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얼마 전, 구글의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알파고’(AlphaGo)와 세계 랭킹 4위이자 프로기사 경력 21년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전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5판3승제 대국에서 알파고가 4대1로 승리하면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인공지능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혜택보다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을 인공지능과 로봇기술(Robotics)에 빼앗길까 두려운 것이지요. 하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인간의 일자리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요?
영국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교수와 마이클 오스 본(Michael Osborne) 교수는 2013년 발표한 공동연구보고서 「고용의 미래 : 일자리가 컴퓨터화에 얼마나 취약한가?」(The future of employment : How susceptible are jobs to computerization?)에서 “예민한 판단이 요구되는 직업도 점차 컴퓨터화에 취약하게 된다”고 결론 내린다.
프레이·오스본 교수는 702개 직업을 대상으로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최신 기술로 이 직업의 모든 작업이 컴퓨터에 의해 수행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고용의 47%가 향후 20년 이내에 컴퓨터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 확률이 70~99%라고 추산했다. 이런 추산 결과는 다른 선진국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직업은 10년 또는 20년 안에 잠재적으로 자동화돼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거나 직업의 형태가 매우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프레이·오스본 교수의 연구방법을 적용, 한국의 직업을 분석했더니 고위험군에 속하는 직업 종사자는 더 늘어났다. 현존하는 직업의 63%가 고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단순 노무종사자, 사무종사자,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에서 비율이 높았다.
“노동력 대체·일자리 양극화 불가피”
과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인간의 직업을 빼앗는 현실이 찾아올까, 아니면 막연한 불안감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현실부터 짚어봐야 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설명되는 디지털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속도, 데이터 저장, 컴퓨팅 성능 등 ICT 기술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인류를 불안케 하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자율주행자동차,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 로봇기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내러티브 사이언스(Narrative Science)의 기사작성 로봇 등이 그 결과물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ICT기술이 인간의 고용과 노동환경을 심각한 수준으로 침탈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승민 미래사회연구실장은 “스마트 기술 발전은 지식에 기반을 둔 의미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노동자의 비중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됨으로써 노동력 대체와 일자리 양극화 등 고용구조의 질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거와 달리 스마트 기술은 중간 직종의 공동화뿐만 아니라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의 직종에도 위협적이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공동화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화이트칼라 지식·기술마저 빼앗을 것”
스마트 기술이 초래할 미래 진단은 단순히 몇 개의 직업이 기술에 위협 받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적 경영관리와 생산체제의 시발점인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움직임, 동선, 작업 범위 등 노동표준화를 통해 생산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체계를 말하는 테일러리즘은 노동자를 일종의 생산기계로 간주하고, 노동자의 기술을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포드(Henry Ford)는 테일러리즘의 작업편성 원리와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대량자동조립공정을 도입,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생산했다.
하지만, 인간을 포함해 모든 것을 기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은 1980년대 이후 폐기처분되고 있다. 테일러와 포드가 조직의 목표인 생산성 극대화를 통한 이윤추구를 위해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동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오히려 경쟁력의 원천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ICT, 스마트기술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형태의 디지털 테일러리즘과 디지털 포디즘이 출현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승민 실장은 “인간의 지적 업무를 표준화하는 디지털 테일러리즘의 등장 이후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지적 업무 처리 과정이 디지털 인프라와 플랫폼에 맞춰 재편성되는 디지털 포디즘이 나타나고 있다”며 “스마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고도의 전문 지식을 인간이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처리할 수만 있다면 디지털 포디즘의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실제로 현재 기업들은 일부 고위급 임원을 제외한 대다수 직원들의 자율성과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시장·일자리 창출될 것”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가져다 줄 장밋빛 결과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할 경우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자동화·지능화가 촉진돼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되고, 이는 제조업 등 산업발전을 촉진시켜 오히려 고용이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유병은·김윤정 연구원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로 자동화된 시스템은 막대한 인건비를 피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돌렸던 오프쇼어링(off-shoring) 정책을 펴왔던 선진국에서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게 돼 일부 선진국에서는 제조업 회귀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미국에서는 제조업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최근 몇 년 전부터 해외에 나간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제조업 회귀현상은 자국 일자리 창출에 직접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연관 산업을 파생시켜 관련 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매킨지(McKinsey)가 2015년 미국 내 직업과 기술력을 분석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800개 직업에서 이뤄지는 2000가지의 주요 작업을 분석했더니 45%나 자동화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자동화로 인해 완벽하게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은 단 5%에 불과했다.
유병은·김윤정 연구원은 “로봇의 노동력 대체는 ‘직업’ 단위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 단위로 평가돼야 한다”며 “자동화로 인해 작업 일부가 대체되더라도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며, 기계와 사람이 함께 일하면서 효율성을 높여 나갈 것이란 의미”라고 분석했다.
인공지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새로운 직업군도 탄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로봇·소프트웨어 개발, 운용, 수리 및 유지 보수 관련 직업 등 개발 인력이나 숙련된 운영자 등의 지식집약적인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관련 비즈니스나 신규 서비스가 활성화 되면서 이에 따른 고용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인간에게 약이 될 것인지, 독이 될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기관이나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예측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지적·육체적 업무 대체가 일어날 것이고, 단순 반복적 업무나 매뉴얼에 기반한 업무의 상당 부분이 대체될 것이라는 점이다.
반복적이거나 물리적인 일을 기계가 담당하고, 인간은 보다 창의적인 일이나 감성·협업이 필요한 일에 집중하게 되면 산업 생산성이나 제품과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눈여겨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