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김형석 기자] 미국의 기부문화가 성숙할 수 있었던 데는 펀드레이저(Fundraiser)의 역할이 컸다. 펀드레이저는 단순히 기금을 모금하고 그와 관련한 영업을 수행하는 매우 작은 직업단위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최근 10년 사이에 기부의 성과를 분석하고 홍보하는 경영 금융직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유망직종으로 소개되고 있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국가들에서는 기부자와 수혜자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전문직업인으로서 펀드레이저(fundraiser)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인데, 1970년대 초에 이미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기부를 경험했을 정도로 기부문화가 성숙돼 있다. 이러한 기부문화의 확산에는 펀드레이저의 역할이 컸고, 활동인원도 크게 증가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펀드레이저가 유망직종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표준직업분류(SOC 2010)에도 세분류 직업의 하나로 새로 등재된 상태다. 2000년에 개정된 SOC 2000에서는 펀드레이저가 세분류 직업으로 등재될 정도는 아니었다.
필요한 기금 모으는 전문가
펀드레이저는 기금모금 전문가로서 기금을 모금하기 위한 활동을 조직하거나 모금조직을 위해 금전적 기부 또는 다른 물품기부 등을 간청하는 일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홍보자료를 제작·생산하며, 조직의 사명과 목표, 재정적 필요에 대해 잠재적 기부자의 인식을 높이는 일을 수행한다.
또한, 관련 법률의 개정을 통해 기부문화 확산에 힘쓰며, 공공인식의 개선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 기부와 관련한 임상연구를 비롯해 지역사회연구 등의 활동과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개발 등도 수행한다. 또한 펀드레이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펀드제공자가 제공한 펀드가 국가나 사회적으로 기부자 개인에게 어느 정도로 이익이 되는지 객관적인 증거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자본수익률) 분석을 하고, 또한 각각의 프로그램 목적과 활동 내역을 평가한다.
펀드레이저의 근무환경은 소속 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사무실에서 근무하지만 기부자를 만나거나 모금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출장업무도 많은 편이다. 이들의 업무는 육체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없지만 기금모금 목표액을 채우기 어려운 경우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해외 교육·훈련 자격 및 종사현황
미국에는 펀드레이저협회(AFP)가 운영하는 공인모금전문가(CFRE,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 자격이 있다. 모금기법은 물론, 모금윤리에 관해 철저히 교육받은 사람만 전문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CFRE 자격시험은 기관에서 인정하는 80학점 이상의 교육을 수료해야 하며, 5년 이상의 모금경력과 자원봉사경력 등을 평가하는 1차 시험에 이어, 기부자 관계개발, 모금프로그램, 기부관련법과 세제 등의 전문성을 테스트하는 2차 필기시험으로 진행된다. 해당 자격은 취득 후 3년간 유효하며, 이후에는 재발급 받아야 한다. 2012년 기준 CFRE 자격증소지자는 5630명이었다. 물론 이는 펀드레이저협회의회원수(3만명)보다 적다.
이들 펀드레이저의 전공분야는 매우 다양한 편이다. 상대적으로 경영, 경제, 사회복지, 국제관계 등의 전공자가 많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자질로는 펀드제공자와 신뢰감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각종 기부관련법과 세제에 대한 지식,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의 지식, 경영관리나 회계능력 등이 중요하다. 또한, 비영리기관에서는 사회복지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또한 경력이 쌓임에 따라 관리기술이 필요해 MBA 분야 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환경 등 구체적인 공공정책분야별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펀드레이저는 기금법의 영향을 받으며, 기금모금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무부(Secretary of State)에 등록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펀드레이저로 활동하는 인원은 4만8530명 정도다(BLS의 2012년 5월 OES 데이터). 임금수준은 연간 5만5220달러(약 6400만원) 수준으로 파악되며, 펀드레이저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펀드레이저, 100여명 남짓
우리나라는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기부문화가 그다지 활성화돼 있지 않다. 2019년 영국의 자선원조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지수는 29%로 전체 조사대상 153개국 중 81위로 나타났다. 이는 1위인 호주나 뉴질랜드(57%)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미국인이 10만 원을 벌어 평균 2000원을 기부할 때 한국인은 500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부의 편중 현상도 매우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기부의 경우 종교단체 기부 비율이 80%로 매우 높았다. 법인기부에서는 기업기부금의 상당 금액이 몇몇 대기업에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레이징의 역사도 짧은 편이다. 국내 기금모금조직은 대체로 사회복지, 고등교육, 시민사회단체, 의료분야에 존재하며, 문화예술분야나 유치원 등의 기관은 펀드레이징에 매우 소극적이다. 여기에는 기금관련 법과 제도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력적인 측면에서는 중소모금단체의 경우 독립된 모금부서 없이 다른 업무와 병행해 기금모금 업무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금관련 부서의 업무는 순환보직인 경우가 많아 기금모금 업무를 전담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펀드레이저는 100명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300명 정도는 돼야 네트워크를 구축,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교육 과정·자격제도 도입해야
펀드레이저의 도입에 앞서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내 관련법으로는 ‘기부금품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 있고, 1000만원 이상 금액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경우 반드시 등록청(규모에 따라 안전행정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에 등록하도록 돼 있다.
또한, 등록 시에는 모집목적, 모집금품의 종류와 모금 목표액, 모집지역, 모집방법, 모집기간, 모집금품의 보관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모집계획을 작성해야 하며, 모집기간은 1년 이내로 제한돼 있다.
등록은 다음의 경우만 가능하다. 먼저 국제적으로 행해지는 구제사업, 천재지변이나 이에 준하는 재난의 구휼사업, 불우이웃돕기 등 자선사업 등이다. 영리 또는 정치․종교활동이 아닌 사업으로는 교육, 문화, 예술, 과학 등의 진흥을 위한 사업, 소비자보호 등 건전한 경제활동에 관한 사업, 환경보전에 관한 사업, 사회적 약자의 권익신장에 관한 사업, 보건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 남북통일, 평화구축 등 국제교류협력에 관한 사업, 시민참여, 자원봉사 등 건전한 시민사회구축에 관한 사업, 그밖에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모집된 기부금품 중 15% 이내에서만 기부금품의 모집, 관리, 운영, 사용, 결과보고 등에 필요한 비용에 충당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이처럼 기금모금과 관련한 규제 중심의 법제도는 기부문화 확산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부문화 이끌 전문가 양성 시급
다음으로 국내에서 기부 여건이나 기반이 취약하고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는 관련 전문가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등 기부선진국에서는 기부를 하나의 사회적 투자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 펀드레이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즉, 펀드레이저는 단순히 기금모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금사용계획, 활용내역 및 성과를 상세히 준다. 이를 통해 기부금이 국가·사회·개인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기부자가 기금모금단체의 사명에 지속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결과, 성숙한 기부문화가 정착됐을 뿐만 아니라 펀드레이저라는 직업적인 위상도 높아졌다.
우리나라도 기부환경이나 여건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위해 전문양성기관을 신설하고 자격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태생 단계인 국내에서 당장 대학에 펀드레이저 관련학과를 신설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펀드레이저 전문교육 과정을 만들거나 공인 자격제도가 도입되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료=한국고용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