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미국의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1996년 출간된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기술, 효과적으로 노동을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의 형태로 나타나는 생산성의 극적인 진보가 인간의 노동력을 점차적으로 대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노동의 종말」이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경고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로봇과 정보통신기술이 극대화되면서 사람이 할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술의 발전, 사람의 노동과 관련해 축복일까요, 아니면 재앙일까요.
현 직업 3분의1, 로봇이 대체
최근 미국 경제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정보기술(IT) 컨설팅업체 ‘가트너’는 “현재 직업의 3분의 1은 2025년까지 소프트웨어와 로봇, 스마트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학자인 워싱턴대 라이언 칼로 교수(법학)는 “로봇은 현재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업종에 주로 투입되고 있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로봇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직종은 블루칼라에 머물지 않고, 조만간 경제·스포츠 전문기자, 온라인 마케터, 외과의사, 마취전문의, 금융분석가 등 전문직으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봇’이란 단어 자체가 본래 ‘노동’이란 뜻을 갖고 있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 ‘robota’(노동)다.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1921년 「로숨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이란 작품에서 세계 최초로 로봇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1920년대 이미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 차지한 로봇을 예견했다.
새 일자리 창출 가능 주장도
기계와 로봇이 사람의 직업을 대체하는 변화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기계시대의 시작」(Rise of the Machine) 저자인 마틴 포드(Martin Ford)는 기계가 발전한 미래는 ‘유토피아’라고 단언한다. 그는 미국 정보기술(IT) 잡지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들은 기계가 도맡고,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들을 하게 될 것”이란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또,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이 늘수록 사람의 일자리도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200년 전의 증기기관 발명이 ‘산업혁명’을 이끌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것처럼 로봇의 상용화가 ‘제2의 기계혁명’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칼로 교수도 “인간은 판단력과 창의적 생각, 인간끼리의 교감능력 등에서 로봇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로 로봇의 확산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학자, “대량해고 불가피”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유토피아의 반대인 ‘디스토피아’(dystopia), 즉 가장 부정적인 암흑의 세계를 우려한다. 무엇보다 최근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이 저숙련 노동자의 대량 해고를 불러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와 딜로이트가 공동으로 펴낸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일자리의 35%가 향후 20년 안에 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 주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로봇이 자산가들에게 돈을 벌어줄 것”이라며, “교육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걱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인간들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로봇들의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달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단순노동자 직접 타격 입을 것”
이코노미스트지에 의해 최근 10년 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선정된 타일러 코웬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 역시 “재능이 필요한 일을 기계가 도맡으면 재능이 없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뒤처질 것”이라며, 기계에 의해 형성되는 새로운 계급사회를 예견했다.
영국 런던에서 지난 3월 열린 ‘월드포스트 미래노동회의’에서 옥스퍼드 마틴스쿨 마이클 오스번 이사는 “미국 노동자의 47%가 20년 이내에 기술에 일자리를 뺏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가장 빨리 없어질 직업으로 지게차, 트럭, 농기계 운전수를 꼽으며 “노동력을 만들어 낼 기계를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돈을 벌고 나머지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직업을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봇에 의해 특별한 기술력이 없는 단순 노동자들의 미래가 가장 암울할 것이란 전망이다.
캘리포니아 경영대학원 라우라 티손 교수도 “전통적인 중산계층이 수행하는 일은 로봇에 의해 사라질 것”이라며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이 기계에 대체되지 않을지, 오래도록 맡을 수 있는 일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더했다.
새로운 기계파괴 운동 재현가능
1800년대 초 산업혁명 직후 영국에서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어난다. 산업혁명이 초래할 실업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때려 부수는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한 14명의 노동자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극약처방을 내놨지만 오히려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신문 「쾰른차이퉁」은 “증기기관 하나가 1000명을 실업자로 만들고, 모든 노동자에게 분배될 이윤을 한 사람 수중에 넘긴다. 증기기관이 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거지들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오랫동안 시대에 역행하는 일부 노동자들의 광기로 매도되기도 했지만, 그 의미가 재평가되면서 200년 만에 재현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신(新)러다이트’(Neo-Luddite) 운동이다.
2013년 12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오클랜드로 향하는 구글의 통근버스 2대가 주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에 가로막혔다. 구글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산업환경을 바꿔 일자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중상위계층을 밀집시켜 주택 매매가와 월세를 치솟게 했다는 분노 때문이었다. 지난해 1월에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란을 빚다 퇴출된 ‘우버’ 리무진 자동차가 택시기사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네오 러다이트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컴퓨터·텔레비전·전자제품 등 현대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첨단문명을 거부한 채 외진 곳으로 은둔하기도 한다.
로봇시대 대응한 제도 고민해야
대부분의 학자와 기술자들이 새로운 기술개발에만 몰두하는 반면, 로봇에 의한 미래 인류의 암울한 자화상을 걱정하는 양심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로봇 권위자인 영국 브리스틀대 앨런 윈필드(Alan Winfield) 교수는 로봇과 자동화에 따른 실업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자동화세’(Automation Tax)를 부과하자고 제안한다.
윈필드 교수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로봇공학과 자동화의 혜택은 모든 이들에게 공유돼야 한다”면서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 앨런 윈필드 교수는 브리스틀대 로봇공학연구소에서 ‘도덕적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윈필드 교수는 “만일 로봇에 의해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가족들은 생계 곤란에 빠질 수 있다”면서 “문제는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저숙련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퇴직금이 아주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재교육을 받을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업은 자동화가 초래할 해고에 대해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윈필드 교수는 “자동화로 1차적 피해를 입게 되는 노동자를 위해 별도의 지원금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며 “로보틱스와 자동화로 빚어진 부를 공유하는 최고의 방식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를 위해 ‘자동화세’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