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운성 기자] 사춘기 16세 소녀가 불교에 심취해 24세에 출가해 스님이 됐고, 시간이 흘러 사찰음식 명장이 됐다. 스님은 “그냥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살았다”며 담담하다. 수행공동체를 꿈꾸는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우관 스님의 길과 꿈이다.
우관 스님의 길과 꿈
2022년 6월 감은사로 들어가는 길은 어수선했다. 감은사 주변 업체들이 시설물 공사를 하는 듯했다. 건설 기계들이 길을 파헤쳐놨다. 길 주변에는 공사용으로 쌓은 높은 흙이 감은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100년 넘은 기와로 이어지던 아름다운 푸른 숲길은 잠시 사라졌다.
울퉁불퉁한 그 길의 끝에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이 있다. 문화원장을 맡은 우관 스님이 계시는 곳이다.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우관 스님을 2022년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했다.
조계종은 사찰음식 전승과 보존 및 대중화에 큰 업적이 있는 스님을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하고 있다. 2016년 선재 스님, 2017년 계호 스님, 2019년 적문·대안 스님에 이어 우관 스님이 네 번째 사찰음식 명장이다.
문화원에서 마주한 스님께서 먼저 차를 준비했다. 차를 준비하는 스님의 손길이 거침이 없다. 거침없지만 부드러운, 익숙한 듯, 편하게 흐르는 손길이다. 마치 이제 맞이할 우관 스님의 길처럼.
스님이 걸어온 길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네가 네 마음의 주인”이다. 청담 스님이 쓴 ‘마음’이라는 책의 이 한 구절이 사춘기 16세 소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불교 철학에 심취해 24세에 출가하고 34세의 나이에는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40대에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깨달음을 얻어 유학를 중단하고 미얀마에서 수행했다. 44세에 한국으로 돌아와 오늘 이 길에 서 있다.
그 길의 변곡점마다 스님의 인생은 크게 변했다. 스님은 그 힘을 ‘깨어 있음’으로 표현했다.
“그때는 늘 깨어 있었지. 자도 자는 게 아니고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게 아니었지.”
그럼에도 스님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 궁금했다. 감수성과 순종, 도전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사춘기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성을 자신의 인생으로 끌어들였다. 불교에 대한 감수성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 안의 것으로 만드는 일, 누구나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인도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나 히말라야에서 느낀 깨달음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에너지는 그야말로 도전적이다. 2009년에는 불과 5일 전 요청받은 음식 전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명장은 아무나 되지 않는다.
“그냥 그냥 길을 걸어왔어.
그냥 주어진 상황 주어진 인연 속에서 그냥 열심히 온 거였어요.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서 온 거예요.”
스님은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맛과 철학, 수행공동체
음식 명장 스님이 맛을 내는 비결이 궁금했다. 스님은 철학과 마음, 그 이외의 비결은 전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사실이라는 것은 진실과 다를 수 있다. 사실은 자기 내면에 있는 정보 체계 속에서 도출해 내는 그릇일 뿐이다. 스님은 눈에 보이는, 손끝에 만져지는, 혀에 닿는 음식의 맛이나 모양보다는 음식의 근본 진실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사찰 음식을 하면서 우관 스님만이 갖고 있는 철학이다.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 하는 거다. 그래서 계속 “좋아져라, 좋아져라” 그리고 “사랑한다”라고 음식에게 속삭인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어우러져 스님만의 독창적인 맛을 만들어 낸다.
스님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수행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관과 세계관, 철학관을 갖고 있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음식은 그 공간의 징검다리다.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같은 철학과 같은 사상을 갖고 있다면 이 공간에 모일 수 있다. 그래서 함께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명상을 하고, 좋은 노동을 하며 사는 것이다.
같은 길을 향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자유롭게 이 공간에서 함께하되 각자의 삶을 살고 각자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삶이다.
부모님 몰래 간직하던 하얀 운동화에 하얀 교복을 입고 사찰을 드나들던 소녀가 지금은 사찰음식 명장이 됐다. 스님은 지금도 열정 넘치는 순수한 그 소녀의 모습이다.
이제는 불교에 빠져들던 순수함에 수행공동체을 꿈꾸는 열정을 더한 수행자다.
수행공동체로 가는 길
코로나는 우관스님의 길도 잠시 멈추게 했다.
내가 길을 멈추는 곳이 길의 끝이다. 그러나 스님은 아직 길의 끝에 가지 않았다. 이제 다시 수행공동체로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하고 있다.
스님은 멈추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한다. 기록은 먼 훗날에도 스님이 꿈꾸는 수행공동체를 함께하고 이어가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푸른 숲과 100년 넘은 기와로 덮인 아름다운 감은사 길도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이어져라 이어져라,
좋아져라 좋아져라,
이뤄져라 이뤄져라”
스님과 한 마음으로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