’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헌법재판소에 물은 것은 본질적인 형평성 문제였다. 기초생활수급 당사자 어르신들은 헌법재판소에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인해 기초생활 수급 노인과 비수급 노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진적 격차’ 문제를 제기했다.

기초연금 도입과 연금액 인상으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기초생활 비수급노인의 가처분소득은 기초연금 수령액만큼 증가하는데 반해,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가처분소득은 기초연금은 받았다 빼앗기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무는 게 과연 헌법에 담긴 평등권에 부합하는지 물은 것. 헌법소원을 제기한 어르신들은 “헌법재판소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며 부수적 사안만을 다룰 뿐이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합헌’ 판결 요지

‘줬다 뺏는 기초연금’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요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초연금을 이전소득으로 인정해 생계급여에서 삭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은 헌법재판소에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다투는 대상이 될 수 없고, 입법 재량의 일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 즉, 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액만큼 삭감해 지급해도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국가로부터 받는 현금급여 총액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현저한 불이익이라 볼 수 없다는 것.

셋째,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액이 삭감되더라도 국가로부터 장기요양보험, 노인일자리사업, 치매검진, 의료비지원제도와, 주민세 비과세, 동절기 에너지 바우처,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수수료 면제 등 각종 감면혜택을 받고 있기에 평등권을 침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관련 단체&일부 정당, 헌재 판결 “유감”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는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상징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해서도 일부 야당과 관련 시민단체만 입장을 표명했고, 대체로 다른 이슈에 묻히고 있는 양상이다.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정의당만 논평을 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기초연금법의 취지와 형평성을 제대로 고려했다면 이러한 결정이 나올 수 있었을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빈곤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한다면 시행령 개정에 과감하게 나서길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기초생활수급노인 99명과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도 기자회견을 열고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 단체는 “2014년 7월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되며 수급노인은 허기도 해소하고, 약도 제대로 사먹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매우 기뻤으나, 매월 들어오던 생계급여가 기초연금 인상분만큼 줄어들어 노인빈곤문제를 전혀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18년과 2019년, 국회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겠다고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액 10만원을 보전하는 예산안을 보건복지부에서 올렸지만 마지막에 전부 삭감됐다”며 이번 판결을 강하게 규탄했다.

헌재, “상대적 박탈감&불평등 인정”…끝나지 않은 문제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가장 취약계층인 기초생활수급 노인에 대해 ‘줬다 뺏는’ 문제는 계속될 것이고, 이는 기초연금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불평등 심화를 인정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법률적 해석으로 문제는 없지만 제도의 시행 결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에서 헌재가 잘못은 아니라고 인정한 정부 재량권을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회가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부가 수정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고쳐 기초생활수급 어르신들의 소득에서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해결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선 정부의 의지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