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국립생태원장을 역임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005년부터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저서를 통해 일찌감치 고령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했습니다.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래사회의 모습과 노인이 될 지금의 50~60대 시니어세대가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래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4개의 키워드로 ‘기후의 변화’ ‘도시화’ ‘다문화’ 그리고, ‘고령화’를 꼽습니다. 고령화에 대한 그의 견해는 무엇일까요. 서울 서북50+캠퍼스 개관기념 ‘신노년과 미래사회’란 주제로 마련된 최재천 교수의 특강을 재구성해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 문제를 고민한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지금 프랑스는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최재천 원장은 “프랑스 정부가 어떤 출산율 정책을 펼쳤는지 전 세계 국가들로부터 문의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며 지원해 왔다. 그것은 1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진행됐다. 그래서 어떤 정책과 지원이 출산율 높이는데 도움이 됐는지 한두 가지를 콕 찍을 수 없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대답이다. 그동안 펼쳐 왔던 정책들이 두루두루 적용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최 원장은 “우리나라는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최단 시간 내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면서, “우리나라 출산율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100년 동안의 노력 끝에 이뤄낸 일을 우리는 20년 내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원장은 “우리나라가 20년 내에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정부, 기관 및 단체, 연구소 등은 해외 사례 벤치마킹을 잘한다.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벤치마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우리만큼 심각하지 않다.
최 원장은 “결국 우리나라 고령화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8899냐? 9988이냐?”
8899, 88세까지 구질구질하게 살 것인가, 9988, 99세까지 팔팔하게 살 것인가? 최재천 원장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삶의 질이 보장된 상태에서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질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경로로 병에 걸리는가, 어떻게 병에 걸리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치료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의학계의 문제는 ‘왜?’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병이 왜 걸리는지, 왜 감기에 걸리는지, 왜 암에 걸리는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의문 중의 하나가 ‘왜 늙는가’이다. 그냥 이대로 죽 늙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세포에도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있다. 세포는 왜 주기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해답을 생물학에서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포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기계보다 정밀한 기계와 같다. 늘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세포는 늙고 죽는가?
줄기세포는 새로운 세포를 계속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세포다. 처음 태어날 때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하나의 수정란이 된다. 이것이 여러 번 분열하면서 세포들은 각각의 역할이 정해지고 그 역할에 맞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세포는 암세포가 된다.
우리 몸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세포가 있다. 하나는 계속해서 세포를 만들어 내고 번식하는 세포고, 또 하나는 정해진 기능과 역할에 충실한 세포다. 줄기세포는 바로 전자의 것을 말한다.
최 원장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세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진화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만들어 놓은 세포를 이용해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세포를 취사선택하면서 진화하는 것이다. 생명은 후자를 택하고 있다. 기존에 만들어놓은 생명체를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쓰고, 피크가 지나고 나면 폐기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진화생물학 이론을 의학에 접목시킨 사람들이 있다.
랜돌프 네스(Randolph Ness)는 다윈의학을 만들고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책을 썼다. 하버드대 스티븐 어스태드(Austad, Steven N.) 박사는 인간의 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인간은 왜 늙는가?」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으로 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있다.
최 원장은 “이들은 조만간 인간이 150살까지 살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조만간 노화의 비밀을 풀게 되면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산 사람은 120세다. 그렇지만 2050년에는 150세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며, 그 사람은 지금 어딘가 유치원에서 놀고 있는 여자아이일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인생, ‘번식기’와 ‘번식후기’로 나눠
공자는 논어에서 인생을 40세(불혹), 50세(지천명), 60세(이순), 70세(종심) 등으로 나눴다.
피터 레슬렛(Peter Leslett)은 제1시기(의존), 제2시기(독립), 제3시기(성장, 성취), 제4시기(의존) 등으로 구분했다. 이 구분법이 많은 학자들이 따르는 방법이다.
윌리암 새들러라는 학자도 제1연령기(배움과 성장의 시대), 제2연령기(사회구성원 가정을 이루는 시기), 제3연령기(자기실현의 시기), 제4연령기(노화와 죽음의 시기) 등으로 구분했다. 힌두교에서는 인생을 100년으로 보고 이를 25년씩으로 나눠 아슈라미1(학습기), 아슈라미2(가정생활기), 아슈라미3(은둔기), 아슈라미4(순례기)로 구분한다.
최재천 원장은 “나는 생물학자이기 때문에 생물의 삶을 기준으로 ‘번식기’와 ‘번식 후기’ 등 2개의 시기로 나눴다”면서, “‘번식기’는 ‘제1인생(Green Age)’에 해당하고 ‘번식후기’는 ‘제2인생(Golden Age)’”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식을 기르는 시기’와 ‘자식을 떠나보낸 이후의 시기’라고 부연했다.
자식을 떠나보내기 전에 우리(부모)의 삶을 치열하다. 자식을 잘 먹이기 위해 남의 것을 탐내기도 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식을 키워내고 나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예전에는 이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잉여인생으로 잠깐 살다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자식 키우는 시기만큼의 시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150세를 산다면 그 두 배를 더 살아야 한다. 120세까지 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넘기면 150년, 200년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것이라고 최 원장은 말한다.
“더 이상 자식에게 미안할 필요없다”
시니어 세대는 그동안 제1인생만 열심히 살아왔다. 제2인생이 길어지면 그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인생을 두 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노인 자살률 1위이다. 빈곤율도 1위다.
최재천 원장은 “시니어 세대는 자식들에게 다 주고, 자식 기르는데 기력을 다 써서 기운도 없다보니 자식에게 얹혀사는 것 같고, 그래서 자식 보기 미안해 한다”면서 “왜 미안해야 하는가? 더 이상 체념의 미학, 체면의 미학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이어서 “이만큼 살았으면 이제 빨리 가야지, 스스로 자기 학대를 하면서 제2인생을 스스로 접으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이상희 교수는 「인류의 기원」이란 책에서 5만년 전에 인류의 화석과 네안데스탈인, 침팬지의 화석을 비교해 보니 네안데스탈인과 침팬지의 화석에서 나타나지 않은 노화의 흔적이 인류, 호모사피엔스 화석에서 나타나 있다고 발표했다. 고령화, 노화는 현생 인류에게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이미 5만년 전부터, 진화의 초기부터 고령화가 진행돼 왔다는 얘기다. 왜 인간은 고령화하는 쪽으로 진화했을까?
인류와 유전자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암컷이 죽을 때까지 자기자식만 키운다. 남의 자식 돌볼 겨를이 없다. 그런데 인간은 어느 순간 번식을 멈추고 딸의 자식을 키워준다. 할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동물세계에서는 할머니가 없다. 인간 세계에만 존재한다. 할머니가 아이를 봐 주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 많다. 문명을 만들고 만물의 영장이 됐다.
최 원장은 “번식 후기가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성공할 수 있었다”면서, “절대로 자식들에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