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감염병 관련 정책을 주도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과거에 논의됐던 가칭 ‘노인복지청’ 신설 논의도 다시 점화됐다. 급격히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역량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 탓이다.
가칭 ‘노인복지청’ 설립을 요구하는 논리는 고령인구가 가파르게 늘어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되면 고령인구의 복지정책을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 지난 2005년부터 일부 노인단체와 정치권에서 ‘노인복지청’ 신설을 주장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됐다는 의구심이 논란이 된 데다, 정부의 의지도 약해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베이비붐세대가 노인인구에 편입되기 시작한 데다, 실제로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어 노인복지청을 신설하자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노인복지청 신설 논의, 2005년 시작됐다
노인복지지청 신설 논의는 현재 4선인 미래통합당 홍문표 의원이 초선의원이던 2005년 7월 5일, 국회에서 노인복지청 설립을 위한 입법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홍문표 의원은 “우리나라의 인구고령화가 출산율 감소현상과 맞물려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와 사회보험 재정부담 가중 등으로 국정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가칭 ‘노인복지청’ 설립을 주도했다. 2006년 2월에는 노인복지청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최초로 발의하기도 했다.
이후 노인복지청 신설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주체는 홍문표 의원과 대한노인회다.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전문성과 행정력을 집중한 노인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논지였다. 특히, 홍문표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18대를 제외한 19,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매번 노인복지청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한노인회은 2013년, 노인복지청 신설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인복지청 신설과 관련, 주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당의 공약으로 내걸고 주요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민주당도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노인복지청 신설에 찬성하기도 했다.
21대 국회 문 열자 노인복지 전담부처 신설법안들 나왔다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여야 국회의원들이 노인복지를 전담하는 ‘부’ 또는 ‘청’을 신설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노인복지청 신설 논의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전남 무안) 의원은 6월 1일 ‘노인행복부’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인 정책에 대한 기획·종합 업무를 담당하는 노인행복부를 신설해, 정책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미래통합당 정책위의장인 이종배(충북 충주) 의원도 6월 12일 노인복지청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인 보건복지와 일자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노인복지청 신설을 통해 노인의 삶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고령사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서울 서대문을) 의원도 6월 12일 ‘노인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도, 노인정책을 전담, 추진하는 노인부를 신설해 노인 관련 정책과 사업에 대한 통합적인 추진체계를 확보하고, 고령사회 당면과제에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다.
능률 떨어지는 관료주의&정책실행력 한계도 우려된다
노인복지청 신설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특히 2005년 이후 노인복지청 신설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반대입장도 만만찮아 법제화가 무산된 만큼 21대 국회를 중심으로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가장 주된 반대 논리는 노인복지청과 같은 새로운 노인정책 전담기관이 등장했을 때, 정부조직 내 행정전달체계에서 새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한 능률이 향상되고 비용이 절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능률이 떨어지고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명박 정부가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를 출범시킨 후 수많은 부작용을 낳은 것이 좋은 사례다.
또한, 독립조직으로서 정책 실행력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우려도 있다. 처 또는 청은 수행업무가 독립적인 영역일 경우 설립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에 반해 노인정책은 일반 국민의 생애주기와 두루 연관된 행정업무를 주관하는 만큼, 독립적인 처 또는 청으로 설립되기 어렵다는 논리다. 복지부에서 처 또는 청으로 떨어지면 노인 관련 행정입법 기능도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외국의 사례다. 주요 선진국들도 지역사회에 특화된 노인복지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앙집권적인 부처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 노인보건부 설립했다가 ‘보건부 및 사회부’ 원상복귀
전 세계 선진국 가운데 고령화 정책에서 중앙정부에 노인 관련 부처를 따로 편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호주다. 1998년, 호주는 총선 이후 보건가족부를 ‘보건노인관리부’로 명칭을 변경해 독립시키고, 2001년 11월, 다시 ‘노인보건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노인보건부는 보건과 노인 분야에 각각 장차관을 따로 두었다. 보건노령부 장관이 부 전체를 총괄하면서 건강보험, 약제, 보건, 의학 등 대부분의 정책을 관장했고, ‘노령담당장관’이 노인의료 관련 정책만 전담했다. 따라서, 호주의 노인보건부도 노인 관련 업무를 전담한 것은 아니었고, 노인 관련 업무는 보건의료분야에만 한정됐었다. 인구 고령화로 노인의료비 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호주 정부는 이후 다양한 변화를 거쳐 현재는 보건부 및 사회부에서 주로 노인관련 복지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영국, 중앙과 지방의 권한을 분산시킨다
각 국의 노인복지정책은 크게 소득보장, 의료보장, 고용서비스, 사회서비스의 4가지 영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각 영역의 담당기관 및 전달체계는 국가 별로 상이하다.
미국의 고령화 정책은 보건복지부에서 주로 담당하고 있고, 세부적으로 소득 관련 정책은 연방 사회보장청, 의료 관련 정책은 연방정부 산하기관인 Medicare&Medicaid 서비스 센터와 민간 보험사, 고용지원 정책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그리고 사회서비스는 보건복지부 산하 ‘노인처’(AOA, Administration on Aging)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여러 개의 주가 모여 구성된 미국의 정치구조상 연방정부가 모든 것을 담당하기보다는 주정부 독립성을 담보하는 수준에서 전달체계의 권한이 분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고령화 정책 역시 미국과 유사하게 중앙과 지방의 권한이 분산돼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건강보험에 있어서는 미간 보험사를 개입시킨 미국과 다르게 중앙정부의 보건시스템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공단과 비슷한 형태다.
유럽, 나라마다 독특한 정부조직 운영한다
유럽은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각자 다른 제도와 정부조직을 운영한다. 독일의 고령화 정책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기보다는 지방정부의 독립적인 운영과 자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반면, 중앙정부는 입법만 담당하거나 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감독을 하는 데 그치고 있어 미국이나 영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독일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기초지자체와 ‘민간사회복지사업단’이라고 불리는 민간부문 비영리조직이 전담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적다.
스웨덴도 중앙정부에 보건사회부, 고용부 등 고령화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고령화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말하는 ‘콤뮨’(Kommun)이다. 실제적인 정책의 집행은 대부분 이 콤뮨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전반적인 노인서비스에 대한 책임 역시 콤뮨이 진다. 특히 다른 국가에서는 대부분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의료서비스도 스웨덴에서는 콤뮨이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