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물론, 제품포장지와 설명서, 심지어 주택에 이르기까지 고령자가 사용하기 편한 설계와 디자인이 실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관심과 배려가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지요. 고령자가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과 설계는 전 세계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과 ‘배리어프리’라는 개념이 적용됩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이나 사용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말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문답식으로 알아봅니다.
Q.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A.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나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복지선진국이 많은 북유럽에서 시작됐고, 200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에도 소개됐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범용 디자인’이라고도 불린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우리말로 보편적 디자인 또는 보편설계 정도로 해석된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따른 도구나 시설, 설비는 장애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것이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구나 시설, 설비를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공공교통기관 등의 손잡이, 일용품 등이나 서비스, 또 주택이나 도로의 설계 등 넓은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은, 물이 끓으면 소리 나는 주전자다.
Q.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준은?
A.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 기준은 ‘누구나 사용하기 편한 것’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어느 누구나 불안감,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공평하게 사용가능한가, 직감적으로 사용방법을 간단히 알 수 있도록 간결한가, 정보구조가 간단한가, 사고를 방지하고 잘못된 명령에도 원래 상태로 쉽게 복귀가 가능한가, 무의미한 반복동작이나, 무리한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런 자세로 사용가능한가, 이동이나 수납이 용이하고, 다양한 신체조건의 사용자가 사용가능한가, 등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이러한 기준은 특히,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장애인들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복지용구나 복지시설에서 강조된다.
Q. 우리나라에서 적용 사례는?
A. 우리나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가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주거약자지원법’이다.
주거약자법은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의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거약자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이다. 이 법은 주거약자로,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보훈대상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시의회가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조례안’을 제정했다. 경기도, 전북도, 제주도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가 유니버설디자인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마련하는 한편, 유니버설디자인 기본 계획과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공공시설을 건립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적극 반영하고 있다.
Q. 주거약자지원법에 적용된 유니버설 디자인은 무엇인가?
A. 주거약자지원법 시행령은 주거약자용 주택과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기준을 매우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출입문의 경우 너비 85cm 이상될 것, 출입문 옆에는 60cm 이상의 여유 공간을 확보할 것, 출입문 손잡이는 레버형 손잡이 등 잡기 쉽고 조작이 쉬운 것으로 설치할 것 등이다.
특히, 어르신들의 낙상 방지를 위해 바닥은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는 마감재를 사용할 것, 바닥 높낮이 차는 원칙적으로 없도록 평평하게 할 것 등이다. 거실, 욕실, 침실에 경비실이나 관리실과 연결할 수 있는 비상연락장치를 설치해야 하고, 현관 출입구 옆면에 바닥면에서 75~85cm 사이 높이에 수직·수평 손잡이를 설치할 것도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거실에서 바깥을 볼 수 있는 비디오폰 설치 위치, 조명 밝기를 비롯해서 부엌, 침실, 욕실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게 규정돼 있다.
Q. 주거약자지원법의 유니버설 디자인 위반하면 제재 받나?
A. 현행 주거약자지원법은 대부분 주거약자를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에만 이 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단독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일반주택에는 적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참고로, 임대주택의 경우 임차인 자격이나 선정방법과 같은 임대 조건, 임대인이 개조비용을 지원받아 주거약자용 주택으로 개조한 경우,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편의시설 구비사항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양벌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Q. 깨알 같은 의약품 포장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도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대상인가?
A. 그렇다. 건강과 밀접한 의약품에 대해서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될 수 있다.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의약품 포장의 설명서다. 너무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놓아 돋보기를 통해서도 어느 질환에 사용하는 의약품인지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많다.
부산대 간호대 연구팀이 최근 내놓은 연구결과, 식약처가 고시한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의약품 포장에 많이 쓰이는 글자 크기를 기준, 20~30대 가독성은 80.4점(100점 만점)인 반면, 60대는 42.5점, 70대 6.7점으로 고령일수록 가독성이 제로(0)에 가까워지는 것으
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20~30대 인구는 전체 성인인구의 40%에 불과해, 60%의 성인, 특히 고령자일수록 의약품을 제대로 쓰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Q.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에서 의약품 포장지 개선 방안은?
A. 의약품의 경우 사용 질환이나 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남용할 경우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적용한다면, 20~30대는 물론, 70~80대도 어려움 없이 사용 질환이나 용법, 주의사항을 어렵지 않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식약처가 2013년,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고시를 통해 글씨도 키우고 쉬운 용어를 쓰도록 권고했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규정상 ‘약품 용기·포장 글자 크기 6포인트 이상’으로 규정했지만, 약품 겉포장에 써야 할 기재 사항이 너무 많아 하한선인 6포인트, 쌀알 한 톨보다 작은 글자 크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식약처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필요한 모든 정보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 의약품 관리와 통제에 수월하겠지만, 모든 국민이 손쉽게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설계나 디자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강조되는 이유다.
Q. 유니버설 디자인, 확대될 것인가?
A. 최근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문구류, 주방용품, 그리고 각종 생활용품이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90% 이상이 일본제품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디자인 등록을 통해 특허로 보호받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훨씬 빨리 진행된 일본이 석권하고 있다.
일본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요양병원은 회복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적의 환경이 노인환자의 자립과 치유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아직 유니버설 디자인과 관련된 통계도 없다. 하지만 잠재적 수요는 일본 못지않다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법률적 강제를 통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니버설 디자인 인증제도를 도입하면, 고령자의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돼 장기적으로 복지비용이 절감될 뿐만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의 산업화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