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정은조 기자] 초복이 지난 7월 중순,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의 열기가 가득한 애국지사, 문인들의 안식처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방문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서울 중랑구와 경기 구리시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철 7호선 상봉역 2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약 10분 거리 ‘동부제일병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가깝다.
승정원일기 등에 따르면, 망우리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무학대사의 권유로 현재의 건원릉 자리를 자신의
능지로 결정했다. 태조 이성계는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리 고개에 올라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며 경탄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 ‘망우리'(忘憂里)다.
이곳 공동묘지는 1933년 6월 10일 개장됐다.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됐다. 약 40년 동안 4만7700여 기의 묘지가 조성됐으나, 더 이상의 공간이 없어 1973년 공동묘지로서의 역할을 끝냈다. 2013년 서울시가 미래 유산으로 선정했고, 2016년 망우리 인문학길과 사잇길 2개가 조성되며 근대 인문학의 보고(寶庫)가 됐다.
그리고 2022년 4월 중랑망우공간이 개관하며 역사문화공원으로 발돋움하였다.
망우리에 잠든 인물들도 대단하다. 애국지사로는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유관순 열사, 태허 유상규가 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목마 박인환, 김말봉 여사, 아동문학가 겸 시인 강소천, 이중섭 화가 등 56명의 근현대사 속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입구에서 ‘중랑망우공간’까지는 오르막길이다. 다소 힘들게 올라야 하지만 데크 길을 조성해 그나마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이 길은 서울 둘레길, 중량 둘레길의 교차로 역활도 한다.
중랑망우공간에 이르니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방문객 대부분은 공간 안에 마련된 망우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함께 땀을 식히며 휴식한다.
2층으로 오르니 마침 캘리그래피 기획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畵 망우를 그리다, 戀 사람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한용운, 박인환, 강소천, 김말봉, 방정환, 김삼용 선생 등 6명의 대표작을 캘리그래피로 그려 전시하고 있었다. 목마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작품은 마치 가수 박인희 노래의 음률이 들리듯 다가오고, ‘목마와 시인’은 박인희의 가녀린 낭송인 듯하다.
강소천 선생의 ‘금강산’은 어릴 적 뛰놀며 부르던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의 발랄한 박자가 살아 있는 듯하다. 1시간 정도를 머무르며 학창시절 배웠던 6인의 작품을 떠올리며, 그분들의 시를 마음으로 그린 캘리그래피 작가들의 작품에 녹아들었다.
밖으로 나오니 소파 방정환 선생의 91주년 추모식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라는 선생의 선지자적 말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키우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 묘역을 찾아 걷는다. 50여m 오르니 인물광장이 보인다. 이곳에 안장된 56명의 역사 속 인물들의 사진과 약력이 소개돼 있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목마 박인환 선생의 묘역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30여m를 걸으니 묘역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내리막 계단 길을 따라 50여m 더 걸으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 가니 박인환 선생의 묘역이다. 선생의 ‘세월이 가면’이 스피커에서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잠시 묵념하며 옛 추억에 젖어본다
다시 돌아서 올라가면 ‘사잇길’ 산책로가 보인다. 안내서에 따르면 구리한강전망대, 유상규, 안창호(도산공원으로 이장돼 현재는 기념비만 있다) 선생 묘역이 나온다. 7월의 뙤약볕에 손수건조차 준비 없이 10여 분을 올랐더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마침 내려오던 한 어르신이 한여름 한낮에 오르는 것은 무리니 가을에 다시 오라고 충고한다. 어르신의 충고를 빌미로 “오늘은 여기까지”를 외치며 발걸음을 돌린다. 나이가 지극한 어르신은 매일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운동 삼아 방문하고, 봄 가을에는 용마산을 거쳐 아차산까지 걷는다고 했다.
역사의 아픔을 품은 공동묘지에서 역사문화공원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망우역사문화공원. 앞으로도 시민들이 자연을 만끽하는 가운데 근심을 잊고 힐링하며 역사를 만나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