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빨리 고령화가 진행됐습니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1994년 고령사회를 지나 2005년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우리나라 고령화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일본은 늘 교과서 같은 벤치마팅 대상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내놨고 시간이 흐르면서 검증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잘못된 점은 극복하는 것이 고령화 정책의 핵심입니다. 시니어들의 사회참여와 관련, 일본 전문가 3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NPO·NGO·고령자협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참여”
리츠메이칸대학 아키바 다케시(秋葉 武) 교수
아키바 다케시 교수는 NGO·NPO 조직이론 분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협동조합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이자 NGO 컨설턴트, 협동조합 연구저널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NGO·NPO,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케팅 등이다.
아키바 다케시 교수는 일본에서 ‘시니어의 사회참여’가 대두된 주요 계기를 ▲베이비부머(1947~1949년생)의 은퇴가 본격화 된 ‘2007년의 문제’ ▲2006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에 따른 정년연령 확대(60세→65세)를 꼽았다. 시니어 계층의 인구증가, 정년연령 확대와 같은 외재적 요인과 함께 은퇴 이후 사회참여를 중시하는 시니어들의 내재적 욕구가 맞물리면서 2007년부터 시니어의 사회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아키바 다케시 교수는 일본 베이비부머들의 사회참여 유형을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로 나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시니어의 사회참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1990년대, 퇴직 시니어의 사회참여는 반상회 등 지연(地緣) 조직, 노인클럽, 평생학습 강좌 등 지역(community) 참여, 그리고 근무회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것이 주를 이뤘다.
일본 시민사회에서 198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영향으로 1988년 사단법인 ‘장수사회문화협회’가 설립됐고, 1994년 창립된 NPO ‘날크’(NALC)가 ‘자원봉사 시간예탁제도’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크게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 ▲퇴직자 증가 ▲기업의 종신고용제도 약화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에 따른 복지시장 창출 등의 환경변화로 인해 시니어의 사회참여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일본 시니어의 대표적인 사회참여는 NPO 및 NGO에서 나타났다. 현재 시니어들이 설립한 단체가 전국적으로 1만개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단체들은 대부분 컴퓨터와 SNS 등의 교육을 통한 ‘생산적 시니어’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NPO 및 NGO에 참여하는 시니어들은 해당 단체의 직원이든 자원봉사자든 즉시 활용 가능한 인력으로 채용돼 전담직원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본 NPO·NGO에 참여하는 시니어 직원의 업무는 사업파트너와의 조정 및 홍보, 서무·경리, 기획 업무가 70%를 넘는다. 젊은층 인력의 역량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업무를 보완하는 것이 시니어 직원의 주된 업무인 셈이다.
고령자 협동조합도 사회참여의 주된 유형이다. 고령자들이 정들고 익숙한 마을에서 계속 살기 위해 협동조합에 참여해 서로 돕는 방식이다. 복지, 취업, 삶의 보람, 문화활동, 요양보호 등에 관한 상담이 주를 이루며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단체가 존재한다. 특히, 2000년 개호보험이 시행된 이후 다양한 복지사업이 발생하면서 고령자협동조합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농어촌으로 유턴, 사회참여를 실현하는 경우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착됐다.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이주해 카페, 레스토랑, 여관을 경영하거나 농업에 종사하면서 마을 활성화를 위한 NGO를 설립하는 경우다.
과소화를 우려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으며,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에도 관련 NGO가 대거 활동할 정도로 귀농귀촌이 상당 수준 정착돼 있다. 심지어, 은퇴한 시니어 부부의 귀촌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1990년대부터 활성화된 해외봉사도 일본 시니어의 사회참여 방법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74년 설립된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2000년대 이후 많은 시니어들이 참여하면서 현재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71개국에 5290명을 파견, 컴퓨터 기술을 비롯해 농업기술, 경영관리, 마케팅 등 99개 직종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키바 다케시 교수는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미시적 관점에서 고령자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할 수 있는 소규모 조직과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거시적 관점에서는 현재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NPO 참여 통해 은퇴 후 10만 시간 알차게 활용”
NPO법인 교토그린펀드 후지노 마사히로(蕂野 正弘) 이사
후지노 마사히로 이사는 1947년 교토시에서 태어나 1971년 ‘스미토모3M’에 입사한 뒤 54세에 조기퇴직, ‘교토NPO센터’에서 NPO활동을 시작해 10년간 일했다. 이후 ‘액티브 시니어의 시대’라는 주제로 단카이세대를 중심으로 중장년층의 사회참여 및 창업을 촉진하는 세미나, 강연에 열중하고 있다.
후지노 마사히로 이사는 ‘액티브 시니어의 시대’를 강조한다.
교토시 출생인 후지노 마사히로 이사는 2002년 54세의 나이로 일반기업에서 조기퇴직한 뒤 이듬해 NPO법인 ‘교토NPO센터’에 들어가 10년 동안 상담과 사업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NPO를 지원하며 느낀 점을 집약, ‘액티브 시니어의 시대’라는 강좌를 기획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왜 ‘액티브 시니어’인가. 그는 ▲NPO의 역량부족 ▲‘2007년의 문제’ 등 2가지 현안을 기획 배경으로 꼽았다. 운영 능력이 부족한 대다수 NPO들이 의욕만 앞서 발전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NPO는 미션(mission)보다 패션(passion)이 앞선다. 또, 4만9000여개의 NPO법인 대부분은 연간 재정규모 500만엔 이하의 소규모 단체다. 인재와 자본 등 경영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NPO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량 있는 인재를 확보하는 것인데, 어려운 과제다.”
일본 NPO가 갖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 특히 인재 확보라는 현안의 해답은 역설적으로 단카이(베이비붐)세대의 ‘은퇴러시’가 시작되면서 떠오른 ‘2007년의 문제’에서 찾았다.
그는 “700만명의 단카이세대가 퇴직 후 사회에 참여한다면 세상이 극적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며 “특출한 능력이나 이력이 아니어도 기업에서 교육된 단카이 세대의 경험이 NPO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참여인원은 700만명의 1%, 7만명이면 충분하다”며 핵심 키워드는 ‘10만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7만명의 단카이 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 거듭나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토록 유도하기 위해 그는 2005년부터 1시간 30분짜리 강좌를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후지노 마사히로 이사가 정의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회사원이었을 때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창조하며, 행동해야 한다. 또, 그저 ‘건강한 시니어’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갖고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핵심은 ‘10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의 문제다. 그는 은퇴 후 갖게 되는 시간이 현역시절의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현역시절에는 잔업을 포함 매주 48시간, 연간 52주, 약 40년에 걸쳐 10만 시간(48h/w×52w/y×40y≒100,000h)을 일했다. 은퇴 후에는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하루 평균 14시간을 20년 동안 가질 수 있으니 역시 10만 시간(14h/d×365d/y×20y≒100,000h)이 주어진다. 따라서 은퇴 후 10만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는 은퇴 후 NPO에 참여하면 액티브 시니어로서 10만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액티브 시니어의 기본조건인 건강+경제적 자립+가족의 협력이 갖춰졌다면, NPO에서 ‘네트워크’가 추가된다. 회사 네트워크가 지역 네트워크로 바뀌는 것.
“액티브 시니어는 은퇴 후 지속적인 일이나 창업, 취미생활을 원한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고, 해외생활을 원하기도 하고, 가족과의 생활을 희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사회공헌활동이다. 10만 시간을 자신과 사회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참여 어렵다면 사회기부가 대안”
공익재단법인 퍼블릭리소스재단 키시모토 사치코(岸本 辛子) 전무이사
키시모토 사치코 전무이사는 도쿄대 교양학부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퍼블릭리소스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비영리 매니지먼트, 기부·융자시스템 등 비영리활동을 지원하는 자금기반 개발, 사회적책임투자(SI),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테마로 활동했고, 특정비영리활동법인 주거·마을만들기 지원기구 이사, 일본 펀드레이징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키시모토 사치코 전무이사는 ‘일본 시니어의 사회기부활동 동향’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변혁형 재단을 설립했다. 특정 기업이나 자산가가 거액의 자금을 출연해 설립하는 기존 재단과는 달리 시민·기업 등의 협동을 통해 활동을 전개하는 새로운 유형이다.
퍼블릭리소스재단은 기부금을 모아 사회와 커뮤니티의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최고의 NPO 및 사회적기업 등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기부자의 뜻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이해관계자 간의 소통과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가 기부를 사회참여의 새로운 ‘통로’로 개척하는 이유는, 기부를 통해 사회적 장애가 되는 구조적 환경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부액의 잠재적 시장규모는 1억엔에 불과하다. 미국의 잠재적 시장규모가 20억엔에 달하니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종교 관련 기부는 2287억엔, 전체의 3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반해, NPO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부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내각부 조사 결과 NPO에 참여하는 60세 이상 시니어는 전체의 4%에 불과하다. 일본 시니어 10명 중 8명은 NPO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치와 행정의 기존 공공시스템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 구할 수 없는 생명, 당사자나 가족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표면화되면서 기부문화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인의 80%가 기부에 참여하면서 기부의식이 향상된 점도 고무적이다.
퍼블릭리소스재단은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3단계의 기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기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쉽고 빠르게 첫걸음을 내딛도록 돕기 위해 만든 온라인 기부 사이트 ‘기부원(Give One)’이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150개 이상의 기부처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해 손쉽게 기부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NPO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부에 대해 직접 참여해 배우는 기부교실(donor school)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세무사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나만의 기금을 설립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나만의 기금을 설정해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최고수준에 이르게 된다.
키시모토 사치코 전무이사는 “동일본 대지진 복구지원 기금, 예술·의료 발전 기금, 치매환자 및 가족지원 기금, 교육개혁 기금, 빈부격차 해소 기금 등 분야지정기금은 기부자의 의지가 담긴 기부를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