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과 수출을 이끌었던 포항제철.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을 시작으로 험난한 앞길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포스코

[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국내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지난달 도입 일정을 공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하고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우리 기업에 불합리한 규제를 도입하지 않도록 통상 규범에 기초해 대응해 나가는 한편, 제도 시행으로 영향을 받는 업종을 대상으로는 세제·금융 지원, 탄소중립 연구개발(R&D)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연내에 마련할 방침이다.

EU, 탄소국경세 도입 본격화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이하 집행위)는 2050년 탄소중립, 2030년 탄소배출 55%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일련의 조치를 ‘Fit for 55’라는 표제 하에 발표했다. 에너지, 수송, 건축물, 토지이용 등 분야에서 새로 설정한 온실가스 절감 목표를 법제화하는 일련의 입법안이 이 발표에 포함된다.

이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의 구제적인 실행방안이다. EU의 배출권거래제(이하 EU ETS)가 역내 기업에만 적용될 경우 가격경쟁력 악화를 우려한 기업들이 환경 기준이 느슨한 역외로 생산설비를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EU에게 경제적 손실을 안길 뿐 아니라 탄소감축이라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EU는 이른바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EU ETS와 연계해 역외 기업에 환경부담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번에 제시한 법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2023년부터 EU로 수입되는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부문 최종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 신고가 의무화되며 2026년부터 실제로 비용이 부과된다.

탄소국경세, 한국 수출에 막대한 영향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이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 다섯 가지 부문의 EU 대상 수출기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벌써부터 EU가 환경을 앞세워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개발도상국을 위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친환경 전환을 일찌감치 시작한 EU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철강업계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탄소국경세 도입 시 1차 철강 산업의 대 EU 수출이 약 11.7% 감소할 것이라 추정하기도 했다.

‘Fit for 55’는 CBAM 이외에도 여러 조치들을 담고 있다.

우선, EU 역내의 배출권거래제가 한층 더 강화된다. 항공부문에 주어지던 무상할당이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폐지되며 기존 적용대상이 아니던 해운, 육상운송, 건축물 분야로 EU ETS가 확대된다.

내연기관 관련 규제도 강화돼 2035년 이후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승용차·승합차의 생산을 전면 금지한다. 에너지 관련 지침을 제정해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에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삼림 등 천연 탄소흡수원 확대를 통한 온실가스 흡수 목표를 구체화했다. EU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역내 경제 구조를 바꿀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노력을 압박할 계획이다.

탄소 국경세는 어떻게 매기나?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EU는 2023년 1월 1일부터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등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탄소국경세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별도로 부과한다. 2023년부터 3년 동안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보고만 받고, 2026년부터는 실제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탄소국경세 징수 대상은 EU 내 수입업자다. 탄소국경세 적용 품목 수입업자는 사전에 연간 수입량에 해당하는 양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인증서(certificate)’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1개는 탄소 1톤에 해당하며, 품목별 탄소량은 생산 과정에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으로 계산한다.

이를테면, 한국산 철강 1톤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2톤일 경우, 이를 수입하는 EU 내 수입업자는 철강 1톤당 인증서 2개가 필요하다. 수입업자가 1년 동안 철강 100톤을 수입한다면 인증서 200개를 구매해야 한다.

대외경제연구원은 “인증서 가격은 EU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유럽의 탄소배출권과 연동돼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면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의 탄소 배출 비용도 똑같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탄소국경세 도입이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은?

탄소국경세는 무역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인 만큼 수출 의존율이 높은 우리나라에 적지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7월 29일 발표한 보고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수출은 연간 1.1%(약 71억 달러, 한화 8조1224억)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U와 미국에 대한 수출이 각각 0.5%(약 32억 달러, 한화 3조6608억원), 0.6%(약 39억 달러, 한화 4조4616억원) 줄어든다. 이번 분석은 EU와 미국 모두 수입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에 대해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중국 등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글로벌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EU의 CBAM 도입 후 국가별 탄소세 추징 가능 금액(2019년 기준)에 대한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는 약 150억 달러(한화 17조1600억원), 중국은 약 100억 달러(11조4400억원), 터키는 약 90억 달러(10조2960억원)의 탄소세를 EU에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EU는 탄소국경세 제도를 발표하면서 2035년 EU에서 내연기관 차량 판매도 금지했다. 가솔린이나 디젤 등 내연기관 차량이 내뿜는 탄소를 100%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업계는 유럽,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를 전면화하겠다는 계획을 앞당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 탄소배출권 거래제 강조…“탄소국경세 적용 제외국 인정해야”

정부도 탄소국경세 도입에 따른 대응 마련에 고심 중이다. 정부는 그동안 EU 및 주요 관계국들과 양자 협의 등을 진행하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합치하도록 설계·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 이 제도가 불필요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가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7월 6일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나 우리나라가 탄소 배출권 정책을 시행하는 만큼 탄소국경세 적용 제외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우리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에 따른 환경부담금을 내고 있는데, 유럽의 탄소국경세까지 더해지는 사실상의 이중과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가장 큰 영향이 예상되는 철강 분야에 대해서는 정책연구용역을 거쳐 상세한 영향 분석과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한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린철강위원회 등 산·관·학 협의 채널을 활용해 소통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민관이 합심해 철저히 대응해 나가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세계적 추세인 탄소중립이 우리 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업계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해달라”고 말했다.

자료=정책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