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100세 인간)란 말 들어보셨는지요. 유엔이 지난 2009년 내놓은 ‘세계인구 고령화’란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는데요,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인류의 100세 장수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50대 중반, 아니 60세에 퇴직하더라도 길게는 40~50년의 여생과 직면하게 됩니다. 나머지 절반의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래서 최근 국내에서 ‘생애설계’라는, 다소 낯선 교육과정이 등장했습니다. 생애설계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국내서 현재 시행되는 생애설계 교육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봅니다.
[싣는 순서]
(상) 생애설계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하) 바람직한 생애설계 교육 모델은?
“생애 발달단계별 교육 체계 만들어야”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연구위원은 6월 1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생애설계협회 주관으로 열린 ‘100세 시대 생애설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심포지엄에서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한 판단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의 문제’로 생애설계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희 연구위원은 생애설계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애과정 관점에서 한 개인이 생애기간 동안 경험하는 역할 변화와 그 역할의 다양성에 주목했다. 생애기간 동안 역할 상실과 획득, 지속과 단절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발달이 이뤄지므로, 단순한 노후설계가 아니라 전반적인 생애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쉽게 설명하면, 생애단계를 영아기, 유아기, 학령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등으로 구분했을 때 각 단계에서 개인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 발달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 앞 단계가 제대로 이뤄져야 그 다음 단계도 성공하는 만큼 모든 생애단계가 중요하고, 이 때문에 생애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압축적 고령화 탓 생애설계 부각
정경희 연구위원은 “최근 생애설계가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급증하는 압축적인 고령화 때문”이라며 “평균수명 증가로 생애주기가 길어지면서 중노년기 삶의 질, 건강, 소득보장, 노후설계 및 활동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준비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우선, 개인적 관점에서 국민의 노후준비 총점수는 100점 만점에 58.8점에 불과하다. 건강(75점), 대인관계(61.1점) 영역의 점수는 높은 편이지만 노후소득보장 미흡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재무와 여가 영역의 노후준비는 40점대에 머물고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는 2005년 이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기초연금 및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등 소득과 의료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공공지출을 통해 고령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노인의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경희 연구위원은 “평균수명 증가는 노년기를 어떻게든 버티면 되는 단기가의 잉여기간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며 생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삶의 중요한 단계로 변화시켰다”며 “특히 베이비붐세대의 노년기 진입을 앞두고 생애설계의 사회적 필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생애단계별 성공적 과업수행 가능
정경희 연구위원이 제시한 생애설계의 핵심 교육 분야는 △재무 △건강 △직업 및 경력 △가족 및 사회적 관계 △학습 및 자기개발 △사회참여 및 봉사활동 △주거 △여가, 취미 및 영적활동 등 8개 영역이다.
구체적인 생애설계 교육내용은 첫째,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것, 둘째, 자신의 존재에 대한 대외 명분을 구체화하는 것, 셋째, 자신의 인생 목적과 수단 및 이와 관련된 직업적 활동을 체계화 하는 것, 넷째, 장기적 안목에서 인생 전체를 바라보고, 인생과정에 대한 통찰력과 통제력을 말할 수 있게 하는 합리적 계획, 다섯째, 인생 전체에 대한 시간관리, 여섯째,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 일곱째, 자신의 정체감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것, 여덟째,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생애과정에 대한 의도적인 계획 등이다.
정경희 연구위원은 “이와 같은 생애설계를 통해 생애 전반의 체계적인 시간관리가 가능하고, 발달단계별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으며, 길어진 중년기 이후 생애과정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된다”며 “또한, 성공적․활동적인 노화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부담을 감소시키고 생애과정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시장 역할분담 매우 중요
그렇다면 효과적인 생애설계 모델 구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정경희 연구위원은 “누구나 노년기를 겪게 되는 데다, 가족구성원의 생애주기는 청소년기와 중년기, 노년기를 모두 경험하기 때문에 가족 단위에서도 노인복지는 가족구성원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정책적 결정에 있어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한 판단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국가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 생애설계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관심을 높이는 한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시장은 제도의 수용과 재원부담을 통해 서비스를 개발, 공급하는 등 국가와 시장의 역할분담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군대의 집체 교육이나 혼인 및 출생신고, 생애주기별 건강검진 등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 생애설계를 접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무교육 치우친 생애설계 바로잡아야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생애설계 교육은 고령화사회의 인프라라는 인식을 갖고 주택과 인적자본을 포함한 생애자산배분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일과 시간, 관계의 비재무적 교육 비중도 확대해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소장은 금융전문가답게 재무적․비재무적 교육으로 나눠 생애설계의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생애설계를 ‘고령화사회의 인프라’로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2010~2040년 사이 30년 동안 60세 이상 인구가 1260만명이나 증가하기 때문에 선제적인 대응으로 생애설계 교육이 필요하지만, 민간에 맡길 경우 과소 또는 편중되게 공급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교육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소장은 “현재의 생애설계는 주로 금융지식과 퇴직연금제도, 노후 재정설계, 목적자금 마련 등 재무적인 내용에 치우쳐 있다”며 “비재무적 내용의 커리큘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경우 기업 근로자에 대한 복지를 시작으로 교육이 형성됐고, 1980년대 이후 퇴직연금제도로 발전하면서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으로 변모했다. 이후 1990년대 퇴직연금시장이 성장하고 베이비부머가 퇴직하면서 은퇴․투자․재무 교육으로 한층 발전한 뒤, 수명증가로 대상 연령층이 확대되고 교육내용도 비재무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 생애설계교육이 출현했다. 미국과 비교한다면, 현재 국내에 도입된 생애설계서비스는 이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마지막 단계만 압축적으로 시행하는 셈이다.
재무․비재무 혼합 교육 제시
김경록 소장이 제시한 교육모델은 재무와 비재무 영역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이다.
재무영역과 관련, 김경록 소장은 “기대수명 연장과 함께 나타난 초저금리 사회에서는 자산을 어떻게 증식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투자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며 “물가연동된 평생소득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자산관리와 주택, 인적자본을 포함한 생애자산배분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테면, 평균수명 80세 및 금리 5% 시대에는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14.4년이 걸리지만, 평균수명 90세 및 금리 1% 시대에는 7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매월 100만원의 이자를 받기 위한 자산도 전자의 경우 2억4000만원에 불과하지만, 후자의 조건에서는 12억원이 필요하다.
김경록 소장은 “초저금리․장수시대의 퇴직연금시장은 DC(확정기여)형과 IRP(개인형 퇴직연금)가 성장하기 때문에 자기책임이 강화되는 시대가 된다”며 “이에 따라 어떻게(how) 투자할 것인지 교육하는 투자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선 재무교육에서는 ‘평생소득 창출’이란 목적 아래 △투자 △인출 △생애자산배분 등 세 가지 축의 재무교육을 강화해 초저금리 사회에서 평생소득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생애설계 적극 동참해야
비재무영역에서는 전통적 가족제도의 해체, 정보화 사회의 급진전이라는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한편, 일과 시간, 관계의 자원배분을 위한 교육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돈이 많아도 가족으로부터 고립돼 있다면 비재무적으로 파산한 상태”라며, “재취업 교육과 정보제공 등 취업관련 인프라를 강화하고 NPO시장을 활성화하는 한편, 황혼이혼과 성인자녀의 리스크 등 가족관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록 소장은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를 예로 들며, 일과 정신, 세상과 돈, 시간, 성을 주제로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 알려주는 생애설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 및 비재무영역이 어우러진 교육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 민간이 분업체제를 형성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특히 민간영역에서는 기업이 생애설계 교육의 가장 효율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기업이 실질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2015년 6월 10일 한국생애설계협회가 주관한 ‘100세 시대 생애설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심포지엄 발표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