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지금도 전봇대와 자전거, 사람도 더 이상 갈 곳 없어 솔부엉이가 겨울밤을 지키는 안동갈라산 막장마을이다. 아랫마을 내리에서 덧티고개 넘어 마을이란 뜻에서 ‘덧티골’라 부른다. 마을 최고 전성기엔 오막살이 초가와 기와집 한 채 포함해 30여 호가 살았다. 갈라산에 기댄 마을사람 삶은, 남자는 일 년 내내 지게나무장사다. 여성은 봄엔 산나물, 여름이면 산머루‧다래, 가을겨울엔 도토리묵을 머리에 이고 안동읍내서 팔아 끼니를 이을 보리쌀을 산다.
덧티골 아이들은 안동읍내를 가지 않으면 비행기만 처다 볼뿐, 자동차나 기차소리도 듣지 못한다. 매달 한 번 일요일과 겹치는 장날, 동구 밖 연자방아까지 어매 따라 장에 가겠다고 때를 쓰다가 울면서 쫓겨 돌아선다. 걸어서 약 이십(二十里), 안동읍내 장을 가기엔 초등 1~2년생은 무리다. 초등학교 3년 때인 1967. 10. 22. 일요일 안동장날 도토리묵 방티 머리에 인 어매 뒤를 졸졸 따라 안동읍내로 간다.
울면서 쫓겨 돌아섰던 연자방아통과해서 턱골 도랑건너 산굽이 오른 막길 약 4km 올라 가릿재 정상에 올랐다. 눈에 훤히 밝힌 호기롭던 안동읍내는 내린 막 산골짜기 몇 발짝, 산그림에 막혀 살아졌다. 청 푸른 하늘을 멋스런 비행하는 황조롱이에 쫓겨 바쁜 딱새날갯짓 따라 꼬부랑 토끼 길을 걷는다. 먼달 둘 집 매이를 지나 1934년에 준공했다는 낙동강 인도교(넓이6m 길이576m)를 향한 걸음은 바쁘다. 용꿈 운이면 낙동강 철교를 달리는 기차를 볼 때도 있다.
‘되를 속이면 3대가 망한다.’ 속설에 도정알곡식장거리를 넉넉한 인심되질, 됫박을 든 되강구들이 다리입구에서 빼앗다시피 거둔다. 곡물상회 두불 재이로 넘길 때는 약한 되질로 이익으로 먹고 사는 되강구다. 장날에는 나무장사꾼 나뭇짐과 보부상, 우마차, 간혹 자전거까지 빼곡히 낙동강인도교를 건넌다. 국민 1,000명당 승용차 0.7대일 때, 안동인구 약 6만 6천여 명, 승용차 40대도 안 될 때라 승용차구경은 하늘에 별 달기보다 더 힘들었다.
옥야동사거리 안동 신 시장 국화빵 굽는 노점아줌마/ 우리 어매라면 얼매나 좋을 꼬/ 장세 거두는 아제, 욕지거리에 쫓겨/ 도토리묵방티 머리에 이고 도망치는 불쌍한 우리 어매보다/ 간장탕기 든 내 손을 발로 차/ 간장을 엎질러버린 장세아재/ 쫓긴 욕지거리에 도토리묵 판돈/ 몇 번이고 침을 크게 삼켜/ 간을 키우고 키워도 떨리기만 하는 어매 손/ 국화빵 두 개/ 국화빵 먹는 아들 입만 보며 빈 침을 삼키시던 어매 당신아/ 당신 살아생전/ 국화빵 한 번 실컷 대접 못한 불효자식, 불효자식은 웁니다.
어릴 적 잊을 수 없는 국화빵 추억 때문인지 어슬렁어슬렁 재래시장 기웃기웃 구경을 좋아한다. 생선, 파ㆍ고추ㆍ마늘ㆍ각종채소, 과일, 호떡장사 15~20개로 이어진 좌판.
“보이소 이 보오쌀 얼매니 껴?”.
“아이고 왔니 껴? 그 보오쌀 되가웃에 5천 오 백 원이시더. 고만 오백 원 빼고 오천 원만 주소.” “아지매 고향이 안동이니 껴?”
“니껴를 안 쓸라꼬 카는 데 나도 모르게 자꾸 니껴가 나오는데 어떻게 하니 껴”,
낯선 만행발걸음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내 고향 안동 ‘니껴’, ‘니더’ 공짜에 오천 원 보오쌀 얼씨구 좋아서 막춤이 저절로 절로 난다. 장마당에 구수한 꺼리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다음 장날 또 갔다. 장마당 한겻 두부좌판 넘어서 점심 먹는 니껴 안동 보살과 또 낯선 보살. “보이소 점심 먹는데 미안하지만 두부 한모 좀 주소” “무슨 말씀 사 주셔서 고맙지요.” “점심 맛있지요.” “반찬은 없지만, 점심 좀 드릴까요.” “점심공양보시 좋지요. 관세음보살.
여자몸빼이 밖에 입은 사리마다. 수십여 년 입어 탈색된 허접한 상의 안에 다 떨어진 난냉구 목, 어디를 보나 불쌍한 상걸베이 증명서다. “배고프니 밥을 주어 아사구제(餓死救濟)하였느냐” 회심곡을 아는 두 보살님이다. 지개야 중놈, 이이야기저이야기 주저리 헛소리, 안동 니껴 보살님, 영덕강구대학정년 퇴직한 김 교수님과 정식인사를 땡겼다. 부처님 팔만사천헛소리 모두가 연기에 인연이라. 그 인연, 장마당점심공양탁발 인연까지 고맙기도….
탁발점심, 퍼 넣은 밥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반찬도 집기 전에 시장반찬과 함께 목젖을 넘어가는 그 맛! 이 맛 그대로를 모든 이에게 글로 표현해 전할 수만 있다면 난, 유명한 글쟁이가 될 텐데. 니껴 안동아지매는 경상북도 청 근처에 농사짓던 땅이 많아 재벌이란다. 잃어버린 안동양반인심이나 끼워 팔면서 세상이야기듣기 좋아 하는 장사란다. 신랑님은 5일마다 왕복 약 7시간자동차운전으로 고향안동친구 농산물 팔아주는 얼씨구 행복이 20여년이란다.
김 교수님 파는 두부는, 국산 손 두부, 중국 산 검은깨 두부, 손 두부, 기계 두부 4종류다. 도토리묵은 상수리 묵, 꿀밤 묵, 두 종류다. 콩나물, 숙주나물에 재첩국…, 10여 가지를 판다. 국산두부와 꿀밤 묵 합해 만원어치 산 어떤 노인이 “아이고 차비가 없어 두부는 다음 장에 사 야겠다.” “차비는 내가 드리지요.” 하면서 만 원 짜리 장보기에 2천원이나 에누리를 해 주는 인심에 놀랐다. 놀란 입을 해 벌리고 구경하노라니.
지난 한달 여 전 2천원 외상값을 갚는 어떤 아지매한테는 “아이고 고맙기도 그까짓 것 2천원 때 먹지 않고 다 갚아 주네. 내 아무리 바빠도 새댁이가 200살 넘게 살다 죽는 날, 좋은 자리 하나주라고 하늘나라에 전화해 놓을게요.” 아무런 증표가 없어도 지키는 2천원 약속이야 말로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가 아닐까? 김 교수님은 찾아오는 손님과 웃음 속에 나누는 세상민심 탐방놀이 재미로 장사를 한단다.
먹다 남은 밥과 반찬까지 얻어 입을 귀에 걸고 “다음 장에 또 점심 얻어 처먹으러 오겠습니다.” 두 손 고아 나만이 약속을 남겼다. 발걸음이 땅에 닫는지 하늘로 나는지 중놈도 모르겠다. 2020년 7월 10일, 부산하늘이 뚫어져 내린 비로 장이 서지 않아 점심공양탁발은 나무아미타불이었다. 7월 30일, 대전홍수난리에 여당국회의원들 안하무인격(眼下無人格) 파안대소, 겸손, 평등 상선약수(上善若水)에도 홍수가 있는 법, 밤이 깊으면 새벽은 빨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