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백화점의 지방 지점 영업팀장을 거쳐, 본사 매입본부에서 화장품, 명품‧잡화팀장으로 근무했던 박모(51) 이사. 10년은 어려보이는 동안(童顔)에 뛰어난 옷맵시가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우수영업팀 선정과 매입본부 바이어 대상을 받는 등 능력과 성과도 인정받았다. 잘 나가던 그는 유명 브랜드 화장품업체로 스카우트됐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그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입점제안서와 인맥 네트워크를 활용해 치열한 경쟁을 뚫을 수 있었다. 꾸준한 노력을 더해 면세점, 백화점 등 신규 채널 개척에 성공했다. 그런데, 신규 매장마다 매출이 안정궤도에 오르자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 그 후 또 다른 외국계 화장품업체, 유통점 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잦은 이직횟수, 감점 요인 작용
박 이사의 이력서를 살펴보면, 대기업에서 나온 이후 중견중소기업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직이 반복되는 모양새가 됐다. 마치 개인의 성품이나 조직적응력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 사업에 신규 진출하는 대기업의 임원급 채용에 응시했다.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이직횟수와 근속기간 등의 이유로 탈락했다. 잦은 이직이 감점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지난해 인사담당자 95%가 이직 횟수가 많은 구직자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력직 채용에서 중요하게 판단하는 항목 중 인사담당자의 52%가 ‘실무능력’을 꼽은 가운데, 인성(23%)과 조직적응력(20%)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의 경우 실무능력은 엇비슷한 경우가 많아, 인성이나 조직적응력이 최종적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좌우한다.
50대에 접어들어 취업이 어려워진 박 이사가 경력을 살려 일자리를 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제품의 품질은 좋으나 신규 유통채널을 뚫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보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다. 잦은 이직이라는 ‘단점’을 브랜드업체, 백화점 등 다양한 기업에서 영업 및 MD(머천다이저,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의 책임자)를 경험했다는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실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컨설팅과 교육을 준비한다면 그의 경력으로 충분히 재취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브랜드 및 유통 업체, 대학교, 이미용‧패션 아카데미 등의 기관에서 브랜드 도입, 개발, 다양한 상품군의 브랜드 결집, 매출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수립 업무다. 또, 대형 행사기획이나 백화점 신규 매장 오픈과 기존 매장의 리뉴얼(Renewal) 전략, 브랜드별 위치, 면적, 콘셉트, 매장 비주얼 등 VMD(비주얼머천다이저, 마케팅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도록 특정 상품 및 서비스를 시각적으로 연출하고 관리하는 직종) 과정도 적합하다. 이밖에 화장품 브랜드 직수입 무역을 비롯해 명품, 화장품, 잡화 상품군 영업관리 등의 업무도 안성맞춤이다.
박 이사에게 컨설팅 분야로 전직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바로 나온 대답은 “번듯한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데 비싸서…”라는 답변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려면 자신의 스타일만큼 럭셔리한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는 고정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관점을 디자인하라’의 저자 박용후 대표처럼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있다면, 어디든지 나의 사무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식‧경험 동원, 새 일 만들어야
자신의 일에 대한 경험으로 새로운 일을 만든 사례가 있다. 이른바 ‘창직’이다. 정모 매니저(45)는 자신의 취미인 마라톤, 등산과 연관된 일을 하고 싶어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포츠용품점을 운영 중이다. 그는 단순한 신발 판매가 아닌 ‘신발교정사’(Pedorthist)로 활동하며, 고객의 발 특징에 맞는 제품을 추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이러한 고객상담 경험을 모아 아웃도어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발MD과정(족부생역학)을 맡아 올바른 신발 추천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때로는 동호회 회원을 대상으로 마라톤 교습을 진행한다. 그와 매장 업무를 함께 했던 다른 동료는 고객의 발 냄새를 맡는 게 싫다며 중도에 그만뒀다고 한다. 하지만, 정 매니저는 자기계발을 통해 단순한 신발판매상이 아닌 신발전문가로 자리 잡고 부가적인 일자리까지 만들었다. 이처럼 중장년의 오랜 경험에 연구노력을 더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