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에서 연구개발직으로 25년 넘게 근무한 박영광(53)씨.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자동차부품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공조(에어컨) 시스템 설계와 개발, 양산관리, PM(Project Management) 팀장 등 공조시스템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회사일은 순탄했지만 고비가 왔다. 자신의 신제품 개발 기획안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반려됐다. 상사는 월요일 주간회의시간에 직원들 앞에서 호통을 쳤다.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기획단계인 제품인데, 매출 계획이 빠졌다는 이유였다. 재취업이 쉽지 않은 5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회사를 옮긴 경험이 있지만, 이미 15년 전이라 처음 이력서를 작성하는 기분이었다. 단순 나열식 대신 직무성과 중심으로 경력기술서를 작성했다. 회사에서 수행한 다양한 업무를 그룹핑해 설계·개발, 프로젝트관리, 지적재산권, 원가절감, 성능개선 등 5개로 요약했다. 제품 개발 건수, 프로젝트별 수익률 등의 성과는 정확한 숫자로 기재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간단한 도면 그림을 삽입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했다. 일본기업연수 등 직무교육부터 엑셀, 파워포인트는 물론 CAD 프로그램 등 컴퓨터 사용 능력까지 상세하게 기재했다. 또한, 공로상, 최우수발명자상 등 수상 실적을 통해 자신의 가치가 높이 보이도록 했다.
재취업, 주변에 답이 있다
박영광씨도 회사를 나온 직후부터 취업준비에 돌입하지는 못했다. 막상 퇴직하고 나니 심리적 부담이 컸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 있었다.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연고가 전혀 없는 농촌에 가서 일손 돕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무료로 농사일을 거들고 싶으니 아무 일이나 시켜달라면, 일을 줬다. 모종심기, 잡목 제거, 삽질, 기타 허드렛일을 하며 조금씩 농촌을 알고 땀의 소중함을 느꼈다. 박영광씨는 은퇴 후 귀촌을 생각하고 있다. 예전부터 농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는 노인층 비중이 높은 농촌에서 사회복지 수요가 많을 것이라 생각해 사회복지사 자격증 과정도 밟고 있다. 주말마다 사회복지 실습과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박영광씨는 우선, 자신의 경력목표에 적합한 기업에 입사서류를 꾸준하게 제출했다. 하지만, 연락이 오는 기업이 별로 없었다. 몇 달이 지나서 면접을 봤지만, 합격 소식은 없었다. 중장년 재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는 재취업에서 인맥 활용의 중요성을 들었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용기를 내어 자신과 업무상 만났던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종업계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동차 산업 동향, 기술 트렌드와 전망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일종의 면접이었다. 사실 10년 동안 알고 지내며, 신규 투자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던 관계였다. 일주일 후에 채용 여부를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불과 3일 만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코스닥 등록 기업의 임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환경 적응 노력 관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직과 문화는 많이 다르다. 중소기업은 정해진 프로세스나 시스템에 의해 흘러가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가만히 기다리면 모든 일이 틀어진다. 또한 프로세스를 만들고 부하직원들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고 챙겨야만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중소기업은 개인의 역량과 경험에 의존한 오너 중심의 경영시스템, 중장기적인 계획보다 당면한 문제 해결 중심으로 운영된다. 박영광씨가 대기업 조직 시스템에 근거해 관행적으로 업무를 진행한다면, 직원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작은 회사라는 이유로 기존 직원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거나, 회사에 대해 비판을 늘어놓는다면, 눈 밖에 나기 쉽다. 성과를 내고 자신의 꿈을 펼치려면,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