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케이팝(K-Pop)에 이어 케이컬쳐(K-Culture)라고 부르는 한국 문화 콘텐츠가 무서운 기세로 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이 한류열풍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며 한민족의 문화적 역량을 전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국악인들이 대표적입니다. 서양음악에 비해 인기는 덜하지만, 국악의 명백을 잇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이야말로 한류의 근원이 아닐까요. 종묘제례악에서 ‘편경(編磬)’을 연주하는 조인환(65)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최근 장엄한 우리 궁궐음악에 관심 갖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답니다. 한류의 근원 국악, 그리고 사회적 관심 밖에 있는 국악계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Q. 종묘추향대제는 어떤 행사인가요?
종묘대제는 조선 역대 제왕과 왕후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1년에 두 번 하는 규모가 큰 제사입니다. 봄에는 ‘종묘대제’라 하고, 가을에는 ‘종묘추향대제’라고 합니다. 규모는 같습니다. 종묘추향대제는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개최되는데, 올해는 이태원 참사로 11월 마지막 주 일요일인 27일 진행됐습니다.
Q. 종묘대제에서 어떤 악기를 연주했나요?
종묘제례에서 연주하는 기악(樂), 노래(歌), 무용(舞)을 총칭해 ‘종묘제례악’이라고 합니다. 세종 때 작곡한 문관 임금 칭송 ‘보태평’과 무관 임금 칭송 ‘정대업’이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개편돼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지요. 2001년, 종묘제례와 함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종묘제례악은 두 개 악단이 연주하는데, 정전 앞 계단 위 악단은 ‘등가’, 계단 아래 뜰에서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라고 부릅니다. 저는 항상 헌가에서 ‘편경’을 담당합니다. 편경은 곡을 완전히 암기하고 이해한 사람만 연주할 수 있는데, 저는 편경을 5년 공부해 이수자 자격을 얻었습니다. 종묘제례악은 지휘자가 없습니다. 합주 악기 소리를 듣고 빠르게 또는 늦게 연주해야 하므로 합주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한편 노래는 ‘악장’이라 하는데 제례 절차에 따라 다른 가사로 부릅니다. 춤은 8열로 64명이 추기 때문에 ‘팔일무(八佾舞)’라고 합니다.
Q. 국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합창단 지휘자인 담임선생님께서 음악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KBS2 노래 경연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에서 우수상도 받았고요. 이때부터 음악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 반대는 없었는데, 국립국악고 다니던 시절 “남자 기생이 되려고 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국악을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부는 악기는 폐에 안 좋으니 현악기를 전공하거라”며 조언해주셔서 거문고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편경은 나중에 중요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에서 5년 동안 교육을 이수한 뒤부터 연주하고 있습니다.
Q. 국악 전공하기 위해 어떤 학교를 다녔나요?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국립이므로 전교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학비는 물론 교복, 책가방, 연필, 심지어 버스비도 장학금에 포함됐습니다. 돈은 없고 학교는 다니고 싶었던 시절이라 인기가 많았습니다. 전국에서 1개 학급만 뽑았는데 경쟁이 매우 치열했죠.
현재, 서울 개포동 국립국악고등학교는 정악(正樂) 위주의 국악을, 시흥동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는 민속음악 위주의 국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악’은 궁정이나 관아, 풍류방에서 연주하던 음악인데, 우아하고 바른 음악을 뜻합니다. 지방에는 진도국악고등학교,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등이 있지만 숫자가 매우 적습니다. 따라서 전문 국악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동아리 형태로 선생님 지도를 받거나 개인 레슨을 통해 배웁니다.
Q. 국립국악원에서 근무하셨지요?
국립국악원은 국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직장입니다. 저는 육군본부 군악대 제대 직전에 국립국악원 채용 공고를 접했습니다. 연습을 많이 했고 제대 이후 몇 달 동안 합숙하면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한 번에 합격했죠. 현재 국립국악원의 예술단은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창작악단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정악단은 주로 궁궐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맡아서 하는데, 제가 입사할 때는 구분이 없었어요. 모든 음악을 정악 위주로 공연했죠.
35년 동안 근무하면서 수많은 연주와 공연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연주를 했고, 2002월드컵 조 추첨할 때는 세계적 축구 감독과 선수들 앞에서 공연했죠. 대통령 해외 순방 전에는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방문 예정국 대사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연주했습니다. 초대된 귀빈들의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죠.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 귀빈들이 500년 전에 작곡한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일본 왕궁 공연, 중국 수교 기념 연주, 독일 10개 도시 순방과 베를린 장벽 무너지기 전후 기념 공연도 했습니다.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면서 에펠탑 지하 공연장에서 마지막 해외연주를 했습니다. 이때 에펠탑에 우리나라와 프랑스 국기가 나란히 걸린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Q. 퇴직 후에도 연주 활동하시지요?
각종 행사에서 거문고 반주를 하고 편경을 연주합니다. 임금은 천(天), 지(地), 인(人)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천은 원구단, 지는 사직단, 인은 종묘입니다. 종묘제례악 이수자이기에 해마다 이 행사 공연에 참석합니다. 국립국악원 정기연주회에서는 후배들과 1시간 동안 악보를 외워 연주합니다. 지난 9월 하남 광주향교, 10월에는 국내 유일 국악 축제인 ‘영동난계국악축제’에 참여해 연주했습니다. 저를 불러주는 곳이 있어, 행복합니다.
Q. 국악 전공자 취업난이 심각하다 들었습니다.
국악과가 개설된 대학이 대략 17개입니다. 한 과에 평균 30명이라면 매년 500여 명이 배출됩니다. 하지만 입사할 수 있는 직장은 극히 적습니다. 국악 전공자가 직장에 들어가면 정년 퇴임 때까지 계속 다닙니다. 그러니 바늘구멍 같은 일자리도 찾기 힘듭니다. 국립국악원에 입사하면 하늘의 별 두 개 딴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합니다. 졸업 후 국악 전공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졸업생들은 부모 눈치 안 보려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비싼 학자금을 내며 공부했는데 현실은 참으로 답답합니다. 아무리 전공자라도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Q. 국악계 발전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국악계는 특수한 음악 전공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국악계를 돈 버는 ‘이익단체’가 아니라 나라 음악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단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많은 예산이 투입돼야 합니다. 악기도 수공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매우 비쌉니다. 정부의 정책 지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시군구마다 서양음악 전공자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있지만 국악악단은 매우 적습니다. 국립국악원도 서울, 부산, 남원, 진도에만 있습니다. 적어도 도별로 한 곳씩 있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국악계에 관심을 갖고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악 전공자를 서양음악 전공자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슬픈 음악만 있다는 편견을 가진 분들도 있고요. 이런 분들은 한 번 국악 공연을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마음이 바뀌실 겁니다. 어렵게 국악 전공을 위해 공부한 학생들에게도 격려 부탁드립니다.
Q. 향후 활동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제 특기는 악기 다루기, 취미는 사진 촬영입니다. 장기간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작은 폐교를 사들여 예술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국악과 양악 관련 자료, 국악계 사진 등을 전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박물관이 서양문명 박물관이 되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