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병의원을 이용할 때 총 진료비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일정비율 정해진 금액만 내는 노인 외래 정률제도가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전에 비해 금액 구간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환자의 총 진료비가 각각 2만원과 2만 5000원을 넘을 때 진료비가 크게 늘어나는 현상은 총진료비 1만5000원을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던 정액제와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의료계에 따르면, 지역 병의원을 중심으로 노인 의료비 외래 정률제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외래정액제, 진료비 1만5천원 이하는 본인부담금 1500원 동일
노인 외래 정액제는 65세 이상 노인이 의원급 의료기관을 이용했을 때, 진료비용 일부를 감면하는 제도다. 2017년까지는 진료비 상한액 1만5000원 이하는 환자 본인부담금이 1500원 정액으로 동일했다. 다만, 진료비 총액이 1만5000원 이상이면 일반 환자와 동일하게 총 진료비의 30%(정률)를 부담하는 방식의 정률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1만5000원 기준선’을 16년 동안 시행하면서 의료현장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벌어졌다. 1만5000원에서 총진료비가 100원만 늘어나도 노인환자의 본인부담금이 1500원에서 4500원으로 3배 이상 뛰어오르다보니 환자도, 의사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정률제, 진료비 1만5000원 넘으면 본인부담금 10~30% 차등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2018년 1월부터, 노인 외래 정액제 단기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기존에 총진료비 1만5000원 이상일 때 일괄적으로 30% 부담하던 본인부담 정액제를 구간별로 10~30% 쪼개 차등을 둔 정률제로 바꾼 것.
개선안에 따라 총 진료비 1만5000원 이하는 본인부담을 기존과 동일하게 1500원을 정액 부담하되, ▲진료비 총액이 1만5000원 초과~2만원 이하이면 본인부담 10% ▲2만원 이상~2만5000원 이하 본인부담 20% ▲2만5000원 초과인 경우 본인부담 30%로 단계적 정률부담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정률제, 100원만 구간 초과해도 본인부담금 크게 늘어 불만
2018년 1월부터 시행된 새로운 정률제는 제도 시행 3년차에 접어들면서, 의료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초진료 자체가 대부분 1만5000원을 넘어서면서 본인부담금을 1500원 정액만 내는 대상이 줄어들고, 정률제 적용 대상이 늘어났다. 문제는 새로 도입된 정률 구간별 편차가 크다 보니 의원과 환자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총 진료비가 2만원일 때 환자의 본인부담금은 10%가 적용돼 2000원이나, 진료비가 2만100원으로 100원 더 늘어나도 20% 구간에 들어 본인부담금이 4000원 이상으로 2배가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총 진료비가 2만5000원인 때는 본인부담금이 20%, 5000원이지만, 진료비가 2만5100원으로 100원 더 늘면 30% 구간에 포함돼 본인부담은 7500원 이상으로 1.5배가 뛴다.
총진료비 1만5000원을 기준으로 나눴던 이전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기준선을 기점으로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몇배씩 차이가 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정률제 이후 노인진료비 오히려 크게 늘었다
2018년부터 개정된 노인 외래 정률제 적용 이후 진료비가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률제도가 늘어나는 의료비 증가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정률제 도입 이후 노인정액제를 이용한 의료기관은 2017년 8만2988곳에서 2018년 8만4918곳으로 1930곳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 인원도 2017년 623만6000명에서 2018년 663만7000명으로 약 40만명이 증가했다.
총 진료비는 2조775억원에서 2조9760억원으로 8985억이 늘었다. 특히, 1인당 이용건수는 연간 26.1건에서 30.3건으로 4.2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고, 1인당 진료비 역시 33만3146원에서 44만8395원으로 11만5349원 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현재의 노인외래정액제는 늘어나는 노인의료비에 대한 관리가 매우 어려운 구조이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노인외래정률제, 일률적 진료비 총액 구간 개선 필요하다
정률제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북의사회는 “한차례 제도 개선으로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100원 차이로 진료비가 1.5배에서 2배로 오르는 계단구간이 존재하다보니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특히 노인환자 비율이 높은 지방 개원가는 이로 인한 분쟁이 적지 않다.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북의사회는 개선방안으로, “지금처럼 총 진료비 액수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10%, 20%, 30%로 부과하는 계단형 체계가 아닌, 전체 진료비가 정액 구간을 넘어선 이후 30% 징수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부과 비율을 상승시켜 본인부담금이 갑자기 올라가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 최종적으로 30%를 부과하는 지점은 전체적인 공단 부담금이 현재와 비슷해지는 지점을 산출해서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복지부, 정률제 대상 65→70세 상향 조정하려 했다
보건당국이 노인 외래 정률제 대상 연령층을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인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는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하고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실제로 이행될 경우 65~69세 노인인구 약 231만명이 대상에서 제외돼 의료 현장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2019~2023년 적용될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안을 발표했다. 보건당국이 2023년까지 5년간 추진하는 건강보험 종합 계획의 주요 목표와 추진 방향을 담고 있다. 5년마다 수립된다. 이 당시 공개된 초안에는 노인 외래 정액제의 적용 연령층을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높이고 정액·정률 구간과 금액 기준 등을 조정하는 등 단계적 축소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었다.
시민단체의 반발로 보건복지부가 한 발 물러서 연령 상향 부분은 빠졌지만 노인 외래 정률제도를 업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인외래정률제, 조속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노인 외래 정률제도가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부추기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키운다는 지적이 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노인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노인의료 제공 체계의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노인 외래 정률제를 개편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경북의사회는 “매년 물가가 오르고 있고 이에 맞춰 의료수가도 인상되고 있으나, 노인정액제 기준 금액은 20년째 변화가 없어 애초에 의도한 정액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노인 정액제 기준액을 의료수가 인상률과 연동하도록 법제화해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초 정부도 제도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령기준 조정이나 노인정액제 폐지 등 장기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3년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후속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외래 진료비 할인제도의 기준을 연령이 아닌 만성질환 지속관리 여부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노인과 일반 환자 구분없이 동네병의원에서 지속적으로 만성질환 관리를 받는 경우 본인부담률을 30%에서 20%로 인하하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견이 많아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편, 지난 5월 발표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19~2023)에 따르면, 노인외래정액제는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 2022년까지 개선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적용연령, 부담방식, 부담금액 등이 단계적 조정 검토 대상이다.