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고령층 미취업자가 늘고 있다. 고령자를 차별하지 않는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노인일자리사업현장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소지한 어르신들이 환한 표정으로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정책브리핑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2월말~3월초 중단했던 노인일자리사업을 5월부터 순차적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지만, 고령자 취업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이 재개됐어도 고령자는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쉽사리 현장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데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과 도소매, 숙박, 음식점에서도 일자리가 크게 줄어 고령층은 건강과 일자리,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 퍼지고 있는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앞으로 고통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기준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 미취업자 수가 1년 새 27만명 이상 증가하며 638만명을 기록했다. 정부가 고령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올해에만 1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정부지원 노인일자리사업을 늘렸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건설업, 도소매, 숙박음식업과 같은 대면서비스 업종에서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면서 고령층이 일할 곳을 잃고 있다.

미취업자 0.6%↑, 건설·도소매·음식숙박업 종사자 0.6%↓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79세 고령층 인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2만8000명(3.1%) 증가한 1427만1000명이었다. 이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820만8000명(57.5%)으로 나타났다. 55~79세 고령층 10명 중 6명 가량이 경제활동을 했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자와 실업자를 제외하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미취업자는 637만7000명, 전체 고령층 인구의 44.7%를 차지했다. 미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만3000명, 0.6%포인트 가량 늘어났다.

이처럼 미취업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고령층이 많이 근무하는 도소매·음식숙박업과 건설업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고령층 취업자 가운데 건설업 종사자는 8.0%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6%포인트 감소했다. 또 도소매·음식숙박업 종사자 역시 비중이 19.2%로 전년 동기 대비 0.6%포인트 줄었다.

코로나 영향 최후 보루 노인일자리사업도 중단 위기

고령층 경제활동인구 820만8000명 가운데 약 70만명(8.5%)은 정부지원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다. 노인일자리사업이 고령층의 경제활동인구 통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정부는 올해 공공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으로 약 1조2000억원을 배정해 지역별로 70~80%를 상반기에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고령층 고용충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던 노인일자리사업은 5월부터 순차적으로 재개됐고,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취업자 비중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7%포인트 증가한 37.1%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고령층의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취업자는 증가했지만, 고령층 종사자가 많은 대면 서비스업이 코로나19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면서 고령층의 고용 상황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코로나19 탓에 문을 닫거나 사업을 축소한 건설업과 도소매·음식숙박업에서 고령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늘어난 취업자 수도 의미가 바랬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 다시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노인일자리사업도 중단될 위기에 있다.

실제로, 정부의 공공 일자리사업이 많은 보건·사회복지(16만4000명), 예술·스포츠(2만9000명) 분야 취업자 수는 20만명 가량 증가했지만, 도소매업(-17만6000명), 음식숙박업(-18만6000명)에서만 36만명의 취업자가 사라졌다. 제조업 취업자도 지난보다 5만7000명이 줄었다.

생활비 보내기 위해 일 원하는 고령자 증가

이처럼 고령층 고용시장은 코로나19 감영증 여파로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고령층은 더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67.4%(962만명)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포인트나 치솟았다. 일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압도적으로 ‘생활비 보탬’(58.8%)이 가장 많았고, ‘일하는 즐거움’(33.8%)이 뒤를 이었다.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층은 평균 73세까지 근무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사때와 같은 결과다.

더 큰 문제는 일자리의 양과 질이 일하기 원하는 고령층의 희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이다. 고령층이 원하는 일자리 형태에서 전일제는 56.7%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포인트 떨어졌다.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이라도 일할 수 있다는 의지가 반영된 탓이다.

희망하는 월평균 임금수준은 ‘150만~200만원 미만’(22.7%) 가장 많았고, ‘100만~150만원 미만’(19.5%)이 뒤를 이었다. 고령층 2명 중 1명 꼴로 월 200만원 미만이라도 일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한편, 55~64세 취업 경험자들의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 평균 근속기간은 15년 7개월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평균연령은 49.4세로 역시 지난해와 동일했다. 주된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는 ‘사업부진, 조업중단, 휴·폐업’(33.2%)이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50세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73세까지 20년이 넘는 기간을, 생계를 위해서, 200만원 미만이라도 받으면서 일하고 싶은 게 대한민국 고령층의 현실이다.

고령층 재정일자리 정책 한계, 근본적인 정책 전환 시급

정부가 세금을 뿌려 고령층 일자리를 끌고 가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0~60대 베이비붐세대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노인인구에 편입되고 있어 일자리의 질과 재정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인일자리사업 현장에 투입되는 노인들은 70대 중반~80대 중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60대와 70대 초반의 ‘젊은 노인’들은 참여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다.

현 노년세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교육수준도 높고 자산도 많은 5060대 베이비붐세대들이 폐지수거나 교통정리와 같은 노인일자리사업 공익활동에 만족할 리 없다. 노인일자리사업 가운데 인기가 많은 시장형은 길어야 1년이면 다른 노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만둬야 하고, 재능나눔활동은 ‘원치 않는 자원봉사’에 가깝다. 전문가들이 5060 베이비붐세대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요구하는 이유다.

고령자에 대한 차별 없애는 근본적인 정책전환 시급

전문가들은 비경제활동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업수당을 현금으로 뿌리는 정책 대응은 재정투입 대비 효과가 너무 떨어진다고 꼬집는다.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유연성을 높여 능력있는 고령자가 오랜 동안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과 같이 경직된 노동환경에서는 아무리 능력있는 고령자라도 높은 인건비 탓에 오래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비대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유지될 수 있는 정책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제와 함께 고령자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의 자율성을 높이자는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연령차별을 금지하면서 법 스스로 55세 이상인 사람을 고령자로 분류하고, 고령자고용을 촉진하자면서 정년을 60세로 못 박고 있다. 고령자 고용을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현행법부터 고령자·준고령자 연령차별과 정년을 없애는 개혁을 통해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