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통일의 전초기지, 삼년산성
보은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나 속리산 쪽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편으로 삼년산성 가는 길이 나옵니다. 삼년산성은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우리나라 산성을 대표할 만한 석축산성이지요. 삼년산성은 성을 쌓던 당시 이곳이 삼년군 또는 삼년산군으로 불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여 삼년산성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득한 멋 옛날의 이야기이니 무엇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요.
전국에 무수히 많은 산성이 있지만,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삼년산성은 비록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다른 산성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다투던 분쟁지 중 하나였습니다. 신라는 백제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산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바로 삼년산성인 것이지요.
백제가 웅진과 사비로 천도한 후에도 삼년산성은 서쪽의 백제에 대비하고,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이 지역을 확보한 신라는 서북지방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삼년산성은 신라 삼국 통일의 중요한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기록에 따르면 삼년산성은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합니다.
■ 삼년산성
- 위치 :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보은읍)
- 문의 : 문화관광과 043-540-3391
- 지정현황 : 사적 제235호(1973.05.25 지정)
선을 베푼 따뜻한 집, 선병국 가옥
삼년산성을 벗어나 서원계곡을 따라 가다 보면 소나무 숲 속에 가려진 웅장한 기와집이 있는데요, 이곳은 바로 ‘선병국 가옥’입니다. 선병국 가옥은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에 보은 선씨 선정훈이 당대의 제일 가는 대목들을 불러 지은 집입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이곳은 연화부수형의 명당이었다고 합니다. 부호였던 선정훈은 일대의 영재들을 뽑아 교육시키기도 했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이 배고픔을 몰랐다고 할 만큼 선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집의 크기는 무려 4만평에 이른다고 하네요. 2만 평은 집, 나머지 2만 평은 소나무 숲으로 그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하지요. (지금은 소나무 숲에 군부대가 들어서있다고 합니다.) 서원계곡을 따라 오다 다리를 하나 건너면 소나무 숲 사이로 문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문은 가옥의 북쪽 후문으로 현재 주 출입구로 이용되고 있는 곳입니다.
가옥은 크게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사당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당의 담장, 안채의 담장, 사랑채의 담장까지 각각의 공간에 담장을 따로 두어 얼핏 보면 넓은 땅에 별도의 기와집 세 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당, 안채, 사랑채를 차례로 거쳐 나오면 가옥의 정문을 만나게 되는데 정문 밖에서 바라보면 정문이 산과 어우러져 한층 운치 있습니다.
현재 안채에서는 가옥의 주인이 생활 중입니다. 따라서 자유롭게 안채를 둘러보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사랑채와 사당만으로도 가옥의 기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답니다. 가옥의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울창하게 솟은 소나무도 만날 수 있고, 마당을 가득 메운 장독대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는 가옥에서 잠시 여유를 즐겨보시길 추천합니다.
■ 선병국가옥
- 위치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장안면)
- 공지사항 :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문의 : 043-543-7177
- 이용시간 : 10:00~18:00
- 지정현황 : 중요민속문화재 제134호(1984.01.14 지정)
벼슬 받은 소나무, 정이품송
법주사로 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하나 서 있습니다. 울타리를 쳐놓고 지지대까지 세워놓은 것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임을 알 수 있는데요, 이 소나무 다름 아닌 ‘정이품송’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시대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나뭇가지에 걸려 지나가지 못하게 되자 왕이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라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돌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이 그 자리에서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의 벼슬을 내렸고,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 합니다. 현재는 폭설과 병충해로 가지의 절반 정도가 떨어져나가 과거의 모습만큼 화려하진 않습니다.
보물을 품은 사찰, 법주사
앞서 말했듯 보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속리산. 그렇다면 속리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요? 아마 대다수의 분들이 ‘법주사’를 떠올릴 것입니다. 법주사는 보은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사찰 중 하나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법주사는 다양한 국보와 보물을 가지고 있답니다. 법주사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팔상전과 쌍사자석등은 그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알 정도로 이미 매우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국보인 석련지를 포함해 10여 점의 보물을 가지고 있으니 법주사 안에 있는 국보와 보물을 살펴보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주차장에서 법주사 입구까지 이어진 울창한 숲길을 지나 사찰 내부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팔상전도 쌍사자석등도 아닌 바로 금동미륵대불입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랍니다. 팔상전 옆에 위치한 금동미륵대불은 현대식으로 보이지만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금동미륵대불의 아래로는 법당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금동미륵대불을 보고 나선 바로 옆 팔상전을 둘러보세요.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오층목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목탑이 많이 세워졌었지만,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과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다 불타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법주사 팔상전만이 남아있습니다. 법주사는 규모로 따지나 유명세로 따지나 여러모로 화려한 사찰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팔상전만큼은 소박한 느낌을 줍니다. 빛 바랜 팔상전의 단청에서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물씬 묻어있습니다.
팔상전 뒤로는 쌍사자석등이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위치한 쌍사자석등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8각 석등입니다. 다만 기존의 석등과 다른 점이 있다면 8각 기둥을 두 마리의 사자로 표현한 것이지요. 특히 사자는 갈기가 있고 몸통과 다리의 근육까지 세세하게 표현되어 예술적 가치를 더한답니다.
어느덧 봄. 여행을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 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산뜻한 이런 날에 집에만 있기에는 가버리는 시간이 아깝지요. 바쁜 나날 속에서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가 충분치 않다면 소박하게 당일치기 여행을 꿈꿔보세요. 따뜻하고 여유로운 이 곳, 보은에서 말입니다.
■ 법주사
- 위치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속리산면)
- 문의 : 법주사 043-543-3615
- 홈페이지 : http://www.beopjusa.or.kr
- 이용시간 : 일출시~일몰시까지
- 쉬는날 : 연중무휴
- 등산로 :
- 법주사 – 목욕소 – 세심정 – 복천암 – 중사자암 – 문장대 (6.7km, 3시간30분 소요)
- 법주사 – 태실 – 상화암 – 학소대 – 상고암 – 비로봉 – 천황봉 (5.42km, 3시간40분 소요)
- 법주사 – 세심정 – 비로산장 – 경업대 – 신선대
기사자료 : 한국관광공사(korean.visit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