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코로나로 인해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대받는 노인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요양시설 면회가 금지되거나 축소되면서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을 상대로 한 학대가 또 다른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감염 위험은 물론, 복지서비스 중단에 따른 외로움과 우울감에 학대에 이르기까지 노년층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국내에서 코로나 의심환자가 처음 발견된 이후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 가운데 실제 학대 행위로 판정된 건수는 전년보다 무려 19.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학대에서 정서적 학대로 전환
전국 34곳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지난해 접수한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총 1만6973건으로 2019년(1만6071건) 대비 5.6% 증가했다. 이 가운데 학대 사례로 판정된 건수는 6259건으로, 이는 2019년의 5243건보다 19.4% 늘어났다.
과거에는 신체적 학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학대유형 별로, 정서적 학대(42.7%)가 가장 많았고, 이어 신체적 학대(40.0%), 방임(7.8%), 경제적 학대(4.4%) 순이었다. 발생 장소는 가정이 무려 88.0%에 달했고, 생활시설(8.3%), 이용시설(1.5%), 병원(0.6%) 순으로 나타났다.
학대행위자는 여전히 아들(34.2%)과 배우자(31.7%)가 가장 많았고, 기관(13.0%), 딸(8.8%) 순이었다. 가해자 중에 아들이 많은 만큼 가구형태는 자녀와 동거(32.9%)하는 비율이 높았고, 노인부부(32.7%), 노인독거(17.1%) 순이었다.
코로나 상황, 노인학대에도 영향
전문가들은 노인학대 증가 원인에 대해 코로나19 상황을 꼽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울장애, 스트레스와 가족 갈등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 내 학대 사례는 전년 대비 23.7% 증가했는데, 이는 코로나19로 가정 내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갈등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생활시설에서 발생한 학대도 전년 대비 7.2% 증가했는데, 이는 시설 출입 제한으로 노인이 외부나 가족과 격리된 데다, 돌봄 종사자의 과도한 업무 등으로 노인학대 경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복지부와 여성가족부로부터 입수한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1월부터 8월까지 노인보호전문기관 학대 상담 건수는 전년 대비 36.6%나 늘었고, 사례판정 건수도 15.9% 증가했다.
특히, 거리두기가 강화될 때마다 상담건수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3월 말부터 4월까지 수도권에 4단계 였을 때는 노인학대 상담건수가 전년 대비 20.6% 늘었지만, 4단계 이후엔 현재까지 56%나 늘었다.
반면,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복지시설 학대는 29.8%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로 외부 출입 제한과 휴관으로 이용이 줄면서 복지시설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도 함께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요양시설 면회 끊기면서 학대 급증
면회가 자유롭지 못한 노인요양시설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는 끔찍한 수준이다.
실제로 인천지역의 경우 노인시설 내 노인학대가 전년 대비 무려 25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인천지역 노인시설 내 학대사례는 105건으로 지난 2019년(30건)보다 250% 늘었다.
지난 3월, 인천 논현경찰서에는 지역 내 한 요양 시설의 시설장이 입소 노인 A씨(82)를 지하실로 데려가 폭행하는 등 학대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다.
지난 6월, 제주의 한 요양원에서도 심각한 학대 사례가 발생했다. 파킨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70대 여성이 세 차례나 낙상사고를 당해 왼쪽 눈과 광대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이 여성은 입소한 지 9개월 만에 체중이 7kg 가량 줄었고, 저녁 시간에는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담고 국물까지 부어 잡탕처럼 배식한 사정도 CCTV에 찍혔다. 특히 이 요양원은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나 노인학대 혐의로 과태료를 물고 원장까지 교체한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이었다.
인권위, “코로나19, 노인 취약성 선명하게 드러내”
국가인권위원회도 코로나19 위협이 노인이 가진 취약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가 노인의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최근 특별 성명을 통해 “노인은 만성질환이 있기 때문에 감염에 의한 치명률이 높고, 만성질환이 흔한 노인은 지속적인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취약성 때문에 요양원 등 집단시설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염 위험이 더 높다”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특히, “국내 요양기관에서도 집단감염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외국의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이 방치돼 사망하기도 했다”면서, “만성질환이 흔한 노인들은 주기적인 약 처방과 일상적인 활동보조 등이 필요하지만, 재가노인에 대한 방문의료와 방문요양 등 돌봄공백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고령화는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사회적 재난에 가장 취약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지금 상황은 우리들로 하여금 노인인권 문제의 시급성을 다시금 깨닫고 이에 집중하는 것과 노인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중요성을 확인시켜 줬다”고 강조했다.
정부, 노인학대신고앱 ‘나비새김’ 활용 당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노인학대 현황을 반영해 노인학대를 조기발견하고, 피해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노인학대 신고앱 ‘나비새김(노인지킴이)’을 배포하고 홍보해 노인학대를 조기 발견하고 신고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나비새김(노인지킴이)’은 직접증거 확보를 쉽게 하고, 신고자의 익명성을 보장해 노인학대가 발생한 경우 노인학대 신고의무자 직군 등에서 보다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또한, 노인학대 재발 방지를 위해 노인학대 행위자나 학대 피해노인의 가족 등에 대한 상담·교육가 같은 서비스 제공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개정된 노인복지법 시행에 따라, 노인보호전문기관은 학대행위자에게 상담·교육·심리적 치료 등을 제공하고, 노인학대 사례가 종료된 이후에도 학대 재발 여부 확인을 비롯해 필요한 경우 피해노인, 보호자·가족에게 상담·교육 등의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노인학대 발견·보호·예방 등을 전담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노인학대 예방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기로 했다.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을 올해 34곳에서 37곳으로 확충하고 사후관리 업무 강화를 위해 전담 인력 배치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경제적 학대 예방을 위한 생활경제지킴이파견 시범 사업을 확대하고, 금융권과 연계해 경제적 학대 공동 대응을 위한 협력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