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출자해 설립한 어르신 일자리 기업들에 관심 집중되고 있다. 정부지원 노인일자리사업이 획일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성과와 상관없이 매달 고정적인 보수를 지급하는 반면, 지자체 어르신일자리기업들은 시장의 성과를 기준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회사가 운영된다는 점에서 호평받고 있다.
특히, 이 기업들은 정규직으로 어르신들을 채용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를 지급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노인일자리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 금천일자리주식회사
최근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2020년 고령자친화기업’ 목록에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다. 오는 10월 출범을 앞둔 금천일자리주식회사다. 서울 금천구가 100% 출자해 만든 시니어일자리기업으로 벌써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금천구는 급격한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어르신들의 능력에 맞는 적합한 일자리를 개발하고 수익금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노인복지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금천일자리주식회사는 서울 동작구와 성동구에 이어 세 번째로 지자체가 설립한 시니어일자리기업이다. 동작구, 성동구에 이어 금천구가 시니어일자리기업을 설립하면서 지자체 출자 방식의 노인일자리 창출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 금천구는 지난 2018년 10월부터 4개월간 타당성 검토용역을 진행하고, 지난해 5월 금천구 산하 출자·출연기관운영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금천일자리주식회사 설립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주식회사 설립을 위해 2억9000만원의 자본금을 확보해 가산동에 사무실과 교육장을 마련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고령자친화기업에 선정되면서 3억원의 운영비를 확보했다. 출범 초기에는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위해 반려동물 간식 제조(펫푸드) 사업과 공공업무 대행사업을 진행하고, 매년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로 발굴해 사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금천일자리주식회사가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와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처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쏠린다.
동작구, 지자체 시니어일자리기업 원조격
지자체 시니어일자리기업을 맨 처음 시작한 지자체는 서울 동작구다. 동작구는 지난 2015년 2억9000만원을 100% 출자방식으로 시니어일자리기업인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첫해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무직 7명과 현장 근무 시니어 52명으로 운영됐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이 적용하고 있고, 73세까지 정년도 보장한다.
매년 꾸준히 사업을 조금씩 확장했고, 2017년 흑자로 전환됐다. 9월 현재 만 61~73세 어르신 150여명을 고용하며 성공한 시니어일자리회사 모델로 자리잡았다.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는 크게 3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은 청소사업, 해피클린이다. 회사가 동작구시설관리공단, 동작구청과 계약을 맺고 동작구청사를 비롯해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체육센터, 행정복지센터와 문화시설, 도서관에서 청소 서비스를 진행한다. 두 번째로 지난해부터 소독과 방역사업을 시작했는데, 코로나19 감염증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소독과 방역 서비스의 경우 전년 대비 645%나 성장했다. 세 번째는 ‘할美꽃’ 사업이다. ‘할美꽃’은 ‘할머니가 만든 아름다운 꽃’이란 의미다. 여성 시니어들이 천연염색으로 스카프와 손수건과 같은 소품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이다.
동작구어르신행복주식회사는 지난해 어르신 일자리를 다변화하기 위해 할美꽃 브랜드로 수공예품 제작·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연염색 작업에 5명, 판매에 3명 등 모두 8명의 노인을 고용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증 여파로 면 마스크를 제작, 기부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하루 5~6시간을 일하고 최저임금보다 많은 생활임금(1만523원)을 적용 받아 많게는 월 150만원 가량을 손에 쥔다. 기존 노인일자리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지만 수입도 월등히 높아 입사 경쟁률이 6대 1이 넘을 정도로 치열하다.
성동구 미래일자리주식회사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2017년 6월 설립됐다. 역시 서울 성동구가 자본금 2억1000만원을 직접 출자해 이 회사의 지분 70%를 갖고 있다. 나머지 30%(9000만원)는 회계법인, 디자인회사, 건축사사무소 대표 등 8개 기관‧개인이 투자하면서 이사로 등재돼 있다.
동작구의 어르신행복주식회사가 청소사업으로 기반을 마련했다면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음식판매와 같은 가게 운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의 인기 맛집으로 자리잡은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엄마손만두 소풍’ 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설립 첫해 69명에서 시작된 인원도 140명으로 늘어났다. 무엇보다 재무 상태가 좋아졌다. 2017년 1억4000만원 당기순손실을 봤지만 2018년 2억5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 직영 카페 2곳과 분식점 1곳을 주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시설관리를 비롯해 용역 등 3개 분야 13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손만두를 제조하는 만두공장을 오픈했다. 공장관리자 1명, 기술자 1명 외에 어르신 4명이 오전과 오후 교대로 근무하는 방식으로 손만두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수익을 내면 낼수록 일자리를 더 만들어 내는 구조”라면서 “지자체의 일자리 예산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지자체 시니어일자리기업, 생산성&효율성 모두 입증
지자체가 출자해 설립한 시니어일자리기업들은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는, 민간시장에서 시니어들의 생산성을 직접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시니어는 기억력이나 육체적 능력이 쇠퇴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져 노동시장에서 노동가치 또는 효용가치도 크게 감소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령자 채용을 기피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동작구, 성동구의 사례에서 보듯 시니어들에게 맞는 직무와 비즈니스 모델을 정확히 찾아내 시장에 접목할 경우 시니어들의 생산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둘째는, 정부지원 일자리사업의 효율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부는 올해 74만개의 정부지원 노인일자리사업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예산 1조2000억원이 투입됐다. 코로나19 감염증 탓에 목표를 달성할지 미지수. 조 단위 정부예산을 투입한 결과, 예산 대비 어느 정도 효과를 성취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지자체 시니어일자리기업은 3억원도 안되는 자본금으로 흑자로 전환되면서 명확한 경영지표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소한 투자 대비 어느 정도의 손익을 내는지 재무제표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재무제표는 자본주의시장에서 기업의 건강진단서와 같다.
1조2000억원을 투자한 정부지원 노인일자리사업의 재무제표를 만든다면, 어떤 상태일지 자못 궁금하다. 일자리의 질과 성격을 따지면, 3억원의 모래알로 1조2000억원의 바위산을 깨뜨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