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세상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기술에 감탄하는 사이 우리의 삶은 과거와 결별하며 새로움의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학교–직장–은퇴로 이어지는 산업사회의 생애과정은 이제 큰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 평생 배우고, 평생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된 지 오래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누구나 ‘뒷방’ 신세를 면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 당신의 인생절반,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알 수 없는 그 길, 먼저 도착해 걷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드립니다.
Q. 문화유산답사를 시작하신 계기는?
A. 저는 직업군인으로 30년간 복무하고 2005년 육군 중령 계급정년으로 퇴직했습니다. 영관급 직업군인이라면 다들 별을 달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꿈을 키우기 마련인데, 그 꿈을 실현하지는 못한 것이지요.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퇴직을 하고 보니 홀가분했습니다. 여행을 워낙 좋아해서 처음에는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군에 복무하면서도 남들은 오지 발령을 꺼렸지만 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들뜨기도 했지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환경을 접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여행에 실증을 갖게 됐습니다. 어느 정도 다니다 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때 여행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여행과 함께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듯 공허함을 메울 수 있었고, 문화유산에 중독이 된 것이지요.
Q. 문화유산답사가 제2의 직업이 된 것이군요.
A. 문화유산답사로 눈을 돌렸더니 여행을 하면서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의 역사를 통해 문학적 소양과 철학까지 담을 수 있는 품격있는 여행을 만끽하게 된 것이지요. 2001년부터 여행 및 친목동호회를 시작해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지요. 2012년 문화유산답사회로 업그레이드해 현재 8년째 운영 중인데, 그동안 모두 230회가 넘는 정기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로 생각했는데, 20여년째 문화유산답사를 계속하니 가족은 물론 친구나 지인들도 문화유산답사를 제 직업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집을 비우는 날이 많으니 아내의 반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해주고 있습니다.
외아들을 출가시키고 현재는 부부만 살고 있는데, 저와 아내 모두 조금씩 벌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군에서는 군의 특성상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지요. 또한, 가족 부양을 위해서는 사회에서도 싫은 일도 참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군에서 퇴직하고 열린 인생 2막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행복합니다.
Q. 문화유산답사,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답사는 ‘어디에 가면 뭐가 있다’는 정도예요. 단순하고 평면적인 답사를 생각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모든 문화유산에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 역사와 스토리를 따라가며 공간과 시간을 연결하면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문화유산들이 서로 꼬리를 물며 새로운 지식으로 재구성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원성왕릉’은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 가운데 가장 멋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그곳에 가보니 원성왕보다 왕위계승권은 더 높았지만,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김주원’이란 사람에 대한 설명이 있더라고요. 김주원. 그 이름을 보는 순간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서 답사했던 ‘명주군왕릉’이 떠올랐죠. 신라하대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입니다. 김주원이 원성왕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뒤 선대로부터 인연이 있던 명주(강릉)로 와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명주군왕’으로 봉해졌던 것이죠.
이렇게 답사를 통해 역사의 시공간을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연결시키면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라면 느끼지 못할 답사의 매력인 것이죠. 그 희열이 반복되면서 중독이 된 것이고요.
Q. 문화유산답사를 매개로 수입도 발생하나요?
A. 사실, 처음부터 돈을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지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강좌를 열고 답사도 진행하고 있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인터넷강좌(11회)로 바꿨지만, 오프라인 강좌는 모두 157회를 진행했습니다. 서울시50플러스센터에서 문화유산답사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정기답사도 벌써 200회를 훌쩍 넘었습니다.
경제활동에 대한 미련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듯 인생 2막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문화유산답사 자체가 수입을 가져다줄 일도 아니지요.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십여 년 꾸준히 이어가다 보니 부차적으로 이런저런 수입도 생기고 있어요. 여기저기 강의를 나가기도 하고, 글도 많이 씁니다. 서울 광화문에 마련한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넉넉하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갈 정도는 됩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문화유산답사를 이어가며 얻는 희열과 기쁨, 행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어요. 그렇게 쌓인 지식과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소통의 과정도 행복의 요소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금전적 이득은 물론, 그보다 더 소중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모든 시니어들이 김신묵 회장님처럼 건강하고 멋진 삶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A. 저는 문화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맘껏 누릴 수 있는 시니어가 되고 싶었어요. 문화와 역사는 지루하고 쓸모없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문화유산답사를 통해서 얻은 수많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 문화적으로 기여하며 멋지게 늙자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영감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작은 결실을 맺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유산답사를 이어가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내나라국보탐방기1’(2018, 문영사)라는 책으로 냈습니다. 책을 내서 문화적으로 기여하자는 목표를 이룬 셈입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