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65세 이상 시니어에 적용되는 지하철 무임승차(무임수송)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개인별로 교통비를 지급하는 ‘교통복지카드’를 유력한 개선책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6개 광역자치단체는 전국 지하철 운영적자의 60%는 무임승차 탓이라며, 중앙정부가 무임승차 비용을 대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회에서 무임승차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라는 도시철도법 개정 작업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한편으론, 재정뿐만 아니라 지하철이 없는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대도시권을 제외하고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선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오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마다 교통비 지원정책이 천차만별이어서 거주지에 따라 누리는 혜택도 다르기도 하다.
급기야 정부가 어느 곳에 거주하더라도 개인별로 공평하게 교통복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인인구 늘수록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 가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6개 도시철도(지하철) 운영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철도 무임승차 인원은 4억8000만명, 무임 손실액은 6455억원이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지난해 지하철 1~8호선 전체 무임승차 인원은 2억574만 명으로 전년대비 1006만 명이 늘었다. 전체 승차인원 중 비율은 15.9%였다. 이들의 수송을 운임으로 환산하면 2784억 원에 달한다는 게 서울메트로 설명이다.
무임승차 인원 가운데 65세 이상 시니어는 83.0%, 일평균 46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1.2%p 증가했다. 이는 최근 5년 간 가장 높은 비중이다. 장애인이 16.0%(일평균 9만 명),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 등 기타 인원이 1.0%(일평균 6000명)을 각각 차지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65세 이상 어르신 인원과 비율이 2019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무임승차 인원도 크게 늘고 있다. 다만,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외출 등을 자제해 이동 수요가 감소했고, 2021년 다시 소폭 반등했다.
지하철운영기관, “정부가 원인제공, 책임져라”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는 1984년 65세 이상 노인을 시작으로 장애인, 유공자로 확대돼 올해로 37년째 시행 중이다. 특히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중이 1984년 4.1%에서 2020년 15.7%로 늘어나 노인 무임승차가 손실의 상당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은 적자 규모를 줄이는 방안으로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당장은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가장 현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대안은 무임승차 제도에 따른 비용을 정부가 보전하는 것. 공기업인 코레일의 경우 수도권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의 60% 이상을 매년 국비로 지원받고 있다.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은 “무임승차 제도는 거주지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국가 교통복지 제도로 정부가 원인 제공자이자 수혜자”라면서, “재정 여력이 있는 정부의 보전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간 재정분담의 공정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도시철도법 개정안, “국가가 비용 부담하라”
이전과 다르게 무임승차 손실에 대해 중앙정부가 지원하라는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인구고령화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을 비롯해 장애인, 국가유공자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분을 중앙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무임수송은 국가의 정책 또는 공공목적을 위하여 제공되는 공익서비스이므로 해당 비용은 국가에서 부담하여야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철도 무임수송 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철도 운영기관은 무임수송 비용을 직접 부담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에 따라 무임수송 인원이 급증하고 있고, 도시철도의 승객안전과 도시철도서비스 향상을 위한 투자가 축소되고 있다”며, “무임수송 비용을 원인제공자인 국가가 부담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지하철 이용 못하는 지방 노인은 상대적 박탈감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는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한다. 노인복지법은 ‘국가 또는 지자체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지자체의 수송시설 등을 무료 또는 이용요금을 할인받아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통복지 차원에서 시행됐다. 하지만 현실은 교통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재정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은 대도시지역 노인들만 혜택을 보고 있다. 농어촌 노인은 국가가 제공하는 교통복지에서 소외되고 있다. 만약, 도시철도법 개정으로 중앙정부가 무임승차 비용을 부담하게 되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도시라면 무료로 지하철 타고 못 가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농어촌에서는 몇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도 돈을 내야만 탈 수 있다. 그런데, 대도시 노인들에게 집중된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을 중앙정부가 부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농어촌 노인들에 대한 교통비 지원 요구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농어촌도 상응한 혜택 제공해야” 논란
현재 농어촌 노인을 위한 교통복지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농어촌지역 가운데 이른바 ‘100원 택시’를 운영하거나 노인 대상으로 버스비 일부를 보조해주는 곳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현재 월 4회 정도로 이용횟수가 제한된 ‘100원 택시’나 버스비 일부 지원만으로는 농어촌 노인들의 교통복지를 도시노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남도의 경우 버스가 운행되지 않거나,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먼 농산어촌 마을 사람들이 100원만 내고 택시를 불러 가까운 정류장이나 읍내까지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100원 택시’ 제도를 운영한다. 연인원 100만명 이상이 이용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횟수 제한이 있어 아쉽다는 의견이 많다.
전라남도의 경우 이미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를 운용 중인 대도시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100원 택시’ 예산을 더욱 늘려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도시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에 발맞춰 농촌노인에게 버스 무임승차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충청남도의 경우 2019년부터 7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내버스와 농어촌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전북 진안군도 70세 이상 노인에게 버스비 무료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교통비 지원은 어르신들의 이동권 확보와 대중교통 이용 편의성에 관심 있는 일부 지자체에 제한되는 정책이다. 앞으로 어르신들이 거주지 상관없이 교통복지를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보편적 ‘교통복지카드’ 검토
이런 가운데 정부가 개인별로 교통비를 지급하는 ‘교통복지카드’가 유력한 방안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달 초 일부 언론은 국회와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국토교통부는 ‘무임수송제도 점검 및 제도진단 연구 용역’이 발주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 관계자는 “도시철도 무임 수송 정책을 진단해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하자는 방안에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용역에서 검토될 유력한 대안 중 하나는 교통복지카드다. 쉽게 말해 교통비를 개별적으로 지급해 지역, 교통수단의 제약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서울 등 도시철도가 있는 지역의 노인은 혜택을 받지만 다른지역은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들도 받는 방안이 교통복지카드”라며 “예를 들어 20만원을 신용카드 등과 연계해 (지급하면)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에 계신 분도 버스에 사용할 수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적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