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사회는 새로운 5년을 위한 계획 짜기에 한창이다.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그중 최우선 과제는 바로 경제의 성장동력 회복이다. 새 정부가 추구하는 성장과 복지라는 양대 목표에 가장 큰 위협요소는 다름 아닌 저출산·고령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앞으로 15년도 남지 않았다. 해결책 마련이 절박한 상황. 우리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그 대책은 과연 적절한가.
‘은퇴가 없는 나라’에서 김태유 교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저출산·고령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성장기조를 유지하며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김태유 교수는 ‘은퇴가 없는 나라’에서 고령화의 현황과 문제의 심각성, 현행 정책의 한계, ‘일하는 건강한 고령자사회’라는 미래 지향점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차별적 방법론인 ‘연령별 분업에 기초한 이모작 사회 건설’이라는 이론적 배경과 실질적 정책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잘하는 일과 고령자들이 잘하는 일을 구분해 연령대별로 비교우위가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 그렇다면 ‘연령별 분업에 기초한 이모작 사회’ 정책을 꼭 도입해야 하는 이유와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Q. 고령화, 무엇이 문제인가?
A.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나라다. 현 추세대로라면 우리는 2026년쯤 인구의 20%가 고령자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5명 중 1명은 노인이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한국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령화는 ‘경제활동 및 소비 위축→고용 악화→청장년층 생활기반 악화→저출산 심화’라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사람이 늙는 것처럼 경제도 늙게 될 것이다.
Q. 고령화로 인한 경제성장 정체 사례는 있는가?
A. 대표적으로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을 들 수 있다. 일본이 겪는 장기 침체의 이유를 흔히 자산가격 붕괴로 인한 내수위축이라고 분석하지만 사실 이것은 방아쇠에 불과할 뿐 본질적 이유는 인구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저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가부도 위기를 겪은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 세 나라는 이미 고령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이지만 그로 인한 생산력 약화를 상쇄할만한 경제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 국제경쟁력이 계속 하락한 끝에 끝이 보이지 않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Q. 한국은 일본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A. 한국의 고령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노인대국 일본도 초고령사회 진입에 36년이 걸렸으나 우리나라는 불과 26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일본은 국민소득 4만 달러의 부자나라가 된 후 고령화를 맞았지만 우리는 2만 달러대에 턱걸이한 상태에서 고령화 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일본을 부자노인에 비유한다면 한국은 이제 겨우 먹고살 만한데 노년기를 맞은 준비되지 못한 노인인 셈이다. 즉, 고령화에 대비할 시간도, 돈도 일본보다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령화 추세는 일본보다 심각하다.
Q. 기존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효과가 없었나?
A.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이 추진됐고 막대한 국가예산 투입도 예정돼 있지만 안타깝게도 가시적 경제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출산율 증대, 고령자 실업률 저하 등 지표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근본처방보다는 현상완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정책의 초점이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저출산 대책에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가치창출 능력 저하라는 핵심 문제는 정작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Q. 고령화로 인해 한국경제의 미래는 절망적인가?
A. 현재의 사회체제와 정책을 고수한다면 분명 한국은 엄청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고령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낸다면 고령화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이는 고령자를 일하게 하는 ‘일하는 건강한 고령사회’ 건설로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고령자는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역들로,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 일할 의지, 일할 능력, 일할 필요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들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Q. 고령인력의 생산적 활용은 어떻게 가능한가?
A. 나이가 들면서 생산성은 감소해도 실제 감소 패턴은 세부 직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생산성이 빨리 감소하는 직종이 있는 반면, 나이가 들어도 생산성 감퇴가 그리 뚜렷하지 않은 직종도 있다. 언어적 능력, 판단능력, 소통능력 등은 조금만 노력하면 50, 60대에도 크게 감퇴하지 않는다. 이에 맞춰 젊은이들이 잘하는 일과 고령자들이 잘하는 일을 구분해 연령대별로 비교우위가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체계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각 개인은 일생을 통해 두 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두 번의 생산성 피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BMW 헬무트 판케 회장의 사례를 보자. 젊어서는 핵물리학 연구원과 물리학과 교수를 지냈고 컨설팅 회사 맥킨지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BMW의 연구개발 책임자로 이직해 마지막에는 그룹 회장직까지 올랐다. 나이대에 맞는 적성을 극대화해 두 개의 직업을 선택하고 성공을 거둔 예이다.
Q. 연령별 분업체계, 어떻게 작동가능한가?
A. 연령별 비교우위에 근거한 인적자원의 국가적 재배치가 필요하다. 창조적·혁신적 업무를 잘하는 청장년층은 국민총생산을 책임지는 제조업 등 ‘가치창출’ 분야에 주력하게 하고, 고령층은 세일즈, 법률, 자문 등 지원 영역에서 ‘가치이전’ 활동 중심의 일자리를 마련해줘 연령별 분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가치창출’ 분야가 활성화되면 ‘가치이전’ 분야의 일자리도 비례적으로 증가하게 돼 청장년층과 고령층 모두 이득을 보는 고용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고, 이는 경제성장으로 직결될 것이다.
Q. 이모작 고용체계를 만들면 어떤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A. 저자가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현행 일모작 고용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면 인구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때문에 2050년 실질생산량 단위는 2010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만일 이모작 고용체계를 확립한다면 총생산량은 일모작 고용상태에 비해 2030년 98%, 2050년 109% 증가해 무려 2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이래 총 GDP 순위에서 세계 6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시점에서도 이모작 고용체계가 활성화되기만 하면 일모작 고용상태일 때보다 생산량을 66%나 증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령적 분업체계가 성장률 둔화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Q. 이모작 사회 건설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A. 누구나 이모작 인생을 시도할 수 있도록 탄탄한 제도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고용 및 교육 체계를 재편성해 연령별 분업에 기초한 고용구조를 만들고 이를 지지하는 평생교육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대상도 고령자만이 아니라 청년층이나 중장년층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또 다양한 연령과 학력별 차이를 반영하는 맞춤형 정책을 수립, 실행해야 한다. 현재 고령자 취업과 청년층 실업해소를 위한 각종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이모작 사회 건설이라는 구심점 아래 정렬시키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Q. 이모작 인생, 축복인가?
A. 이모작 인생은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한 제2의 인생이며, 연장된 수명을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바꾸어줄 수단이 된다. 이유는 3가지다. 첫째, 고된 번식과 부양의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다. 둘째, 일모작 인생에서 겪은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성공에 다가설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셋째, 일모작 인생기에 축적한 경험과 경륜은 이모작 인생을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로 살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가 두 번째 직업인 축구감독에서 꽃을 피운 히딩크는 이모작 인생에서 성과를 거둔 예다. 젊은 시절 가수활동을 할 때보다 엔터테인먼트사의 수장으로 더 크게 성공한 이수만도 마찬가지다. 이모작 사회 건설은 더 많은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만들어줄 것이다.
지금 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어쩌면 일본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령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은퇴가 없는 나라’를 만든다면 희망은 분명히 있다. 연령별 분업과 인생 이모작 사회 건설을 통해 ‘22-55’에서 ‘25-50-75’로 새로운 인생주기를 실현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한다면 한국경제는 그동안 거둔 절반의 성공을 딛고 완전한 성공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의 심각성과 문제의 본질을 충분히 파악했다면 소모적 논쟁을 벌일 시간은 더 이상 없다. 새로운 5년으로 들어서는 지금이 바로 현실적인 대안 모색에 나설 적기다.
김태유 교수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경제학 석사, 콜로라도(CSM)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과정(기술경영경제정책 전공)을 설립해 2013년까지 석사 260명, 박사 130명을 배출, 과학기술과 사회과학의 학제간 교육 및 연구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 대외직명대사 등의 공직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