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흔히 우리가 ‘6·25’라 부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6·25 혹은 6·25사변, 즉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 공산당이 불법적으로 ‘남침’해 우리 민족 전체를 고통에 빠뜨린 비극적인 사건으로 우리는 쉽게 공식화하고 있다. 바로 1950년 6월 25일 북한에 의해 기습적으로 시작됐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된 모든 불행과 고통은 전쟁을 도발한 북한의 책임이라는 결론이 전제돼 있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전쟁이 개시된 날짜는 잘 알아도 휴전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 ‘6·25’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의도 아래에서는 1953년 7월 27일, 즉 휴전일이 설자리는 없다.
6·25? 6·25사변? 한국동란? 한국전쟁?
사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총체적인 연구에 따르면 6·25는 그렇게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하나의 나라였던 민족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소 냉전체제로 말미암아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 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면, 그 과정에는 새롭게 등장한 중국이라는 세력과 미국의 갈등까지 포함돼 이 전쟁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다. 단순하게 말하면 남과 북의 전쟁이지만, 더 크고 넓게 보면 연합국을 주도한 미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명칭부터가 그렇다. 이 전쟁을 외국의 모든 학자들은 ‘한국전쟁’(Korean War)이라 부른다. 그러나 유독 우리만 ‘6·25’라 부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전쟁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물론 국가가 국민들을 향해 전달하려는 내용이 ‘6·25’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6·25’라 할 때에는 단순히 전쟁이 발발한 달과 날만을 강조하게 된다. 즉 ‘6월 25일에 북한이 남침을 했다’가 강조된다. 거기에 사변이 붙어 ‘6·25사변(事變)’이라 한다면 나라에 변고가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동란’(韓國動亂)이란 말 역시 우리나라 한국에 난동이 있었다는 의미로, 사변과 함께 한국,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간주한 것이다. 우리식 의미 부여고, 우리식 해석이다.
한국전쟁이란 단어의 의미
그러나 ‘한국전쟁’이란 용어는 다르다. 한국전쟁이란 단어를 마치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란 의미로 받아들여 우리식대로 해석하지만, ‘Korean War’란 말은 두 개의 한국이 맞붙은 전쟁이란 뜻이다. 남한과 북한의 국호에는 모두 ‘Korea’가 들어 있다. 다만 ‘Korea’를 우리는 ‘한국’, 북한은 ‘조선’이라 번역했을 뿐이다.
우선, 우리의 국호는 ‘대한민국’, 영어로 ‘Republic Of Korea’, 약어로 ‘ROK’라고 한다. 이 국호는 일제 강점기,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대한제국’의 ‘대한’과 ‘중화민국’의 ‘민국’을 합쳐 부리나케 지은 이름이다. 그래서 혹자는 ‘조선’에서 일제의 강력한 영향 아래 허울만 좋은 황제국으로 둔갑한 ‘대한제국’과 장개석의 ‘중화민국’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해 우리 국호를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음,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영어로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약어로 ‘DPRK’라고 한다. 일제가 청일전쟁 후 점령한 만주에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을 건국한 것처럼 ‘대한제국’ 역시 일본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은 자주성을 강조하며 ‘대한제국’을 배제하고, 그 보다 먼저 있었던 ‘조선’의 역사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사실은 남쪽에서 먼저 ‘대한’을 가져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했기에 한 달도 지나지 않은 9월 9일 건국하며 공산주의 국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People’s Republic’에 ‘Korea’를 넣고 그 앞에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Democratic’을 넣은 것이다.
그러니 남과 북 모두 국호에 ‘Korea’가 포함돼 있고 이를 두 개의 ‘Korea’로 간주해 ‘두 개의 한국이 벌인 전쟁’이란 의미로 ‘Korean War’라 칭한 것이다.
‘광복’과 ‘해방’의 차이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이 전쟁을 뭐라고 부를까. 바로 ‘조국해방전쟁’이다. 우리가 남쪽 한국, 북쪽 한국이란 의미로 남한과 북한이라 하듯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줄여 남쪽 조선과 북쪽 조선이란 뜻으로 ‘남조선’과 ‘북조선’이라 부른다. 그리고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진 이후 줄곧 그들은 대한민국을 남쪽 조선으로 간주하며 언젠가는 하나로 돼야 할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이 반영된 이름이 바로 ‘조국해방전쟁’이란 명칭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해방’이란 단어다. 우리는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해 주로 ‘광복’이란 단어를 쓴다. 즉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북에서는 ‘해방’이라 표현한다. 바로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돼 자신들을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의미다. 이런 뜻에서 ‘조국해방전쟁’이란 단어에는 남쪽 즉, 남조선 인민들을 미제국주의와 친일파들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
사실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1945년 광복 이후 6·25 발발까지의 기간 중 남과 북의 경제력 혹은 군사력 어느 것을 비교해도 북쪽이 월등하게 우세했다. 서울에서 압록강 수풍댐의 전기를 쓰고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북쪽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보아 남쪽이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 혹은 건국준비위원회 인사들에 의한 건국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자의 앞잡이이자 친일파, 특히 월남한 반동 지주의 후손을 등에 업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게 됐다. 그러니 남조선은 아직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더러 미제국주의자들의 압제까지 겹쳐 있다고 인식했고, 또 그렇게 선전했다. 김일성은 남조선 인민들을 친일파와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키자고 열변을 토했다. 그럴 만한 경제력과 군사력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사회주의혁명의 세계화를 꿈꾸던 스탈린의 오판이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모택동을 지원하며 국공내전에 참전한 북한군에 대한 중국의 보은이 결부돼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6·25를 그들이 참전하기 전까지는 ‘조선전쟁’이라 부르지만, 참전 후부터는 ‘항미원조전쟁’이라 일컫고 있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견제와 대립이 한반도 모든 인민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그 와중에 이승만과 김일성의 권력 쟁탈 암투가 결부되며 남과 북 모두의 국민들만 헐벗게 만든 전쟁이라 할 수 있다.
7·27 휴전일, 그러나 아직 전쟁 중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6월 25일이 무슨 날인지는 잘 알고 있다. 젊은 세대들도 연도는 몰라도 6·25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보다는 ‘6·25’란 말이 더 쉽게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의 정식 명칭은 ‘한국전쟁’이 맞다.
그런데 왜 우리는 6·25라는 말을 더 많이 할까. 전쟁의 추악한 면을 감추기 위한 위정자들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숨어 있는 것도 모르고 따라 썼기 때문이다. 미군정의 성급한 판단에 따른 친일파들의 득세, 그리고 친일파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 정부가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빨갱이’란 말로 독립운동가를 제거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으로만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6.25’를 강조했던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 그것은 ‘6·25’가 아니라 ‘한국전쟁’이다. 분명한 것은 북의 남침이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남과 북의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북쪽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글_이병렬 소설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