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시설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가 고령사회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노인학대 사건이 발생한 노인요양시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보건당국의 관리 소홀로 인해 행정처분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가 관련 제도 개선과 같은 적극적인 행정을 소홀히 하면서 노인학대 발생으로 요양기관 평가에서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아야 하는 시설이 A등급을 유지하고, 심지어 최상위 20%에 해당하는 A등급에 지원하는 가산금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이번 감사에서는 일부 노인요양시설들이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요양급여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국민이 낸 보험료가 이들 시설의 부채상환에 사용된 점도 적발됐다. 일부에서는 시설에 입소할 수 없는 3~5등급에 대한 심사를 엉터리로 진행해 시설에 입소한 경우도 있었다.
복지부의 복지부동 행정으로 인해 요양시설 이용 당사자인 어르신들과 그 가족들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모두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감사원, “학대시설 절반 이상 행정처분 받지 않아”
이번 감사결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요양시설의 노인학대에 대한 행정처분이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어르신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4월 23일 발표한 노인요양시설 운영과 관리실태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전국 지자체 116곳이 장기요양기관의 노인학대 사례 287건을 통보받았는데, 이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131건(45.6%)만 행정처분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일 현재 행정처분 검토 중이었던 11건을 제외하고, 절반 이상에 달하는 145건(50.5%)에 대해서는 어떤 행정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행정처분을 받은 131건도 75건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업무정지·지정취소 등 중징계였고, 나머지 56건은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한 개선 명령이나 경고조치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분에 그쳤다. 결국, 노인요양시설에서 발생한 노인학대 4건 중 1건에 대해서만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정지·지정취소와 같은 실효성 있는 행정처분을 내린 셈이다. 노인요양시설에서 노인학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노인전문보호기관, 학대사례 판정 후 지자체 통보
현행 노인복지법은 노인학대가 발생할 경우 분쟁이나 조정을 담당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전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중앙 1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33곳이 복지부 지정 비영리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노인전문보호기관은 장기요양기관에서 노인학대 신고가 접수될 경우 현장조사를 통해 정황증거와 증인을 확보하고, 사실 확인을 거쳐 기관에 설치된 노인학대사례판정위원회에서 노인학대 여부를 판정하게 된다. 그 결과는 시군구에 ‘학대 사례 판정서’로 통보된다.
노인보호기관으로부터 판정서를 통보 받은 시군구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같은 관련법에 따라 개선명령, 경고와 같은 경징계부터 업무정지, 지정취소와 같은 중징계를 내릴 수 있다.
특히, 시군구의 행정처분 결과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등록하는 방법으로 보건복지부에 통보되는데, 복지부는 이를 장기요양기관 평가에 반영해서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부과하게 된다.
감사결과 문제점 ①10곳 중 4곳, 개선명령 또는 경고
이번 감사결과 노인학대가 발생한 요양시설에 대해 관할 시군구가 자의적으로 지나치게 가벼운 행정처분을 내렸다는 점이 지적됐다.
우선,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노인장기요양시설에서 노인학대가 발생할 경우 내릴 수 있는 행정처분으로 업무정지명령과 지정취소처분을 규정하고 있다. 즉, 장기요양보험법을 적용할 경우 요양시설에서 노인학대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문을 닫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감사에서 시군구에 보고돼 행정처분이 내려진 131건 가운데 장기요양보험법을 제대로 적용해 업무정지나 지정취소 처분을 내린 곳은 10곳 중 6곳(26.1%)에 불과한 75건에 그쳤다. 나머지 56건은 사회복지사업법을 적용해 개선명령을 하거나, 심지어 규제를 강화하기 이전의 장기요양보험법까지 적용하는 편법으로 경고조치에 그쳤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 시군구는 행정처분을 내리고도 이 사실을 복지부에 통보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아 최하 E등급을 받아야 하는 시설이 최상위 A등급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전남 완도의 한 요양시설은 2017년 노인학대로 개선명령을 받아 E등급에 해당하는데, 완도군과 건보공단이 사실을 사회복지정보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아 2018년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2019년 2000여만원의 가산금까지 지급받았다.
감사결과 문제점 ②입소노인&종사자 피해 우려 중징계 곤란
시군구가 노인학대가 발생한 노인요양시설에 대해 솜방망이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지적됐다.
감사원이 감사대상 287건의 노인학대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은 145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노인학대가 일회성으로 그쳤거나 학대로 보기엔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어, 정서적·경제적 학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행정처분도 어려웠다거나, 요양시설이 문을 닫을 경우 입소한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행정처분을 하지 못했다는 곳도 있었다. 이밖에도 요양시설이 자체적으로 시정하겠다고 합의해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노인학대의 경중을 가리기 어렵고, 업무정지나 지정취소와 같은 행정처분을 내릴 경우 입소 어르신이나 요양보호사와 같은 종사자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장기요양보험법과 사회복지사업법을 모두 적용할 수 있어 혼란스럽다는 불만이 나왔다.
감사결과 문제점 ③복지부, 행정처분 세분화 등 제도개선 중단
일선 복지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응 책임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말 그대로 복지부동한 행정으로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가 노인요양시설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에 대응하기 위해 2016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2017년 상반기까지 노인학대의 유형, 피해 정도, 횟수 등에 따라 행정처분 기준을 세분화하고, 같은 해 하반기까지는 장기요양보험법에 정서적·경제적 학대와 관련한 처분기준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감사결과, 복지부는 개선방안을 추진하면서 노인학대는 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라 행정처분 감경 대상이 아닌데도 사안의 경중에 따라 감경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검토했다. 게다가, 위반 정도를 일률적으로 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 세분화와 관련한 제도개선을 중단해 버렸고, 지금까지 개선책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는 또, 복지부는 일선 시군구가 장기요양기관에서 발생한 노인학대에 대해 사회복지사업법이 아닌 장기요양보험법을 적용하도록 유권해석하면서도 혼란을 겪는 시군구가 장기요양보험법을 적용하도록 올바른 지침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학대 이외 불투명한 회계관리도 큰 문제
노인학대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이외에도 노인요양시설의 불투명한 회계관리도 적발됐다. 일례로, 노인요양시설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은행으로부터 ‘메디컬론’이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매달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받는 장기요양급여를 담보로 대출받아 대출금으로 요양시설 운영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관리비를 충당할 수 있는 제도다.
요양시설들이 ‘메디컬론’ 대출금 전액을 세입 처리해야 하는데, 메디컬론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시설들이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났다.
감사원이 2016~2018년, ‘메디컬론’으로 대출받은 290개 시설을 감사한 결과, 총 대출금이 1482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마이너스통장 295억원을 제외한 1187억을 분석했더니, 전액 시설회계에 반영된 금액은 전체의 3.5%, 40억원에 불과했다. 일부만 시설회계에 반영한 금액은 3.2%, 38억원. 결국, 총 대출금의 93.3%, 1100억원은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쌈짓돈이 된 셈이다. 이 역시, 관리감독기관인 복지부의 관리소홀로 발생한 부조리다.
감사원은 “노인요양시설의 회계운영과 장기요양급여비용 청구·지급에 대한 감독기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노인학대에 대한 시군구의 처리가 적정한 지 점검했다”면서, “감사결과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인 사항 총 19건을 확인하고,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등 관계기관에 제도개선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