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유별님 기자] 한낮 기온 29도, 66세 여성 G씨가 카페 앞에 줄을 섰다. 자신의 순서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마시고 싶은 음료를 찾는 것도 어렵다. 처음에 뭘 누르고, 그 다음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망막하다. 앞 사람이 주문하는 것을 넘겨다본다. “포기하고 그냥 갈까?” 망설인다. 그러던 중 차례가 왔다. 덜덜 떨며 더듬더듬 눌러 본다. 하지만 자꾸 틀려 헤맨다. G씨는 결국 직원에게 요청한다.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가슴 떨려 못살겠어요. 심지어 재래시장 마트에도 셀프계산이라며 이런 걸 차려놔서 나 같은 사람은 화가 나고 우울해요.”
디지털시대, 은행은 창구보다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나 인터넷뱅킹을, 병원이나 식당, 영화관, 마트 등 수많은 매장에선 무인결제시스템 ‘키오스크’가 대세다. G씨와 같은 디지털 약자들은 어딜 가도 가슴을 졸인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디지털 시대, “배워야 산다”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는 국민 95%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60대 이상도 이미 8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기능은 전화 주고받기와 문자, 동영상 시청 정도에 그친다.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전체의 16.5%나 차지하고 있으나 디지털 교육은 미미하다. 보이스피싱이나 스펨메일에 쉽게 노출돼 재산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귀여운 손녀손자 노는 모습을 겨우 사진찍어도, 감히 편집이나 영상제작은 꿈도 못 꾼다. 행여 잘못 누르고 만지면 폰이 망가질까 두려워 시도조차 못한다.
그래서 ‘디지털 세대이음단’이 반갑다. ‘디지털 세대이음단’은 디지털 소외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강사교육을 맡은 김지연(55) 두플러스협동조합 대표는 “고작 스마트폰 하나 모른다고 누군가의 삶이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디지털 세대이음단’은 서울시 요청에 의해 올해 서울 50+재단 산하 각 캠퍼스에서 강사 110명을 양성한다. 강사들은 서울시 노인복지시설 등에서 노년층 디지털 격차 해소를 지원한다. 스마트폰, 키오스크 사용법, 사진 찍기와 영상제작 등이 주요 교육 내용이다.
강사 교육을 맡은 두플러스협동조합 팀원들은 모두 복지관 활동경험 3년 이상 경력자들이다. 현장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시니어들을 많이 만나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니어를 좋아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김강현 교육본부장과 정환식 강사는 IT영상기획과 교육, 제작하는 디지털리터러시(디지털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50+세대를 위한 매력적인 콘텐츠 제공을 목표한다.
배운 것을 3명에게 되가르치면 ‘선생’되는 ‘제3자의 법칙’
김지연 대표는 “어르신들의 기억력이 생각보다 좋으세요. 창의력도 뛰어나서 일일이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서로 상의하며 문제를 해결하시죠”라고 말했다.
한 복지관에서 디지털 교육을 시작한 첫날, 여기저기서 손들며 “선생님”을 불러댔다. 강사들은 책임강사 1명과 보조강사 3명 등 4인 1조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본인의 노력보다는 강사에 의지하려 한다. 4명의 강사들이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쪽에서 남성 어르신 한 분이 손 한 번 들지 않고 끙끙 노력하고 계셨다. 가만 살펴보니 무척 헤매셨다. 김지연 대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제안했다. 남성 어르신은 “저, 잠시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충격이었다. 처음 대하는 진지한 태도였을 뿐만 아니라 94세였기 때문이다. 그 남성 어르신은 혼자 해내려 했지만, 결국 김지연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다음 시간. 어르신들이 이전 수업 내용을 기억하리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강의해야 한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94세 남성 어르신은 거의 완벽하게 지난 수업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지연 대표는 궁금했다. 남성 어르신은 “복지관에서도, 집에서도 매일 3명 이상 모아놓고 배운 내용을 가르쳤다”고 했다. 김 대표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힌트를 얻었다.
‘배운 내용을 최소 3명에게 전달하면 선생이 된다.’ 그리고 ‘제3자의 법칙’이라 이름 붙였다.
실제로 한 구청에서 실험했다. 어르신들에게 질문받지 않고 3명 이상 모여 연구하고 노력하기를 권했다. 어르신들은 쉬는 시간에도 서로 질문하고 가르치며 와글와글 공부했다. 12회 강의가 끝났을 때, 모두들 거의 완벽하게 디지털 언어를 이해하고 영상제작까지 해냈다. 이후 다른 교육에서도 강조하는 방식이 됐다.
김지연 대표가 화상회의 방식으로 수업하던 날이었다. 화면에 수강생 얼굴이 하나 둘 들어찼다. 그런데 한 화면에 얼굴이 아닌 다리 깁스가 들어왔다. 갑작스레 다리 수술을 받은 한 수강생이 병원침대에 누워 수업에 참여했다. 김 대표는 “디지털이 아니었으면 그는 병상에서 홀로 쓸쓸히 지냈겠죠”라며, “디지털 교육의 효과”라고 했다.
한 60대 여성 수강생의 경우, 시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 상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면회를 못하게 됐고, 시아버지는 우울감에 젖어 기력도 떨어졌다. 식사량이 줄며 총기도 사라졌다. 생각 끝에 며느리는 스마트폰 가족 대화방에 화상회의 주소를 올렸다. 요양병원 요양보호사에게 화상회의 참여 방법을 알려주고, 시아버지가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지방에 사는 아들과 딸이 화면에 나타났다. 밝은 얼굴로 아버지를 부르며 인사를 나눴다. 미국에 사는 손자도 보였다. 할아버지를 부르며 손바닥을 맞대자고 했다. 그 후로 시아버지는 기력을 회복했고 우울감도 해소했다.
“디지털 교육, 노인·장애인에겐 ‘신의 한 수’”
장애인은 디지털 분야에서 잠재력이 풍부하다. 그러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소외를 경험한다. 많은 장애인들이 디지털 언어를 배운 후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만족할 만한 변화를 보였다. 김지연 대표는 “이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보람과 희열로 행복하다”고 했다.
김지연 대표는 “나이 먹는 자체가 장애가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거동이 불편하게 되면 병원신세를 지고 휠체어를 타거나 누워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지연 대표는 “디지털 교육은 노인과 장애인에게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시니어들은 도서관급 스토리를 내재하고 있다. 각 개인이 가진 사례들은 모두가 매력적이다. 이들의 이야기 표현에 공감하며 감성을 표출하게 해 영상수업으로 끌어내는 보람도 크다.
디지털 교육에 처음 참여한 시니어들은 간단한 메시지 주고받기가 전부였다. 그러다 영상제작을 배우면서 손녀손자와 소통을 하게 된다. 나아가 동네 영상과 소상공인들의 영상을 제작해 공공기관 홍보용으로 채택되기도 한다.
김지연 대표는 “어르신들은 이런 신세계가 있는 줄 몰랐다”며, “이제야 사는 보람을 느낀다면서 성취감으로 흐뭇해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또래 어르신들로부터 ‘그 나이에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자신감을 갖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교육, 시니어 당사자의 적극성이 중요
최근 시니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라도 얼마든지 디지털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배움터’와 연계해 어르신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디지털 교육을 확대키로 했다.
각 지자체도 복지관이나 도서관 등에 ‘디지털배움터’나 ‘시니어인턴쉽’ 등의 제도를 활용, 시니어들을 지원하고 있다.
김지연 대표도 보다 실질적인 교육을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전에는 디지털강사 양성교육에서 PPT(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나 노인교육학, 외모·옷차림 등 강사의 매너에 중점을 뒀다”면서, “그러나 3년 이상 복지관 현장 경험해 보니, 이론보다 시니어들의 생활과 밀착된 실용적인 디지털언어를 연구해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보, 아버님 댁에 와이파이 깔아드려야 겠어요”
김지연 대표는 “자녀들은 부모님과 통화나 문자 정도 주고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쓸데없이 이것저것 누르고, 보이스피싱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을 떨궈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 대표는 “혼자 사는 부모님께는 와이파이를 설치해 드려야 한다”며, “스마트폰을 활용해 은행업무도 보고,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와 지식도 얻고, 여행 예약이나 선물하기 등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뇌 활성화와 감정유지에도 좋아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시니어들이 디지털언어를 알고 변화된 모습을 보면, 사명감과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면서 재차 시니어들에 대한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