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1주일에 1인당 2매씩 해당 요일에만 구매하는 공적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노년층에게는 여전히 마스크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마스크 판매 관련 데이터를 개방하면서 마스크 판매처와 재고량을 알려주는 다양한 앱들이 선보이고 있지만 사용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코로나19가 정보격차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공적 마스크 판매 5부제라는 초강수를 시행하고 있지만, 약국이 없는 농어촌지역에서는 또다른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한편, 마스크 구입을 놓고 어르신들끼리 폭력을 휘두르거나, 판매처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해프닝이 발생하고 있다.
3월 9일부터 5부제 판매, 1인당 2장씩 제한
3월 9일부터 마스크 판매 5부제가 시행되면서 약국을 비롯해 농협하나로마트, 우체국에서 일주일에 1인당 2장씩 마스크를 살 수 있다. 가격은 1장당 1500원. 같은 주에 약국이나 하나로마트, 우체국에서 2장을 모두 구입했다면, 다른 곳에 가더라도 추가로 살 수 없다.
이른바 ‘공적 마스크’ 대부분은 약국에서 유통되고, 하나로마트는 비수도권 지역, 우체국은 대구·청도와 읍·면 지역에서만 마스크를 공급한다.
출생연도별로 끝자리를 기준으로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다. 월요일은 출생연도 끝자리가 1·6, 화요일 2·7, 수요일 3·8, 목요일 4·9, 금요일 5·0이 기준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주중에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구입할 수 있다. 주민증, 운전면허증과 같은 본인의 공인 신분증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노인·어린이·장애인 등 대리구매 가능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를 위한 대리구매도 가능하다. 1940년생을 포함한 만80세 이상 노인과 2010년생을 포함한 만10세 이하 어린이, 장기요양 급여 수급자, 장애인은 대리구매가 가능하다.
대리구매는 주민등록부상 동거인(장애인은 대리인 가능)이 할 수 있다. 대리구매하는 사람이 대리구매 대상자의 공인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장기요양 급여 수급자는 장기요양 인정서, 장애인은 장애인등록증이나 장애인 복지카드를 지참해야 한다.
대리구매할 경우에도 대리구매 대상자의 출생연도 끝자리가 ‘5부제’ 기준에서 구입할 수 있는 요일에만 구매가 가능하다. 11세 이상 미성년자가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약국을 방문해 학생증과 여권 또는 주민등록등본을 제시해야 한다.
마스크 판매정보 공개, 마스크 관련 앱도 출시
정부가 3월 10일부터 건강보험시스템이 적용된 공적 마스크 판매처 정보와 판매량 정보를 민간에 배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스크 판매 데이터를 활용해 어느 곳에 마스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앱이 ‘마스크 알리미’다. 고려대 학생들이 마스크 판매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만들었다. 지역만 입력하면 판매처와 판매처별 재고수량을 알 수 있다.
마스크 알리미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비난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인근 판매처의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노년층의 정보격차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확인돼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마스크 판매 앱, 노인들에겐 무용지물
노인들에게는 인터넷 검색정보나 스마트폰 앱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앱 설치나 이용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구매하는 과정에서도 노년층의 정보소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인들은 가까운 판매처에서 줄을 서는 것이 훨씬 편하고 현실적이다. 실제로 5부제 도입 이전 약국 등 판매처 앞에서 판매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줄서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마스크 구매에서도 정보격차가 발행하고 있는 것. 정부가 마스크 판매 5부제를 도입한 이유 중 하나도 디지털 정보격차에 따른 마스크 구매 불균형이다.
마스크 5부제가 도입되기 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이나 스마트기기 사용이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와 디지털 활용능력을 총동원해 온라인 상에서 하루에 수십장 씩 마스크를 확보하기도 했다. 반면, 장노년층은 마스크 파는 곳을 찾아 몇시간 씩 줄을 서도 몇 장 건지기 힘들었다.
줄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장노년층이었다. 주요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자동화 컴퓨터 프로그램 일명 ‘매크로’를 이용해 마스크를 싹쓸이한 사례도 적발되기도 했다.
농촌, 마스크 5부제 사각지대
도시처럼 약국이 많은 곳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이 농어촌 지역에서는 일상이 되고 있다. 마스크를 사려면 약국이 있는 읍면이나 우체국, 농협하나로마트가 있는 곳으로 먼거리 원정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라남도의 경우 22개 시·군 가운데 약국이 없는 읍·면은 108개나 된다. 전체 229개 읍·면의 47%에 달한다. 약국이 없다면 공적마스크를 구입할 곳이 농협하나로마트와 우체국 2곳 뿐이지만, 그나마 읍면 소재지에만 있는 데다 수량도 주민 수에 견줘 턱없이 부족하다.
전남 완도군 금당면 10개 마을 전체 주민 990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만 412명이다. 하지만 하루 동안 금당면 농협·우체국에서 파는 마스크는 고작 160여장이 전부다. 결국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몇 ㎞나 떨어진 면 소재지를 찾아도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셈이다.
“내가 먼저” 볼썽사나운 모습도 속속 출현
마스크가 귀해지자 노인들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스크 사려고 줄을 섰다가 서로 싸우기도 하고, 2장을 이미 구입하고도 다른 판매처를 찾아가 구입하지 않았다고 억지 부리면서 판매하라고 실랑이를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는 약국에서 공적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선 노인 2명이 몸싸움을 벌여 경찰에 입건됐다. 3월 13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80대·여성과 70대·여성이 지난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는 한 약국 앞에서 다툼을 벌였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다 시비가 붙었고 서로 간 폭력까지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70대 여성은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손목 골절상을 입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 판매 5부제 도입 이후, 인터넷에서는 노인들이 마스크를 이미 구입하고도 다른 판매처에서 구입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정부가 공급하는 공적 마스크 판매처인 약국, 농협하나로마트, 우체국에 중복구매확인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사실을 몰라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마스크 구매 관련 오보도 속출
코로나19의 여파로 마스크가 가장 현실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언론들의 오보도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 고령자가 마스크 구매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다는 부정적 보도다.
3월 13일 오후 YTN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던 70대 남성이 쓰러져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손주를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하는데 늦었다면서 마스크를 빨리 사게 해달라고 항의하던 남성은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해당 보도 이후 3시간 뒤, YTN은 “마스크 빨리 달라 항의하던 70대 쓰러져 중태”란 기사를 실었다. “숨져”가 “중태”로 바뀌었고, 첫 보도는 홈페이지와 포털, 유튜브 등에서 삭제된 상태였다.
YTN 보도를 여루 매체가 확인없이 후속보도하면서 마스크를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령자들이 생명을 담보로 마스크를 구입해야 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