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주지영 기자] 2012년 6월, 19년간 MBC 방송기자로 폼 나게 살던 저자는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난다. 회사 선후배들과의 관계는 물론, 주변 평판이 좋은 언론인이자 20년간 50개의 스피커를 탐닉했던 AV애호가이며 퇴근 후면 늘 한강을 누비던 라이더로 살아온, 좀 놀 줄 아는 평범한 아저씨의 인생에 유례없는 위기가 닥쳤다.
평화롭던 그의 인생은 해고와 동시에 급박하게 흘러갔다. 복직 희망과 절망이 파도처럼 수시로 들이쳤다가 빠져나갔다. 일상은 무너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계속 소파에 붙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직 후 3개월을 허송세월로 보낸 어느 날, 남아도는 시간에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목공예에 발을 들인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몸을 움직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목공의 재미에 이내 깊게 빠져든다. 일은 점점 커져 급기야 입문 두 달 만에 ‘내 손으로 만든 세상에 없던 스피커, 평생 쓸 진짜 멋있는 스피커’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해고당한 지 약 1년 뒤, 갖은 시행착오 끝에 수제 스피커 장인이 돼 명품 스피커와 함께 돌아왔다.
입 막힌 기자, 스피커로 세상 말 걸다
MBC 경영진은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 정책과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170여 일간 벌어진 파업의 배후로 그를 지목했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파업을 주도한 지도부도 아니었다. 전임 노조위원장이긴 하지만 한참 전에 임기가 끝난 터였다. 대학시절 별명이 ‘베짱이’ ‘부르주아 한량’이었을 정도로 운동권 근처도 안 간 사람이라 평생 투철한 신념을 품어본 적도 없었다. 아무도 안 맡으려는 짐을 등 떠밀려 맡은 것뿐이었다. 눈 딱 감고 노조위원장 자리를 거절했으면 일신은 지킬 수 있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한 결과가 해고였다.
아픔은 너무나 컸다. 함께 해고된 동료 중 누군가는 박사과정을 등록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났다. 그 와중에 좋은 기회도 찾아왔다. 독립 언론이나 타 방송사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고, 억대 연봉을 제시한 대기업 홍보임원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로 결심한다. 맞서 싸우는 전장도, 호의호식하는 길도 버리고 40대 후반의 나이에 수제 스피커 장인이라는 엉뚱함에 가까운, 전혀 새로운 길을 택한다. 그것도 결연한 게 아니라 신나게.
인생 2막, 스트레스 없이 살기
이 책은 평탄한 삶을 살던 한 남자의 인생에 휘몰아 닥친 지난 2년간의 풍파인 동시에 국산 하이앤드 스피커 ‘쿠르베’의 탄생 스토리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일군 창업기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한다. 창업 아이템 자체가 ‘취미를 파고들다가 만난 것’인데다 손수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기에 흥미는 더욱 증폭된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바로바로 밀어붙이는 국가대표급 추진력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은 것보다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어쩌다 목공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그러다 한 단계 한 단계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좌충우돌 모험기를 읽다보면 한편의 청춘영화를 보는 것처럼 활기찬 에너지가 샘솟는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불안 ·초조해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인생 2막에 직면하거나 마주하기 직전인 사람들에게 쿠르베는 아름다운 소리로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을 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