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운성 기자]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고 전쟁의 참상을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을 따라가 본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임진각을 찾아 비무장지대를 체험하고 일상이 지켜지는 평화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빠드득 빠드득‘. 전쟁의 소리
‘빠드득 빠드득‘. 내가 기억하는 가장 생생한 전쟁의 소리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세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200여 명 소련군 여전사들의 참전기다. 이들은 전쟁터에서 총을 쏘고 전차를 모는 전투 행위뿐만 아니라 식량 보급, 빨래나 각종 의료 업무 등을 처리하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그녀들이 겪은 전쟁의 모습, 전쟁의 상처, 그리고 소리를 인터뷰 형식으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도 그 현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전투 중 백병전이 벌어지면 적군과 아군이 서로 섞여 뒤엉켜 싸우게 된다. 그때 들리는 소리 중에 ‘빠드득 빠드득’이 있다. 서로 적군의 뼈를 찌르고 꺾고 부러뜨리는 소리다. 이 이야기를 전한 여군은 이 소리가 평생 귓가를 맴돈다고 했다. 나도 전쟁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리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원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끝이 없었다. 작게는 나 또는 가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크게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목숨을 바친 분들이 있어 오늘날 우리의 삶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돌아가신 분들을 ‘순국열사’라 칭하고, 그분들의 얼을 기리고 감사한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해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달이다. 국가보훈처는 2022년 호군보훈의 달 주제를 ‘#고맙습니다’로 정했다. 그리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벌써 70년 이상이 흘렀다. 이제는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더 많은 시대다. 전쟁은 마치 멀리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휴전상태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몇 년 전 남북화해 모드로 금방이라도 남과 북이 왕래하고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순간에 분위기는 가라앉고 다시 예전의 냉랭한 분위기가 비무장지대를 감싸고 있다.
비무장지대 체험 여행
6월에는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방문해 잊혀져 가는 전쟁의 참상을 되새겨 보고 순국열사의 노고를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지. 1981년, 비무장지대 철책선에 근무했던 임희빈(61·경기 수원시) 씨는 불과 200여m 거리에서 북한군과 늘 마주하던 당시를 기억한다. 체제에 대한 상호 불신으로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불쌍하고 안쓰럽던 상황이 지금도 기억난다. 비무장지대는 목숨을 건 잦은 비상상황으로 항상 긴장상태에 있었다.
임희빈 씨는 “전쟁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가는 요즘, 비무장지대 현장 견학은 좋은 체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휴전선 가까운 곳에 임진각이 있다. 수도권에서도 멀지 않은 임진각은 1972년 설립된 통일안보 관광지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과 남북대립으로 인한 민족의 슬픔이 아로 새겨져 있는 곳.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통일을 염원하며 매년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다. 각종 놀이시설뿐만 아니라 북한의 실상과 전쟁의 참상, 비무장지대를 알리는 체험 시설과 전시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임진각 DMZ평화투어는 비무장지대 내의 도라산역, 도라산 전망대, 제3땅굴, 그리고 통일촌 등을 돌아보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다가 지난 5월부터 재개됐다. 현재는 도라산 전망대와 제3땅굴만 체험할 수 있다.
도라산 전망대는 DMZ 안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남측 최북단 전망대다. 이곳에서는 북한의 선전마을과 농토 등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개성 시가지 일부와 개성 공단, 그리고 김일성 동상 등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
서울에서 불과 52km 지점에 제3땅굴이 있다. 길이 1635m, 너비 2m, 높이 2m 규모의 땅굴은 1978년에 발견됐다. 북한 병력 3만 명이 1시간 이내에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규모다.
또한, 임진각내에는 ‘DMZ Live‘라는 공간을 준비 중이다. VR(가상 체험)을 비롯해 첨단 정보기술 기기를 이용해 비무장지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6월 3일 문을 연다.
임진각 평화 곤도라를 이용하면 갤러리 ‘그리브스’를 방문할 수 있다. 이 갤러리는 남방 한계선에서 2km 떨어진 곳이다. 본래 한국전쟁 이후 50여 년 동안 미군이 주군했던 미군기지다. 미군이 철수하고 볼링장으로 사용하다 갤러리로 변신해 전시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전쟁 중 힘겨웠던 사람들의 일상을 느껴볼 수 있다. 전쟁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도 다양한 설치 작품들을 통해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고, 어쩌면 지금 이 땅 어디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우리들이 겪은 전쟁이고 우리들의 모습이다.
일상이 지속되기를 소망하며
갤러리 그리브스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일상이 지켜지는 것, 그것이 평화다’ 라는 글이 새겨진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 직전, 텔레비전의 여행 프로그램 중 우크라이나 휴양도시의 평화로운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휴양지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그리고 전쟁 발발 후 시민들이 겪고 있는 참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쟁 직전의 일상과 전쟁 발발 후 참상이 겹치면서 ‘일상이 지켜지는 것, 그것이 평화다’라는 문구가 더욱 실감이 나는 2022년이다.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산책로를 자유롭게 거닐며 한가한 일상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표정 어디에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는 없다. 이들의 일상이 지켜져 평화가 유지되기를 염원하며 임진각 비무장지대 평화 투어를 마무리한다. 순국선열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일상을 지키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넓게 펼쳐진 평화누리 공원 한편에 바람의 언덕이 있다. 하나인 한반도를 오가는 자유로운 바람의 노래를 표현한 작품이다. 저 바람처럼 남과 북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일상이 어서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