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들의 디지털 소외가 현실적인 수치로 드러났다. 한 마디로, 인터넷뱅킹 이용자 84%는 20~40대였고, 60대 이상은 3%에 불과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서비스가 빠르게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금융소비자들의 소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은행들이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3년반 사이 현금자동입출기는 19%, 은행점포는 7%가 줄어 고령자들의 은행 이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고령자들은 비대면 서비스의 낮은 금리와 같은 실질적 혜택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은행 오프라인 점포와 현금자동입출금기까지 급감해 단순한 현금 인출조차 쉽지 않은 처지다.
이처럼 고령자들이 금융 디지털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면서 ‘경제적 학대’라는 비판도 나왔다. 고령자를 위한 디지털 금융서비스 연구를 비롯해 디지털 소외와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은행 이용 60대 이상 3% 불과
시중 은행보다 금리와 같은 각종 혜택이 가장 많은 인터넷은행도 고령자들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다. ‘카뱅, 케뱅’은 그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은어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이 최근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로부터 받은 ‘연령별 이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이용자 가운데 60대 이상은 평균 3%에 불과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계좌를 개설한 고객이 1293만7615명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60대 이상 연령층 비율은 60대 2.4%, 70대 이상 0.4%로 집계됐다. 60대 이상은 2.8%. 반면, 20∼40대의 비중은 83%에 이르렀다. 60대 이상 가입자를 20대(30.9%), 30대(29.8%), 40대(22.5%)와 비교하면, 20∼30분의 1 수준이다.
케이뱅크에서도 60대 이상은 3.2%에 머물렀다. 카카오뱅크와 마찬가지로 가입자(157만6599명) 10명 중 8명(84%)은 30대(33.4%), 20대(26%), 40대(24.8%)였다.
인터넷뱅킹 혜택은 여전히 ‘그림의 떡’
이 같은 통계는 고령층이 금융서비스의 본질 측면에서 더 낮은 금리와 간소한 절차 등 비대면 서비스가 제공하는 실질적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에도 대면 거래를 통한 감염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기준, A은행의 비대면 신용대출 대표상품의 최저 금리는 2.38%(1억원, 1년 만기 기준)였다. 반면, 대면 신용대출 대표상품의 최저금리는 3.41%. 즉, 인터넷뱅킹 금리가 1%포인트 이상 낮다. B은행 역시 비대면 신용대출 주력 상품 금리(1.68∼2.78%)가 대면 신용대출 대표 상품의 금리(1.99%∼2.99%)를 약 0.3%포인트 밑돈다.
C은행에서도 해당 은행과 계열사 거래 실적 등이 없어 우대금리 혜택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2.7% 단일 금리가 적용되는 비대면 전용 신용대출 상품이 유일했다.
인터넷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은행들
시중 은행들의 업무가 인터넷으로 쏠리는 현상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인터넷 은행들의 경우 영업점 운영과 관련한 고정비용이 없고 필요 인력도 적기 때문에 신용대출 금리를 낮출 여력이 많다. 기존 시중은행으로부터 인터넷은행으로 대출을 갈아타는 고객도 많다.
따라서, 고객을 무방비 상태로 뺏기지 않으려면 전통적 은행들도 비대면 대출 상품에 금리 혜택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인터넷·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고령층은 시중은행-인터넷은행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리 인하와 같은 서비스 경쟁의 수혜에서 완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2019년 국내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과 인터넷뱅킹 이용 비중은 59.3%로 전체 금융 거래 10건 중 6건에 달했다. 반면, 오프라인 거래 비중은 2018년 9.8%에서 2019년 7.4%로 줄었다. 같은 기간, 현금자동입출기를 이용하는 비중도 30.2%에서 26.4%로 떨어졌다.
폐쇄되는 은행점포, 불편 가중되는 고령자
이처럼 금융서비스가 온라인으로 몰리면서 고령층이 대면 방식으로 주로 이용하는 은행 영업지점, 현금자동입출기(ATM)는 갈수록 사라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 4만3710개였던 전체 은행권 ATM기 수는 올해 7월 말 현재 3만5492대로 불과 3년 반 사이 19%나 줄었다.
같은 기간 은행별 ATM 감소율은 씨티은행이 65%(440→155개)가 줄었고, 이어 SC제일은행(-30%, 1천24→713개), 우리은행(-27%, 6천445→4천718개), KB국민은행(-22%, 8천479→6천587개) 순이었다.
시중·지방·특수은행을 모두 포함한 전체 은행 점포도 2016년 말부터 올해 6월 말 사이 7101개에서 6592개로 줄었다. 509개(7%)나 문을 닫은 셈이다.
시중은행 중 점포 감소율은 씨티은행(-68%, 133→43개), 하나은행(-22%, 862→675개), SC제일은행(-17%, 254→212개 ), KB국민은행(-10%, 1천130→1천18개) 등에서 높았다.
현장과 어긋나는 ‘탁상공론’ 정부정책
최근 정부는 범부처 2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와 고령친화 금융지원TF 논의 결과에 따라 이른바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시중 은행들은 비현실적인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를 테면, 시중 은행들의 점포 폐쇄에 대한 정부 대응책은 이동 또는 무인점포(STM) 확대 방안이다. 고령친화 금융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은행업계는 기계가 은행 창구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은행 무인점포는 영상통화나 신분증 스캔의 방법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예금‧대출‧펀드 등 창구 업무를 고객이 직접 처리하는 무인채널을 말한다. 시중은행들은 “대부분의 고령자들은 현재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현금을 인출하는 현금자동입출기(ATM) 사용에도 어려움을 느낀다”면서 무인점포 확대 정책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가 또 다른 대안으로 내세운 이동식 점포도 마찬가지다. 이동식 점포는 입·출금 거래뿐 아니라 은행 창구의 대부분 업무를 할 수 있는 ‘찾아가는 점포’다. 당국은 점포 폐쇄 지역이나 고령층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을 선정해 매주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에 이동 점포가 방문하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동 점포는 보통 휴가철이나 명절에 이벤트를 위해 운영됐기 때문에 각 시중은행이 보유한 이동 점포 차량은 10대 미만이다. 매주 전국을 방문하려면 이동 점포 수를 대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결국 은행들이 부담해야 하는데, 정부정책을 따라갈 만한 유인책이 없다.
시니어 대상 디지털 교육 동반돼야
디지털 가속화와 맞물린 고령층 소외현상을 해결하려면 궁극적으로 디지털 교육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고령층에 특화된 교육을 제공해 지식 수준을 디지털 시대에 맞도록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 고령층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부 조직이 마련돼 있고, 그에 맞는 다양한 금융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고령자 맞춤형 교육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다는 관점 전환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금융이 발전할수록 고령자 소외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한 상황이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고령층 금융 소외를 경제적 학대로 심각하게 인식한다.
영국·미국, 일본 등에서는 은행 서비스의 물리적 디자인 과정에서부터 고령자의 접근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고령자의 소외를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령자를 위한 금융서비스 연구와 평가를 위한 시범사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고령자의 금융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