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사단법인 한국시니어스타협회가 제작하는 영화 ‘이연(異緣)’이 남양주 오남의 자코모소파 전시장에서 ‘크랭크 인’ 했습니다. 현재 10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들의 못 다한 사랑과 삶의 이야기입니다. 전남 고흥의 아름다운 섬이 배경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놀랄만한 반전이 있습니다. 한국시니어스타협회는 그동안 독립영화도 2편을 만들었답니다. 이번에 도전하는 ‘이연’은 첫 번째 상업영화입니다. 출연배우들도 5060세대들입니다. 김정훈, 이승현, 김선, 이경영 등이 열연합니다. 국제영화제 출품 후 2023년 3~4월 경 국내 개봉예정입니다. 한국시니어스타협회 사무실에서 김선(60) 회장과 장기봉(65) 감독을 만났습니다. 영화 ‘이연’에 대한 얘기를 들어봅니다.
Q. 영화 ‘이연(異緣)’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장기봉 : 지금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 중 1958년 개띠들이 가장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58년생들을 소재로 뭘 만들까 고민하다가 연극을 만들었지요. 독립영화도 두 편 했어요. 58을 영어로 하자면 ‘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이 돼요. 보석 오팔은 다양한 색을 내거든요. 우리 삶이 50, 60이 되면 각자 다 자기 색을 갖게 된다는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풀이를 하다 보니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 해서 ‘이연’을 만들게 됐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에서 각자 많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슬픈 사랑이 있어요. 대학 때 만나 애절하게 사랑했어도 헤어진 사람, 부모님 반대로 결혼 못한 사람 등 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어느 날 문득 자아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또 살다보면 부부가 같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어요. 우리나라 바다에서 섬을 보면 해무에 많이 잠겨 있잖아요. 그 섬을 보면 마치 나의 모습, 내 마음 같아요, 맘 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어느 날 문득 그 섬이 나만의 무인도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이런 걸 글로 써보자 했습니다.
가슴이 아팠거나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별, 삶, 이런 것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썼구요.
Q. ‘이연’은 무슨 뜻이고, 영화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연’은 한자로 ‘異緣’ 이에요. 남녀의 연을 ‘불사(不死)의 인연’이라고도 하지요.
영화는 우연찮게 만난 중년 남성과 여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남성의 이야기예요. 섬에 살던 한 젊은이가 부모 말 듣고 서울로 대학을 오게 돼요.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고 큰 아파트에 살며 성공한 삶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퇴직하고 나니 별 볼일 없어집니다. 만날 사람도 별로 없고, 딱히 할 일도 없어요. 딸은 외국사람 만나 떠나고, 아내는 딸 뒷바라지 한다며 따라갔어요.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었지요. 어느 날 TV뉴스에 고향이 나옵니다. 그런데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을 듣게 돼요.
여성의 이야기예요. 남편은 애들 교육을 위해 해외로 떠났어요. 여자는 ‘나는 싫다. 여기가 좋다’며 남았지요. 나름 성공도 했고. 역시 TV를 보다가 젊었을 때 그리도 사랑했던 남자를 보게 돼요.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어느 섬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부모님은 “널 섬마을 선생한테 시집보내려고 애지중지 키웠냐”며 결혼을 반대했어요. TV 속 옛 사랑은 세계교육계에서 유명난 사람이 돼 있었어요. 여자는 부모님 눈을 피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러 그 학교에 몰래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학교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죠.
폐교 소식을 듣고 학교를 찾은 남자, 그리고 옛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학교를 찾은 여자. 그렇게 둘은 우연히 조우하게 돼요. 영화는 그 섬에서 7박8일 동안 일어난 일들이예요.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놀랄만한 반전이 있어요.
흔히 영화가 끝나고 엔딩 자막이 오르면 바로 일어나 나가잖아요? ‘이연’은 쉽게 일어나지 못할 거예요. 영화의 감성에 한동안 눈물을 흘리게 되지요. 그만큼 멋진 영화로 만들고 있어요.
Q.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서양적 감성을 뛰어넘는 동양적 감성인가요?
장기봉 : 시놉시스를 본 방송국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어요. 요즘 영화들이 모두 폭력성 일색이잖아요? 돈 많이 들여 부수고, 때리고 잔인해요.
대한민국의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의 지난 삶도 한 번 수채화처럼, 서정시처럼, 우리의 삶을 자연에 빗대어 그려보고 싶었어요.
‘異緣’이란 한자를 보면 일본, 중국 사람들은 뜻을 다 알아요. 어쩌면 필리핀까지도 감성이 같아요. 아시아 여성들을 겨냥할 거예요. 동양권은 삶이 비슷하거든요.
틀에 묶여진 삶에서 일탈하고 싶은 마음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감성적으로 만들었어요. 사랑의 본능도 난해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표현했구요. 중년이라도, 유부남 유부녀지만 연민의 감정은 느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은 거였죠.
배우들도 우리와 감성이 같은 5060세대들을 기용했어요. 꼬마신랑 하던 김정훈, 고교얄개의 이승현 등이 나와요.
김선 : 우리 세대는 억누르고 살았던 사랑과 삶의 본능이 있어요. ‘이연’을 보고나면 그 답답함을 다소 해소할 수 있어요. 간접경험으로 대리만족할 수 있는 거죠. 영화라는 예술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해요.
Q. 배경으로 고흥을 택한 이유는?
장기봉 : 고흥은 다도해에 있어요. 바다 속 한쪽이 육지와 붙은 반도지요. 물 위에서 보면 섬이거든요.
살다보니 사람마다 가치와 철학이 서로 달라요. 같이 살아도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섬처럼 홀로 사는 느낌도 들어요. 솟은 섬이 나만의 무인도 같다는 생각을 했지요. 섬 속에 갇힌 나인 것 같았어요. 수많은 섬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고, 반도인 고흥은 그 사람들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운 나인 것 처럼.
고흥은 반도여서 이쪽에선 일출이 저쪽에선 일몰이 보여요. 또 자주 해무에 잠겨요. 아주 아름다워요. 섬이 조용해서 촬영에 방해도 없어요.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곳이에요. 산, 바다, 계곡, 늪지 등 알려지지 않은 비경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여기가 동양적 감성을 내기에 적격이라 생각했지요.
섬과 같은 사람들의 외로운 삶, 해무에 잠긴 듯 알 수 없는 인생, 해무가 사라지며 드러난 섬처럼 각자 다채로운 삶을 표현하기엔 그만이지요. 여기에 가수 유익종의 ‘이연’이란 노래가 OST로 나오는데, 애잔함이 아주 잘 어울려요.
김선 : 고흥은 유자차나 나로우주센터 정도만 알지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이연’이 흥행에 성공해서 고흥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 좋겠어요.
장기봉 : 영화에서 고흥을 소재로 한국문화 일부도 소개하고 있어요. 고향을 찾아 간 그 남자는 자신의 은사가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들어요. 그러나 운명 직전이었지요. 은사는 그가 섬에 있는 동안 돌아가시게 되죠. 전통 장례식으로 천막도 치고 등도 달았어요. 고향을 지키고 살던 친구들이 장례를 치러 드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퇴직금을 자녀들에게 줬는데, 모두 외국에 나가 오지도 않거든요.
친구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던 주인공의 삶을 시비 걸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는 다정한 친구였어도, 이제는 어울릴 수 없는 어색함이 들어요. 서로 이질감을 느끼며 부딪칩니다. 그는 명문대 나와 대기업 임원으로 승승장구 했어도, 고향을 잊고 살았다는 허탈감과 괴리감이 듭니다. 우울증이 있던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죠.
김선 : 제작팀이나 출연진들은 고생도 많았어요. 서울에서 고흥은 5시간이나 걸리는 멀고 힘든 여정이거든요. 그래도 수채화 같은, 동양적 감성을 위해서는 아주 좋아요. 주인공이 머물던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도 대단해요.
Q. 시니어 모델과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김선 : 한국시니어스타협회에는 100명 정도의 시니어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베이비부머들은 경제성장에 몰두하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끼나 희망보다는 경제에 힘썼어요. 진로도 자기 마음대로 정하기 어려웠지요.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됐지만 ‘나’라는 주체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 허전하고 외롭지요. 저도 교사 출신인데, 명예퇴직을 하고 이제야 제 끼를 찾은 거지요.
장기봉 : 저도 대기업 간부도 했고, PD도 했고, 사업도 했지만, 이제는 연극, 영화, 모델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바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는 많은 역할을 해볼 수 있어요. 자기 끼를 누려야 해요. 꿈을 이루지 못하면 한이 돼요.
김선 : 모델과 배우를 꿈꾸며 자아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오세요. 여기서 워킹과 연기 지도를 받고 실전에 보내주기도 하고, CF시장도 연결해 줄 수 있어요. 그러나 모델이나 배우를 해서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모델을 해서 쇼에 출연할 때, 옷 입을 때,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면서 많은 돈을 내요. 화려한 무대에서 쇼를 하는 것에 만족하려 하면 힘들어요. 바른 걸음걸이, 취미생활, 자기를 가꾸는 것이지요. 작지만 자기 꿈을 펼칠 수 있으니까요. 인생2막을 건강하게 즐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