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이르는 사람들은 일정한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니어의 경우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주거나 주변을 정리하는 특징을 보였다. 사진=픽사베이

자살한 사람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연령대별로 공통된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65세 이상은 소중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행동 변화를 주로 보였고, 50~64세는 식사 상태나 이에 따른 체중 변화가 있었다. 35~49세는 인간관계 개선이나 대인기피 증상을 보였고, 34세 이하는 외모 관리에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냈다.

보건복지부가 중앙심리부검센터와 함께 2015~2019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자살사망자(566명)의 유족(683명)에 대한 심리 부검 면담을 시행, 그 결과를 11월 27일 오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분석결과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및 경찰 등을 통해 의뢰됐거나, 유족이 면담을 신청한 자살사망자들에 대한 사후 심리부검을 통해 이뤄졌다. 특히, 생애주기 중 경험한 스트레스 요인과 연령대별 자살 경로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노년층&40~50대 자살 줄고, 10~30대 늘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노년층과 40~50대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 특징을 보였다. 그런데 최근 5년간 노년층 자살은 크게 줄고, 10·20·30대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령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15년 70대가 62.5명에서 2019년 46.2명으로 크게 줄었다. 50대도 34.3명에서 33.3명으로 조금 줄었다. 반면, 10대는 4.2명→5.9명, 20대는 16.4명→19.2명으로 각각 늘어났다.

이번에 복지부가 시행한 심리 부검 대상은 자살사망자 566명 가운데 남성 384명(67.8%), 여성은 182명(32.2%)이었고, 연령별로는 30~50대 비율(67.1%)이 가장 높았다. 사망 당시 혼자 거주하고 있던 자살사망자는 96명(17.0%)으로, 이 가운데 36명(37.5%)이 34세 이하 청년층이었다. 34세 이하 자살사망자(160명) 5명 중 1명(22.5%)은 혼자 살았다.

심리 부검 대상자 3명 중 1명(35.2%)은 사망 전 1회 이상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별로는 여성 자살사망자의 45.6%, 남성 자살사망자의 30.2%가 1회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 특히, 심리 부검 대상 10명 중 9명(566명 중 529명, 93.5%) 이상이 사망 전에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주변 정리, 수면 상태 변화 등 경고신호를 보였지만, 이를 주변인이 인지한 경우는 10명 중 2명(119명, 2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앞둔 사람은 경고신호를 보낸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모든 연령대에서 수면, 감정 상태 변화가 두드러졌고, 경고신호는 전반적으로 자살사망 3개월 이내 사망 시점에 근접해 관찰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주변을 정리한다’라는 행동으로 경고신호를 보내는 경우 10명 중 9명(91.2%)이 사망 3개월 이내에 그 같은 행동을 보였다. 사망자 절반 가량(47.8%)은 사망 전 1주일 이내에 이 같은 경고신호를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연령별로 보면, 65세 이상은 소중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행동 변화를 주로 보였다. 50~64세는 식사상태 및 체중 변화, 35~49세는 인간관계 개선이나 대인기피, 34세 이하는 외모 관리 무관심이나 신체적 불편감을 내비쳤다.

언어적으로 자살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살이나 살인, 죽음에 대한 말을 자주 했고, 신체적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자기비하적인 말을 많이 했다. 정서적으로는 죄책감, 무기력감, 과민함 등 감정상태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났고, 대인기피나 흥미 상실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행동에 있어서는 과식이나 소식, 그에 따른 체중 증가나 감소를 가장 많이 보였고, 불면이나 과다수면과 같은 수면상태변화, 통장이나 집안정리, 물건정리 등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불편한 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등 인간관계 개선을 시도했고, 외모관리에 무관심한 특징도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 대한 결정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살에 이르는 연령별 특징도 있다

자살에 이르는 경로는 연령별, 성별로 차이를 보였다. 70대 이상은 신체 질환 속에 숨겨진 우울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신체 질환에 따른 고통과 경제적 부담, 가족의 관심과 정서적 지지 감소로 인한 고립감과 외로움이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는 주로 부부관계와 관련한 문제가 자살의 원인이었다. 여성의 경우 배우자의 외도나 부부불화를 겪은 이후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가족이나 지인과 관계가 단절되면서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은 부부 문제 관련 스트레스와 더불어 가족, 직업, 경제, 건강 관련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심리적 문제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50대 여성은 가족 문제와 우울장애 연관성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갱년기 증상과 맞물려 정신건강이 악화하면서 가족 간 갈등이나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50대 남성의 경우는 학대나 가족 자살과 같은 성장기 외상과 술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40대 남성은 사업 부진이나 주식 실패와 같은 경제적 문제가 선행되고, 이후 부채 발생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된 후 대인관계 갈등, 직업적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양상을 보였다. 여성은 우울장애 등 정신건강문제 발생 이후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며 심리·정서적 지지기반이 취약해지고, 경제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정신건강문제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충동, 우울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신건강전문가의 구조화된 면담과 정신과 치료 이력 확인 등을 통해 자살사망자가 생전에 갖고 있던 정신질환 문제를 추정한 결과, 우울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전체 심리 부검 대상자 10명 중 9명(88.9%)이 정신건강 관련 문제를 갖고 있었고, 이 가운데 우울장애가 64.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으로 치료나 상담을 받았거나(51.8%) 정신과 약물을 복용(46.6%)한 경우는 자살사망자 2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이밖에 가족관계(63.3%), 경제적 문제(59.4%), 직업(58.5%) 등과 관련해 자살사망자 1명당 평균 3.8개의 생애 스트레스 사건이 사망 직전까지 순차적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이 당하는 또 다른 피해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심리 부검 분석결과, 사망자가 생존 당시 가족 중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사망한 구성원이 있는 비율은 45.8%로 나타났다. 정신건강 문제를 보이거나, 이런 문제로 치료·상담을 받은 가족이 있었던 자살사망자도 68.2%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 중 자살한 사람이 있는 경우 살아남은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심리 부검 면담에 참여한 유족 대부분이 사별 이후 일상생활에 변화를 경험(93.3%)했는데, 정서상의 변화(93.4%), 대인관계 변화(70.4%), 행동 변화(69.6%) 순으로 나타났다. 중증도 이상의 우울 상태인 유족은 62.2%, 음주 문제 가능성이 있는 유족 비율도 38.4%로 확인됐다.

다행히, 유족 대부분이 사별 후 관련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았다(93.5%). 도움의 종류는 심리적 지원, 유족 지원금 등 경제적 지원, 식료품이나 생필품 등 물질적 지원 등이었다. 반면, 유족 10명 중 7명은 자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유족을 향한 비난을 우려해 자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