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호 보일러기능사

2010년 11월, 국민은행 강남지점에서 지점장으로 퇴직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3400명이 감원됐고, 그에 포함돼 정년도 채우지 못한 채 30년 직장을 그만뒀다. 남들은 지점장으로 퇴직하면 빌딩도 산다지만, 퇴직 전 임원승진을 목표로 영업활동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바람에 주머니가 가벼웠다.

퇴직을 앞두고, 돈을 아끼기 위해 출퇴근에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집에 방치됐던 자전거를 끌고 수리점에 갔다. 일흔이 넘은 자전거 수리점 사장님이 “자전거 수리만 40년, 보잘 것 없는 기술 덕분에 아이들 교육에 결혼까지 다 시켰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퇴직 걱정 없이 인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순간 ‘그래 답은 기술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해 평생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자’고 결심했다.

출근 중 우연히 지하철역 모퉁이에 붙은 서울시 무상기술교육 포스터를 보게 됐다. 곧장 기술학교에 문의했다. 교육과정은 보일러, 인테리어, 조경, 자동차, 전기, 용접 등 17개였다. 관심을 갖고 있던 보일러의 경우 55세 이상은 지원할 수 없었다. 당시 54세, 지금이 아니면 영영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보일러과에 지원했다. 50세가 넘어 서울종합직업학교 보일러과 야간학생이 됐다. 30년 넘게 책상에 앉아 서류만 보던 사람이 아들뻘 아이들과 기술을 배우려니 힘든 정도가 아니라 고통에 가까웠다. 노력 끝에 4개월 만에 보일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공조냉동기능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보일러기능사, 공조냉동기사, 열에너지산업기사,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과거 근무했던 은행 시설과에 찾아가 취업을 문의했다. 소방, 위험물, 가스 자격증도 원했다. 또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요구하는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그리고 다시 문의했더니 현장 퇴사 직원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만 8개. 기록을 위해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결코 아니다. 건물관리인의 필수 자격증이다. 쉰 넘어 취업하기 위해서는 좀 더 희소성 있는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판단됐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에너지관리산업기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기술학교의 6개월 과정 야간반에 다시 입학했다. 공식이 너무도 어려웠다. 강의실도 너무 추워 두꺼운 털옷을 입고 장갑을 낀 채 공부했다. 입학 당시 33명이었던 학생은 2명밖에 남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마지막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 문 열 때부터 문 닫을 때까지 종일 공부만 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엉덩이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공부했다. 2011년엔 124명이 응시해 단 한명도 합격하지 못한 시험이었다. 2012년 합격자는 단 4명. 그리고 그 명단에 내 이름도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유혹도 많았다. 고교 동창모임마다 회비만 내고 양해를 구한 뒤 공부에 전념했다. 각종 경조사도 부인을 대신 보냈다. 도서관에서 귀가하며 배낭 메고 산에서 내려오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은행지점장 출신이 왜 보일러 기술을 배우느냐는 비웃음을 받았다. 하지만 포기하면 갈 곳이 없었다. 앞으로 30년을 위해 포기할 수 없었다. 힘들 때마다 솔개의 고통을 떠올렸다. 80~90년 장수하는 솔개는 50년을 더 살기 위해 휘고 낡은 부리를 바위에 쪼아 으스러뜨린 뒤 새로 난 부리로 노쇠한 발톱과 깃털을 스스로 뽑아내는 고통을 견뎌 마침내 새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다.

전기기능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뒤 취업을 낙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력서 넣은 곳만 250곳에 달한다. 답답한 마음에 중장년일자리센터나 취업박람회 등 많은 곳을 다녔다. 노후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올 2월 워크넷을 통해 국민은행 시설과의 일근자 모집공고를 접하고 지원했고, 3월부터 출근하고 있다. 재취업을 희망한 지 1년 3개월 만이었다. 처음에 출근할 때는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만나면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지하 4층 기계실의 업무는 보일러 관리, 배수관․화장실 수리 등 ‘3D’ 업종이다. 퇴직 전에는 번듯한 양복을 입고 일했지만 지금은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지하에서 일하고 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일하고 받는 월급은 130만원이 전부다. 사람들은 너무 적다고 말한다. 하지만 은행에 8억원을 예금해야 130만원의 이자를 받는다. 퇴직자에게 130만원은 8억원의 가치가 있다. 집에서 놀면 건강보험료가 25만원, 출근하니 3만8000원이다. 여기서부터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겨우 130만원을 벌기 위해 그렇게 독하게 공부했냐고 말한다. 왜 항상 돈을 기준으로 생각하는가. 퇴직 후 다시 청년이 됐다. 기술을 배워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 130만원의 월급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두 번째 인생, 그 값진 대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