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최근 경력직 채용과정에서 업무능력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 평판조회입니다. 이전 직장의 상사, 동료 등에게 업무능력과 전문성은 물론, 대인관계, 성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조회합니다. 심지어, 헤드헌팅사에 평판조회를 의뢰하거나 전문적인 평판조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과거 산업화시대에 고착된 후진적인 채용문화 탓에 최근의 평판조회가 더욱 힘을 발휘한다고 지적합니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했던 채용문화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평판조회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봅니다.
#에피소드1
잡지사에 근무하던 A기자는 저녁 약속이 돼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바로 A기자와 함께 군복무했던 소대장 B씨였다. B씨는 유명 홍보대행사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홍보대행사 직원은 ‘을’의 위치에서 숙명적으로 ‘갑’이라 할 수 있는 언론사 및 기자들과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A기자와 B팀장의 인연이 묘하다.
ROTC 출신 장교였던 B팀장은 군복무 시절, 고집이 매우 세고 어느 순간에도 원리원칙만 고수해 소대원들의 원성을 샀던 인물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우유부단함이었다. 소대원들을 위해 자신의 권한 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직속상관인 중대장의 명령이나 눈치를 보느라 소대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소대원들이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그때까지 감춰져 있던 B팀장의 과거 경력은 A기자에 의해 삽시간에 동종업계 기자들에게 퍼져나갔다. 부정적 이미지로 포장된 B팀장의 군복무 시절 이야기는 급기야 B팀장의 업무능력과 인간성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수년을 공들였던 분야에서 치명타를 입은 B팀장은 회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에피소드2
C씨는 작은 출판사의 부장이다. 업무 속성상 직원들의 전문성과 적극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C부장은 얼마 전, 난데없이 부하직원 D씨의 사직서를 받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사직하겠다는 D씨를 붙들고 ‘형식적으로’ 달래던 C부장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차라리 잘 됐다고 판단했다.
D씨는 평소 지각이 잦았고, 책임감 없는 업무태도로 인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퇴근 후 자기관리가 엉망이란 사실이었다. 동료직원은 물론, 지인들에게 연락해 퇴근 후 술자리를 만드는 것이 D씨의 오후 일과였다. 다음 날 술이 덜 깬 상태로 출근하거나, 술병이 나서 아예 결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대인관계에서 큰 문제는 일으키지는 않아 그럭저럭 회사생활을 유지하던 D씨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사직서를 낸 것이다.
D씨가 자발적으로 퇴사한 뒤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C부장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한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다. 그 편집장은 “D씨가 경력직원 채용에 지원했는데, D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C부장은 순간 갈등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긍정적으로 얘기할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 얘기할까?’ 하지만, 금세 드러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C부장은 완곡한 표현 한 마디로 모든 답변을 대신했다.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데, 왜 하필 D를 채용하시려는 겁니까?”
#에피소드3
중소기업 재무팀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E씨는 이른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지인의 소개였는데, 매우 유능한 분이 시장성이 밝은 아이템으로 회사를 설립하는데, 창립멤버로 입사해 재무업무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급여는 물론 각종 복지혜택까지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E씨는 고민 끝에 사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회사를 방문했다. 사장은 인상도 좋고, 성품도 믿음직스러웠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역력한 회사 분위기도 흡족했다.
출근날짜까지 약속하고 회사를 나서던 E씨는 복도에서 우연히 오래 전 자신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F씨를 만난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F씨가 이 회사의 영업본부장으로 영입돼 있었다. 반갑게 알은척은 했으나, E씨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F씨는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은 분명했다. 하지만, F씨는 거액의 회사공금을 빼돌렸다가 실형까지 받은 인물이었다. 그런 F씨가 어떻게 이 회사에 영입됐는지 의문이었다. 알아보니 F씨는 범죄이력이 전혀 없는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로 둔갑해 있었다. E씨는 그런 F씨와 일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결국, 영입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다만, E씨는 자신을 이 회사에 소개한 지인과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F씨의 전과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 전 일이고, 영입제의를 거절한 이상 자신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라고 판단, 입을 닫았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까, 지인으로부터 F씨가 수억원 대의 자금을 횡령, 회사가 문 닫을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E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이 함구해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면접 후 자신이 살짝 귀띔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안타까움에 한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판조회란 무엇인가?
앞선 실제 사례에서 보듯, 최근 기업이 직원을 채용과정에서 ‘평판조회’를 매우 중요한 절차로 도입하고 있다. 특히, 직무경험이 많은 경력직의 경우 업무능력보다 평판이 더욱 중요한 잣대가 된다.
평판조회란 채용 후보자의 학력과 경력, 자격은 물론, 업무성과에 대한 진위 여부, 인성과 성격, 조직기여도, 조직생활의 문제점 등의 정보를 기존 조직과 조직구성원, 주변인 등을 상대로 종합적으로 수집, 판단하는 채용절차를 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내부 조직원(직원)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채용지원자의 업무능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나 성격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조직 전체의 생산력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뛰어난 역량이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고, 반대로 조직을 와해시키는 암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채용과정의 평판조회를 강화하는 이유다. 이직하려는 지원자의 입장에서도 평판조회는 골칫거리다.
기업 10곳 중 7곳 “평판조회 필요하다”
실제로, 기업 10곳 중 7곳은 경력직 직원을 채용할 때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를 상대로 평판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국내 기업 369개사를 대상으로 경력직 채용 과정의 평판조회에 대해 조사한 결과 76.4%가 ‘평판조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평판조회가 필요없다’고 답한 곳은 23.6%에 불과했다.
평판 조회를 통해 알고 싶은 내용은 ‘인성 및 성격’(64.2%, 복수응답)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상사, 동료와의 대인관계’(57.7%), ‘전 직장 퇴사 사유’(48.9%), ‘업무능력’(48.2%), ‘동종업계 내의 평판’(32.8%), ‘경력사항 등 서류 사실 여부’(31.4%) 등의 순이었다. 서류로 파악하기 어려운 인성이나 대인관계가 주를 이뤘다.
실제로 평판조회를 실시하는 기업은 37.1%였다. 평판조회를 실시하는 지원자의 직급은 ‘과장급’(39.4%, 복수응답), ‘차, 부장급’(33.6%), ‘대리급’(21.9%), ‘임원급’(18.2%), ‘사원급’(9.5%)의 순이었으며, 28.5%는 ‘모든 직급에서 조회’한다고 밝혔다.
평판조회 결과는 실제로 채용에 영향을 미칠까? 평판조회를 실시하는 기업의 64.2%는 평판조회 결과만으로도 불합격을 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판조회 않는 기업도 ‘선호도’ 매우 높아
실제로 평판조회를 거쳐 입사한 직원들은 조회 결과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까? 무려 92%가 ‘평판조회 결과와 대체로 유사했다’고 밝혔다. 이런 경험으로 기업들의 평판조회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73.7%는 평판조회의 효과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15.3%는 ‘매우 만족’했다.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0.9%에 불과했다.
평판조회를 하지 않는 기업들도 평판조회를 선호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판조회를 하지 않는 기업들(232개사)은 그 이유로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서’(47.8%, 복수응답), ‘전문적인 서비스는 비용이 부담돼서’(20.3%)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평판조회의 효과에 의문이 있어서’(17.2%)다는 응답은 소수에 달했다. 효과성보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거나 시간 및 비용 부족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평판조회를 하지 않는 기업 중 71.6%는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한 프로세스를 갖춘 평판조회 서비스가 있다면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더욱 강화되는 평판조회 ‘툴’
기업의 입장에서 경력직 지원자를 채용할 때, 입사지원서 등의 서류검토나 짧은 면접시간으로는 지원자의 진면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면접관의 가치판단이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면접자가 자신의 단점을 숨기고 장점만 최대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입사 후 일정기간 수습기간을 두지만, 이마저도 기간의 제한 탓에 입사자의 실제 능력과 인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이 도입하는 방법이 평판조회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전 직장의 상사나 팀장, 인사팀 관계자, 동료 등에게 전화, 이메일, 미팅을 통해 지원자의 업무능력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 위해 평판조회를 할 수 있는 이전 직장 관계자의 이름과 직책, 연락처를 입사지원서에 표기하도록 요구하는 기업도 있다.
헤드헌팅에 평판조회를 의뢰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최고경영자, 임원 등이 대상이지만, 실무담당자에 대해서도 헤드헌팅사에 평판조회를 의뢰하기도 한다. 헤드헌팅사는 대체로 5~10명의 관계자로부터 솔직한 평판을 수집한다. 의뢰한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도 적게는 300만~400만원, 많게는 수 천만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평판조회를 전문으로 진행하는 업체가 성업 중이다. 이들은 객관적인 평판조회 기준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한다. 단순히 주변 인물로부터 평판을 수집하는 단계를 훌쩍 넘어,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다양하고 심도있는 평판조회를 실시한다.
평판조회 내용 갈수록 다양화
몇 년 전만 해도 평판조회 내용은 입사지원서의 진위 여부, 업무능력, 대인관계 등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학력위조, 논문표절, 성희롱, 심지어 음주운전, 신용도 등 다양한 분야를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학위, 재직기간, 직위, 이직사유, 연봉 등은 기본에 속한다. 주요업무를 비롯해 핵심기술, 업무태도, 위기관리능력, 의사결정능력 등을 파악해 객관화한 데이터로 수치화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지원자의 능력과 인성은 물론, 채용 직무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지도 평가한다. 대체로, 이전 직장 관계자들에 대한 평판조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일반적인 평판조회 내용
- 지원자와의 관계 및 주관적 평가
- 입사지원서 기본정보의 진위 여부
- 이전 직장에서의 핵심 업무성과
- 업무와 관련한 전문역량
- 리더십 또는 팀워크 등 조직관리능력
- 대인관계
- 성격적 장점과 단점
위선·거짓 채용문화, 평판조회 키워
전문가들은 이처럼 평판조회가 중시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채용문화 탓이라고 지적한다.
첫째, 이전 직장이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를 중시하는 채용문화다. 대기업 출신일수록 지원자의 수준도 함께 과대평가된다. 반대로, 중견·중소기업 출신자의 경우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전 직장의 규모와 인지도를 먼저 따지는 채용문화는 정작 지원자 개인의 능력과 성품에는 관심 갖지 않는 채용문화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지원자가 학력이나 경력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업무성과를 부풀려도 이전 직장이 ‘번듯’할 경우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채용문화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지인을 통한 채용문화다. 과거는 물론 현재도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 체계화된 프로세스가 부족하다보니 지인을 통한 소개로 경력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인을 통해 경력자를 추천 받을 경우 아무런 근거 없이 ‘신뢰’라는 항목이 추가되기도 한다. 지인의 입장을 고려해 지원자의 뒷조사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
이와 같은 후진적인 채용문화가 지속되면서 위선과 거짓이 도를 넘게 됐고, 이제는 더 이상 입사지원서나 업계 관계자의 평판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평판관리,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평판관리 방법에 대해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단정한다. 평소의 행동과 업무태도, 생활습관, 대인관계 등 ‘일상=평판관리’라는 지적이다. 즉, 매일, 매순간의 생각과 행동이 평판을 이루는 요소라는 것이다. 좋은 평판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어서 평소 신경써야 한다. 다만, 퇴사 시점의 태도는 좋고 나쁜 평판의 차이를 결정할 수 있는 만큼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잡코리아 조사결과, 직장인들이 이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연봉(49.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회사의 비전이 없다거나, 과중한 업무, 상사·동료와의 갈등 순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방증이다. 이 때문에 자칫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의도하지 않게 평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가장 좋지 않은 퇴사 태도는 일방적인 퇴사 통보 후 출근하지 않는 경우다. 최악의 퇴사 태도가 바로 ‘잠수 타는’ 것이다. 또한, 퇴사 통보 후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일관하거나 다른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해 험담하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퇴사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남아 있는 임직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유도한다.
만약, 부정적인 평판조회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이력이 있다면 지원서에 미리 해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변명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그 일이 있었던 이유나 배경과 함께 그로 인해 깨달은 점, 긍정적으로 변화된 모습 등을 기재하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