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22만여㎢ 면적의 작은 땅 위에 그어진 선. 서해안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248㎞의 군사분계선(휴전선)이 있다. 이 선의 중심에서 남북으로 각각 2㎞를 지정해 4㎞의 공간을 두고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를 금지하도록 한 구역이 존재한다. 바로 비무장지대(DMZ)다. 6·25전쟁의 격전지였으나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직접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간격을 두도록 한 완충지대다.
무려 70여년간 사사로운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미지의 땅으로 보존된 DMZ. 첨예한 군사적 대립으로 긴장감만이 감돌던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오랜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로도 불린다.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지니고 있는 DMZ가 새로운 미래를 가능케하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다.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구글과 함께 특별한 온라인 전시를 마련했다. 6·25전쟁의 역사와 DMZ의 아름다운 자연 등 60여 개 분야 5000여 점의 자료를 소개하는 <한국의 비무장지대> 온라인 전시물을 지난 22일 전 세계에 공개·헌정한 것이다.
이날 열린 헌정식에는 박민식 보훈처장,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을 비롯해 UN 참전국 외교사절, 6·25참전유공자 회장 및 참전유공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박 처장은 헌정식 축사에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놀라운 70년, 성공의 역사를 전세계에 알리고 우리 국민들과 22개 참전국이 함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기념사업을 마련했다”며 “구글 DMZ 아카이브를 통해 전 세계 많은 분들이 6·25전쟁의 역사 그리고 DMZ 내 자연을 체험하면서 올해 70주년의 의미와 참전영웅들의 숭고한 인류애를 뜨겁게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구글의 비영리 국제 온라인 전시 거점인 ‘구글 아트 앤 컬처’가 22일 공개한 <한국의 비무장지대> 온라인 전시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보고이자 한국의 과거·현재·미래를 투영하는 문화적 자산인 DMZ를 주제로 한다.
구글은 지난 3년여간 전쟁기념관, 유엔평화기념관, 비무장지대 박물관, 임시수도기념관, 국립생태원, 국립수목원 비무장지대 자생식물원, 낙동강생물자원관 등 10여개 기관과 협력해 제작한 60여 개 분야 5000여 점의 자료를 ‘구글 아트 앤 컬처’에 담았다.
역사, 자연, 예술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6·25전쟁과 이를 둘러싼 사건, 인물·장소, 접경 지역의 자연, DMZ에 대한 예술적 탐구 등을 기한 없이 살펴볼 수 있다.
신유진 전쟁기념관 아카이브센터 팀장은 ‘역사’ 컬렉션에 대해 “전쟁기념관도 구글 아트 앤 컬처와 마찬가지로 2017년부터 보유한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아카이브를 통해 전세계와 공유하고자 아카이브센터에 대한 중장기 전략을 세워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6·25전쟁이 딱딱한 주제이지만 사람과 사건, 그리고 전쟁기념관이 갖고 있는 컬렉션을 주제로 전 세계인들과 공유해야겠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역사’ 컬렉션에서는 임시수도 부산의 기록물 등 6·25전쟁이 남긴 기록과 유물을 최대 규모로 최초 공개함은 물론, 6·25전쟁의 주요 사건과 정전협정의 과정·교훈, 국립의료시설의 기반이 됐던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의료지원국의 헌신 등이 스토리로 구성돼 있다.
특히 6·25전쟁 중 기록한 병상일지를 전쟁기념관에 기증한 고 이학수 참전용사에 대한 이야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학수 참전용사의 후손 이병기 씨는 “부친께서는 한번 해병은 영원 해병이라고 자랑하셨던, 귀신 잡는 해병다움으로 전투에서 머리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당하셨다”며 “전쟁 당시 부친께서는 다리부상을 입은 동료를 업어 다리가 되고 동료대원은 부친의 눈이 되어 전장에서 필사적인 귀환을 하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실명 위기에 큰 부상을 입고 군 병원으로 이송된 이학수 참전용사는 가장 절망적이었던 시절 병상일기를 써내려가면서 고통의 시간을 받아들였다고 이 씨는 전했다. 병상일기에는 이학수 참전용사가 경험한 전쟁,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전우에 대한 기억, 통일정부수립을 염원하며 적었던 휴전협정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겨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 씨는 “정전 70주년 DMZ 사업은 6·25 전쟁 관련 정보와 같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원본의 질이 떨어지거나 소실될 우려가 있는 자료들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당시 상황에 맞게 온라인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다양한 활용성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사업들이 유엔 참전국 국민들도 인터넷을 통해 6·25전쟁에 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안내자이나 디지털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DMZ에서는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세계 멸종위기 동물이자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인 산양, 수달, 참수리, 재두루미와 한국에서만 서식하는 버들가지도 만나볼 수 있다. 군사적 대치로 인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맴도는 지역임에도 아름다운 생명의 땅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DMZ는 파충류, 조류, 식물 등 6100종 이상 동식물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한국의 멸종 위기종 267개 중 38%가 DMZ에 서식하고 있다고 구글은 설명했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자리한 국립수목원 DMZ 자생식물원의 연구원들은 이같은 이유로 DMZ 일대의 자연환경, 생태, 식물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장계선 국립수목원 DMZ 자생식물원 연구관은 ‘자연’ 컬렉션에 대해 “DMZ 자생식물원 연구원의 노트에 담긴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전시라 더욱 특별하다”면서 “DMZ에 어떤 식물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지, 보존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자 248㎞ 철책선을 동에서 서로 10번 이상 왕복하고 주변 접경지역에 있는 산지 70곳 이상을 오르내리면서 식물들을 기록하고 연구해온 일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DMZ의 자연은 전쟁 이후 사람들이 제한적으로 접근했던 곳이라 생태적으로 아주 가치가 높은 곳이고 또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면서 “DMZ는 전세계에서 한국에만 자라는 식물들이 살고 있는 세계 터전이자 희귀 식물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소중한 안식처”라고 설명했다.
경계없이 남과 북을 오가는 자유 영역의 식물들이 사는 DMZ는 무서운 땅이 아니라 재미있고 귀여운 이름의 꽃들이 피어나는 땅이기도 하다.
장 연구관은 “DMZ하면 흔히 분단의 상징, 전쟁의 고통, 무관심하고 황량한 땅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식물과 꽃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DMZ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며 “실제로 이 일을 하면서 어떤 관점의 변화를 느끼고 배우고 있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