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최근 패션유통 업계를 중심으로 ‘시니어 모델’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시니어 모델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시니어들이 새로운 면모를 보이면서 ‘멋지게 늙는 것’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시니어 모델을 내세우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멋지게 나이 든 시니어를 롤 모델로 본다는 것.
업계에서는 시니어 모델들이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현상에 대해서 시장 확대는 물론,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인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시니어 고객을 잡아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을 선발, 양성한다면서 우후죽순 모델 학원과 각종 대회가 난립할 경우 자칫 시니어들의 허영심을 부추겨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식당사장에서 시니어모델로 변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시니어 모델의 원조격이라면 김칠두(64)씨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던 김씨를 모델로 내세우며 시니어 모델이 화두가 됐다.
김칠두 씨는 큰 키와 독특한 외모로 패션계에 입문해 실버 모델 열풍을 이끌었다. 이 아웃도어 브랜드는 복고 열풍에 맞춰 아재 패션을 재미있게 표현해 공감대를 얻은 것으로 분석한다.
또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는 배우 김혜자 씨를 모델로 선택했다. 이전 시즌에는 패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배우 배두나를 모델로, 도시에서 입는 아웃도어를 표방했다. 이번 시즌부터는 배우 김혜자와 류준열을 발탁해 연령에 관계없이 자연과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방법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한 신사복 브랜드는 자사 브랜드의 원조 모델 배우 노주현을 25년 만에 다시 광고 모델로 등장시켰고, 한 세탁기 광고에서는 무려 50년 전 최초 모델이었던 배우 최불암을 50년 만에 다시 기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한 의류업체는 70대 후반 여성을 레깅스 모델로 채용, 또 다른 화제를 낳았다.
시니어 모델의 인기는 시니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시니어의 사회적 활동영역을 넓힌다는 순기능을 기대하게 한다.
시니어 모델, ‘액티브시니어’ 취향 저격
최근 들어 시니어모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를 새로운 고객으로 잡기 위한 관련 기업들의 마케팅 결과라는 분석이다.
액티브 시니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유통산업에서 중요한 마케팅 타겟이 되고 있다. 은퇴 이후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 도전하는 50~60대들이 핵심 타겟이다.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문화활동에 나선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실버세대’와 구분하기도 한다.
액티브 시니어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다. 넉넉한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이전 노년층과 달리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액티브시니어가 본격적으로 노년층으로 진입한 2020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시장이 약 1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시니어 모델을 내세우는 이유도 바로 액티브시니어 고객을 선점하기 위한 마케팅 일환이란 것.
‘멋진 시니어’, 젊은층 롤 모델로 부상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문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멋진’ 시니어를 롤 모델로 보는 경향이 확대되면서 시니어 모델이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린다는 것.
한 스포츠 브랜드는 최근 ‘아빠의 그레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평범한 아버지들의 외모를 멋지게 꾸며주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 모델로 등장시켰다. 인터넷상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우리 아빠 세대가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는 호응이 이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시니어 모델이 등장하는 상품의 종류가 달라졌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이전에는 시니어 모델이 주로 제약, 의료 분야의 상품 광고에 주로 등장했다면, 최근에는 패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경희대 언론정보학 이정교 교수의 한 연구에 따르면, 2008~2014년 시니어 모델이 등장한 광고의 제품군은, 제약이나 의료가 40.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패션(22.4%), 식품(13,2%) 순이었다.
반면, 최근 시니어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 제품군은 패션이 제약·의료 분야를 누르고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부풀려진’ 존재 아닌가 우려도
액티브 시니어가 이전 세대보다 자산과 소득이 많은 것은 여러 통계와 조사에서 입증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업계가 바라보듯 부유한 소비계층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평균 3억4000만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부동산자산:금융자산’ 비율이 무려 8:2에 달했다.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으로 묶여 있다는 얘기다. 이는 베이비붐세대가 본격적인 경제활동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경험하면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을 형성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연구소의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후 최소 생활비로 월평균 148만원을, 적정 생활비로 225만원을 희망했다. 반면, 현재 보유한 총자산으로 은퇴 후 최소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가구(여유군)는 5가구 중 1가구(24.3%)에 불과했다. 특히, 필요자금의 절반도 충당할 수 없는 가구(위험군)는 절반(51.7%)을 넘었다. 자산관리가 미흡할 경우 위험군에 빠질 수 있는 가구(위험잠재군)도 5가가 중 1가구(24.0%)에 달했다.
결론적으로, 베이비붐세대 가구의 은퇴 후 자산여력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 입증되는 가운데 기업(자본)이 시니어 모델을 앞세워 액티브시니어란 개념을 확산시키면서 소비를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니어 모델, 지나치면 업계 장삿속 전락
시니어 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모델 에이전시와 아카데미, 모델 선발대회 주최사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시니어 모델 교육’이 우후죽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시니어 모델 교육이 호기심 충족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비싼 교육비를 받아 챙기는 상술로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니어 모델 양성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백화점과 화장품 업계다. 이들은 주로 유명 배우를 앞세워 최근 이런저런 시니어 모델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회 공식 명칭에는 대부분 제1회, 즉 올해 처음 열리는 대회다. 시니어 모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발 빠르게 자본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서 ‘시니어 모델’을 검색하면, 수강생을 모집하는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를 홍보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로 수도권에 집중된 시니어 모델 학원들은 50~70대 시니어들을 타겟으로 “나이 드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보통 시니어 모델 학원은 초·중·고급반으로 나뉘는데, 3개월에 100만~200만원 가량 수강료를 내야 한다. 평균 1년 가량 수업을 권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최근 막을 내린 한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엔 예선 지원자만 700명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1차 예선에서 120명, 2차 예선에서 30명이 추려지면서 상당수가 본선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시니어 모델 붐이 젊어지고 싶은 시니어의 욕구, 모델이란 그럴 듯한 직업으로 ‘나도 뜰 수 있다’는 허영심을 노린 상술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