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김지선 기자]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남긴 육성 유언이 방송되면서 유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상속 관련, 아무리 적은 재산이라도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는 자녀들간 다툼도 늘고 있다. 평소 유언을 남기지 않은 어르신들이 급작스럽게 맞이한 상황에서 유언을 놓고 소송을 벌이는 일도 잦아졌다.
이런 이유로 고령의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 기관들이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유언장 작성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일 정도다. 유언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최근 주목받는 ‘유언대용신탁제도’
우리나라 민법은 ‘유류분제도’를 허용한다.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유언을 남기더라도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하는 제도다.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아랫대인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윗대인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보장받는다.
유류분제도는 평소 부모님과 연락도 안 한 자식들, 심지어 학대를 일삼았어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나쁜 유언장의 폐해 때문에 유류분제도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로 인해 유언장이 쓸모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2020년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유언대용신탁’ 상품에 맡긴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이 아니라는 첫 판례다.
유언대용신탁이란 재산을 물려주는 위탁자가 수탁자인 금융회사와 체결한 신탁계약에 따라 상속인 또는 제3자를 수익자로 지정하면, 위탁자가 생전에는 신탁재산의 운용수익을 받다가 사망 이후 신탁재산을 미리 계약한 대로 수익자에게 상속·배분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가 피상속인이 미리 지정한 내용에 따라 상속재산을 상속·배분하기 때문에 자식들의 상속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민법, 5가지 유언 규정
유류분제도의 폐해가 있더라도 유언은 본인의 사후 가족들의 분쟁과 갈등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민법은 유언에 대해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모두 5가지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유언에 대해 엄격한 방식을 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다.
민법이 유언에 대한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진의를 정확히 하고 이로 인해 법적 혼란과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법으로 정한 방식과 요건에 어긋난 유언은 설령 유언자의 의사와 일치해도 법적으로는 무효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 내용(전문)을 직접 쓴 유언을 말한다. 반드시 유언자가 전문,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손으로 쓰고 반드시 날인해야 한다. 5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누락되면 법적 효력이 없다.
자필증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필기를 시킨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또, 연월일의 경우 특정 날짜를 명확하게 써야 한다. 연월만 쓰고 날짜를 쓰지 않으면 무효다.
성명은 그 유언이 누구의 것인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이면 된다. 호나 예명을 써도 무방하다. 날인은 도장뿐만 아니라 손가락 지문날인도 가능하다.
하지만 반드시 유언자의 것이어야 한다. 자필증서 유언의 내용을 변경할 때도 유언자가 유언 내용을 직접 쓰고 날인해야 한다.
녹음에 의한 유언
민법에 따르면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와 성명, 연월일을 말하고, 여기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성명을 말함으로써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녹음에 의한 유언 방식은 문자를 모르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고, 유언자의 육성을 보존해 유언 당시의 감정까지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언자의 성명과 정확한 날짜를 말하지 않은 유언은 무효다. 유언에 참여한 증인의 성명도 말해 녹음해야 한다.
증인은 1명이라도 된다. 소리만 녹음되는 음향녹음은 물론, 소리와 영상이 함께 기록되는 영상녹화도 가능하다. 테이프든 디지털파일이든 상관없다.
만약, 어르신들 가운데 치매·뇌졸중과 같은 의사능력과 관련된 질병을 진단받았지만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 또는 비슷한 상황에서 성년후견인을 두고 있는 어르신의 경우, 의사가 유언에 참여해 유언하는 어르신이 심신이 회복된 상태라는 사실을 녹음해야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유언자가 증인 2명과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로 설명하면, 공증인이 유언 내용을 받아 쓴 다음 낭독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공증인이 받아 쓴 유언 내용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승인한 뒤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이다.
공증인은 변호사 중에서도 지방검찰청을 거쳐 법무부장관에게 신고한 공증담당변호사여야 한다. 공증인법은 공증인 자격으로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판사, 검사, 변호사 또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대 교수로 규정하고 있다. 또, 변호사법에 따라 설립된 법무법인도 공증인이 될 수 있다. 법무사는 공증인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 유언은 변호사 사무소에서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질병이나 노령으로 공증 사무실을 직접 방문할 수 없는 경우 의사결정 능력만 온전하다면 공증인이 유언자의 집이나 병원에 출장을 가서 작성할 수도 있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유언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언 방식이다. 유언을 남기는 사람이 유언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리지만, 유언 내용은 유언의 효력이 발생할 때가지 알리지 않는 유언이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성명을 쓴 유언장을 종이나 봉투에 넣어 봉한 뒤 이것을 2명 이상의 증인에게 제출해 자신의 유언임을 표시하고, 봉인된 증서에 제출한 날짜(연월일)를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유언장의 표면에 증인 2명 이상이 기명날인해야 유언 효력을 갖는다. 또한, 증인이 기명날인 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공증인이나 법원서기에게 제출해 확정을 받아야 한다.
증인 2명 이상이 사인한 것으로 끝나면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다. 비밀증서 유언은 굳이 자필로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유언자가 유언 내용을 말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나 증인이 필기해도 된다. 다른 사람이 쓴 경우 유언장 맨 아래에 필기자를 밝히고 서명해야 한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질병이나 기타 급박한 사유로 인해 유언자가 2명 이상의 증인을 참여시키고, 그 중 1명에게 유언의 취지를 말로 전달하면, 그 내용을 받아 적어 낭독한 뒤 유언자의 증인들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이다.
이 유언은 다른 방식의 유언을 할 수 없는 급박한 경우에만 인정된다. 증인이나 이해관계인이 급박한 사유가 종료된 날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해 받지 못하면 무효다. 대법원은 유언 당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유언자가 유언취지가 맞는지 확인을 요구하는 변호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어’라고 말한 것만으로는 구수증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