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장단콩웰빙마루' 운영자문위원 박현숙(65) 씨. 사진=황복실

[시니어신문=황복실 기자] 38년을 농협에서 근무한 뒤 상임이사로 퇴직한 박현숙(65) 씨는 현재 파주장단콩웰빙마루의 운영자문위원이다.

파주장단콩웰빙마루는 파주를 대표하는 특산품 장단콩을 테마로 만들어진 곳이다생산·가공·유통·판매는 물론 체험·관광·문화를 즐길 수도 있다, 6차산업의 농촌 융복합단지인 셈이다.

짧은 커트머리에 반듯한 체형의 그가 건넨 인사가 군더더기 없이 명쾌했다운영자문위원이 하는 일에 대해 묻자재직 당시 로컬푸드를 도입해 일하던 노하우를 일괄 반영한 곳이라 한다.

은퇴 후 지역 돌며 로컬푸드’ 강의·컨설팅

“‘로컬푸드란 소비되는 곳과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되는 식자재혹은 그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말해요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판매 형식이지요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고중간 다단계의 유통 과정이 없어 서로에게 유익한 시스템이죠물건만 좋으면 지역사회를 살릴 수 있고 수입도 좋아요이동 거리를 줄이니 온실가스로 인한 환경을 줄일 수도 있고요.”

그는 은퇴 후농촌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로컬푸드 강의와 컨설팅을 했다. “강의를 통해 생각을 바꾸고 실천하는 분들의 성공 사례가 많다며 자신이 로컬푸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말한다.

“20여년 전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로컬푸드가 활성화돼 있었어요연세 높으신 분들이 텃밭에서 재배한 농작물을 직접 팔던 것이 시작점이라더군요시니어들의 일자리 창출인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시니어들이나 저소득층 분들이 텃밭을 가꾼다수확한 농작물을 모두 소비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박현숙 씨의 강의는 그런 분들을 위한 것이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할 말이 많은 듯박현숙씨는 여러 개의 자그마한 수첩과 책을 펼쳐 보인다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며 린 마틴의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란 책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린 마틴은 70세 생일을 맞아 살던 집을 처분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요여행 중에 겪은 일들도 흥미로웠지만부부의 이야기에 더 공감됐어요저도 조금 있으면 70세잖아요하하!”

책 속의 주인공 린 마틴의 삶처럼 뭐든 미루지 말자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그는 작은 수첩들도 꺼내 보인다빼곡히 적힌 버켓리스트강의 시간표여행할 곳의 많은 지역들하루 일정과 삶에 대한 기록들이 각각의 수첩에 단정히 적혀 있었다그의 평상시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박현숙 씨는 퇴직을 앞두고 맨 먼저 십 년 동안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직장과 환경 때문에 못했던 일들을 낱낱이 적고가장 먼저 어릴 적 꿈이었던 그림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퇴직 즈음 홍익대서 그림공부 시작

퇴직 보름 전에 홍익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했어요기초가 부족하니 어반스케치부터 시작했지요. 3년 전부터는 유화를 그려요부족한 부분은 지자체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어 너무 좋아요.”

곳곳의 아름다운 마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그는 고희 때 첫 전시회를 여는 게 목표다그 외에도 성경읽기피아노 배우기유럽에서 한 달 살기책읽기 등 노년의 계획이 수첩 안에 빼곡하다.

매일의 루틴을 정해 놓고실천한 것은 색색의 스티커로(사진첨가구분해 붙여요피아노는 노란색책 읽기는 붉은색이런 식으로요실천 못 한 것은 공백으로 남아 해야 할 일을 빠트린 것이 한눈에 보이지요.”

모두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어렵다그럴 때면 할 수 있는 만큼의 계획으로 수정한다빽빽한 일정에 남편이 불평할 때는 함께 운동하는 시간과 근처 도서관에서의 그림 수업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번 달 스티커 수를 세어보니 성경읽기와 기도를 제외하곤 빼먹은 게 많네요반성도 하고또 새롭게 계획을 세워 봐야지요.” 

박현숙 씨의 다이어리. 매일 루틴을 정해 놓고, 실천한 것은 색색의 스티커로 구분해 붙인다. 피아노는 노란색, 책 읽기는 붉은색, 이런 식이다. 실천 못 한 것은 공백으로 남아 해야 할 일을 빠트린 것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황복실
박현숙 씨의 다이어리. 매일 할 일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황복실

후배들 요청에 인생2막 강의도 준비

그는 요즘 예전 직장 후배들을 만나면 어떻게 지나세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치열하게 살던 삶을 알기에 듣는 질문이다시간이 많아서 너무 좋다는 말을 서두로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후배들은 선배님후배들이나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인생 2막에 대해서 강의해주시면 좋겠어요그것도 버킷리스트에 꼭 넣어주세요라고 당부한다그 덕분에 지금 강의 계획도 하고 있다예전에 복지 업무를 담당한 경험을 되살려 잠자는 노년의 자기개발ㆍ취미ㆍ여가활동 등 먼저 경험한 것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다니얼 J.레비틴은 사람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더 많이 했더라면후회 한데요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을 소개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이 있겠냐는 박현숙 씨그 보람된 일들을 실천하기 위해 공부는 계속될 거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소확행이잖아요

그는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확행이란 단어를 좋아한다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기 위해 쉼 없는 삶을 택했다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에서 얻는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행복감이 지속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행복감은 감사로 이어지잖아요감사가 넘치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밝아질 테고요.”

흔히노년이 오면 가난한 고통외로운 고통아무 일 하지 않는 고통병드는 고통을 겪는다는데박현숙 씨의 행보는 어디까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